전세보증금이 10% 하락하면 임대가구(집주인)의 1.5%인 3만2천가구는 보증금 차액 반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역전세난 우려가 당장은 크지 않지만, 임대가구의 보증금 반환 능력이 전반적으로 약화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19일 내놓은 ‘최근 전세시장 상황 및 관련 영향 점검’ 보고서를 보면, 전셋값이 10% 하락하더라도 임대가구 92.9%는 기존 금융자산을 처분해서, 5.6%는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보증금 차액을 반환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나머지 1.5%(3만2천가구)는 금융자산도 없고 기존 대출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가 소진돼 더 이상 대출도 어려워 차액 반환이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파악된 보증금 부채를 보유한 주택임대가구(211만가구·전체 1969만가구의 10.7%)의 자산과 금융부채 등을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다.
변성식 한은 금융안정총괄팀장은 “전체적으로는 임대가구의 재무건전성이 대체로 양호해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부채레버리지(부채비율)가 높은 일부 다주택자 등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임대인이 주택 여러 채를 임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임차인 기준으로는 임대가구수의 두 배(6만4천가구) 이상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변 팀장은 “반환 부족자금 규모는 2천만원 이하가 71.5%를 차지했고, 5천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6.9%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
임대가구 가운데 고소득층(4~5분위) 비율은 64.1%였고, 이들은 평균 8억원의 실물자산을 보유해 총자산(금융+실물자산) 대비 총부채 비율이 26.5%에 불과했다. 다만 2012년 3월~2018년 3월 사이 임대가구의 보증금은 연평균 5.2% 상승했는데 금융자산 증가율은 3.2%에 그치면서, 임대가구의 금융자산 대비 보증금 비율이 같은 기간 71.3%에서 78%로 올랐다. 유동성 기준으로는 상환능력이 약화하고 있는 셈이다. 변 팀장은 “임대가구들이 차입을 통해 주택을 산 뒤 이를 임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전셋값 하락폭은 기존 상승률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전셋값은 2013년 1월~2017년 3월 사이 9.4% 오른 뒤 하락세로 반전해 올 2월까지 2.6% 떨어졌고, 수도권은 2013년 1월~2017년 11월 사이 23.3% 상승했다가 이후 올해 2월까지 2.1% 하락했다. 수도권의 경우 상승폭의 10분의 1만큼도 떨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순혁 기자 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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