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내부 일감을 몰아주거나 회사 기회를 가로채는 등의 방법으로 재벌총수 일가 등이 챙긴 돈이 35조8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일가의 특수한 위치를 활용해 사익을 편취한 것으로,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로 평가된다.
경제개혁연구소가 5일 발표한 ‘사익 편취 회사를 통한 지배주주 일가의 부의 증식 보고서’를 보면, 기업집단(그룹) 24곳 39개 회사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 늘린, 총수일가가 소유한 재산 가치가 35조8천억원에 이른다. 2016년 조사 때, 31조원보다 4조8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이를 챙긴 이들은 각 기업 총수 일가 95명(총 141명 중 수익률 10% 미달 등 46명 제외)으로, 이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이 1~3위를 차지했다. 이들 세 사람이 챙긴 자산만 16조원에 이른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익 편취 금액은 6조4600억원에 이른다. 2016년 조사 때 7조3500억원이었는데 삼성물산 주가 하락 등으로 9천억원가량 줄었다. 이 부회장은 1990년대 중반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에스디에스(SDS)의 ‘상장 전 주식(신주인수권부사채·전환사채)’을 저가 매수해, 상장 뒤 고가로 처분하는 수법을 썼다. 종잣돈 61억원으로 현재 6조원대 자산가에 올랐다. 삼성 지주사 역할을 했던 삼성에버랜드는 특수관계자 매출 비중이 51%(2013년)에 이르는 등 그룹 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성장했다.
최태원 회장의 사익 편취 금액은 5조650억원으로 집계됐다. 최 회장의 사익 편취는 현재 에스케이의 모태가 된 시스템통합(SI) 업체 에스케이시엔시(C&C)를 통해 이뤄졌다. 최 회장이 1994년 주당 400원에 사들인, 액면가 1만원의 에스케이시엔시 주식이 경영권 확보의 바탕이 됐다. 이 주식은 현재 28만원에 이른다. 20분의 1로 액면분할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금액은 560만원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의 사익편취 금액도 2011년 2조원에서 2016년 4조원, 올해 5조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사익 편취 보고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재벌 2·3세 상속이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익 편취에 견줘, 창업자인 서 회장의 등장은 이례적이다. 셀트리온 주식이 한 주도 없는 서 회장은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셀트리온홀딩스 등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데,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매출은 99% 이상 셀트리온을 통해 발생한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셀트리온의 매출 대부분이 셀트리온헬스케어를 거쳐 판매되기 때문에 셀트리온 주주의 부가 셀트리온헬스케어 주주에게 이전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지분가치 증가는 회사 기회 유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서 회장의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율은 35%에 이르며, 사실상 개인회사로 알려졌으며, 사익 편취액은 약 4조5천억원에 이른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2조5000억원의 사익을 편취했다.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설립된 이래로 현대차와 거래를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사례로 지적된다.
이밖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전 삼성물산 사장이 각각 2조원,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 이사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이재현 씨제이(CJ) 회장 등이 1조원대 사익 편취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대기업집단 중 동일인(총수) 및 가족의 지분율이 직간접적으로 20%가 넘고 내부거래 비율이 20% 이상인 경우 일감 몰아주기 사례로 간주했다. 또 동일인 등 지분이 20%를 넘는 회사가 다른 계열사의 사업 기회를 유용한 경우는 ‘회사 기회 유용’ 사례로 파악했다.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곳이다.
조사 기간은 사익 편취가 발생한 시점부터 현재까지로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에스원 주식을 매입한 1994년부터 시작한다. 2018년 기업집단 지정일 현재 주식 평가액에 배당액과 매각 금액 등을 더하고 최초 금액을 빼는 방식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공정위의 사익 편취 규제가 시작된 뒤 지분율을 낮추거나 물적분할을 통해 자회사로 바꾸는 등 회피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간접지분 등을 포함해 실체적 관점에서 규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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