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주최로 ‘제2회 H-온드림 데모데이’가 열렸다. H-온드림 펠로 기업들과 행사를 주관한 관계자들이 행사가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씨즈 제공.
“일상 속 작은 걷기가 누군가를 위한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기부. 지금 여러분의 손바닥, 그리고 가방 안에 그 혁신이 숨어 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H-온드림 데모데이’(이하 데모 데이)에서 사회적기업 ‘빅워크’가 소개한 영상의 한 장면이다. 이날 ‘데모데이’는 빅워크 처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한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의 혁신적 서비스나 제품,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행사였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행사다.
빅워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스마트폰에서 ‘앱’을 켜고 걷기만 하면 기부와 연결되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했다. 우리가 늘 하는 걷기를 다리를 다친 어린이들의 의족 제작, 지역아동센터를 위한 교구 지원 등 기부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는 일이었다. 2012년 회사를 설립한 뒤 90만명 이상이 앱을 이용했고, 243건의 사회문제 해결을 내걸고 146억원의 기부금을 모집해 유명해졌다.
하지만 ‘꽃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무대에 오른 발표자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정과 아이디어로 창업해 큰 호응도 얻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률이 급감하고 부정적 댓글이 쌓이기 시작했다”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새로운 모색이 필요했다. 댓글을 하나하나 살펴 이용자들이 왜 이탈하는지 살펴본 결과, 지금까지 잘 작동한 사업모델이 이제는 확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부할 프로그램을 지정하게 하자 기부 의지가 강한 사용자들만 남고, 맘에 드는 기부 프로그램이 없으면 사용자가 쉽게 떠나갔다. 성공의 ‘역설’인 셈이다. 해결책은 본질인 걷기에 집중하는 것. 기부에서 출발해 걷는 것이 아니라, 걷기의 즐거움에서 출발해 기부로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프로그램을 바꾸었다. 빅워크는 이날 이렇게 바꾼 ‘2.0 버전’의 안드로이드용 애플리케이션을 테스트를 거쳐 공개했다고 밝혔다.
‘제2회 H-온드림 데모 데이’에서 사회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적 기업가들이 투자자와 청중들 앞에서 사명과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였다.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이 사업의 의미와 성장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빅워크가 이처럼 새로운 변신을 시도할 수 있었던 건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날 열린 데모데이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 ‘제2회 H-온드림 오디션’이 그것이다. 빅워크는 현대차그룹과 현대 정몽구 재단이 주최하는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엑셀러레이팅 부문’ 지원 대상으로 뽑혀 12주간의 집중 컨설팅 과정을 마쳤다. 빅워크의 한완희 대표는 “H-온드림에서 경영 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지원을 해 준 덕에 기부의 접근성을 한층 높이고, 탄탄한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H-온드림 오디션’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민관협력 사회적 경제 창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성장 잠재력을 지닌 초창기 사회적기업에 팀당 최대 1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12개월간의 창업교육 및 일대일 멘토링 등을 제공한다. 현대차그룹과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고용노동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씨즈, 한국메세나협회와 손을 잡고, 2012년부터 7년 동안 모두 210개의 사회적 경제 기업의 창업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14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2017년부터는 엑셀러레이팅 부문을 신설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한 기업이 실질적인 성장 (스케일업)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업비지원, 사업 연계를 위한 네트워킹, 경영지원, 투자 유치 기회 연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 창업 지원 주요 프로그램. (정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H-온드림 엑셀러레이터로 참여해 12주간 빅워크를 집중하여 담당했던 양경준 크립톤 대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소셜 비즈니스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얼마 전만 해도 사회적기업이나 소셜 벤처는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만 평가받아왔지만, 이제 수십억에서 많게는 1천억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곳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H-온드림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기업 가운데 하나인 ‘마리몬드’는 인권을 존중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기업의 지향점이 기업의 가치 상승으로 연결된 본보기이기도 하다. 최재호 현대차그룹 사회문화팀 부장은 “사회적 경제 기업의 실질적인 성장을 위해선 사업비를 지원하고 체계적인 경영지원을 하는 자체 노력도 필요하지만, 외부 투자를 유치해서 스케일 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H-온드림 오디션’의 스케일업 프로그램인 엑셀러레이터 과정의 대단원을 기업가와 투자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데모데이로 마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달 18일 양평 현대블룸비스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H-온드림 엑셀러레이팅’ 12주간의 집중 멘토링을 마친 펠로 기업과 엑셀러레이터들이 사회적 가치와 핵심 사업내용을 어떻게 구조화할지를 논의하고 있다(왼쪽부터 한완희 빅워크 대표, 양경준 크립톤 대표) (사)씨즈 제공
사회적 경제 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중앙정부의 지원사업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이 대표적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에게 창업비용 및 교육·멘토링 인프라 (공간, 자원연계)를 제공하는 인큐베이팅 사업이다. 2011년부터 8년간 3453개 창업팀을 지원해 3113개 팀이 창업에 성공했고, 약 1만1천여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밑바탕 작업을 한 셈이다. 하지만 창업보다 어려운 건 사업을 지속시키고 성장시키는 일이다. ‘꽃길 지나 흙길’ 등 창업자들 사이엔 사업을 지속시키고 성장시키는 데 따른 고단함을 풍자하는 말들이 여럿 나돈다. 최근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이 확대되고, 그간 있던 지원 정책과 사업도 개선되고 있지만 초기 창업 기업에 대부분의 지원이 집중된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제2회 H-온드림 데모데이’에는 사회적 기업가들이 참여자들과 투자자를 위해 기업의 사명과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할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됐다. (왼쪽부터 공영운 현대차그룹 사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권오규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 이형근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
‘H-온드림 오디션’은 1년 단위로 지원받는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서 발굴한 창업팀들에 성장의 발판을 제공해 왔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과 긴밀하게 연계하면서 민관협력을 통해 정부 정책사업을 보완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창업 생태계 안에서 2~3년 차의 ‘죽음의 계곡’(데쓰 밸리)을 넘어서도록 돕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H-온드림 오디션을 주관해 온 (사)씨즈의 이은애 이사장은 “더 많은 청년이 올라탈 수 있는 더 촘촘한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역의 의제를 공동의 과제로 삼는 방식으로 해결 주체를 만들어가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사회적 경제 분야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개별 기업을 키우는 방식을 넘어 공동의 의제를 기반으로 연대와 공유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덧붙였다.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 중앙협의회장은 최근 민간기업들이 사회적 경제 기업의 창업 지원 활동에 뛰어드는 추세에 기대감을 표시하며 “자원이 풍부한 대기업들은 스케일이 다른 전략과 자원을 동원해 사회적 경제 분야의 스타 기업을 키우는 데 집중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2회 H-온드림 데모데이’는 임팩트 투자자와 기업가·비영리단체·금융기관 등 ‘사회적 경제’ 생태계에 속하거나 관심 있는 250명여이 참가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사말을 통해 사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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