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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불평등은 부자의 책임’ 미국·프랑스 달구는 ‘부유세’…한국은 어떻게

등록 2019-02-14 10:16수정 2019-02-14 10:20

미 민주당 중심 부유세 논의 활발
프 ‘노란 조끼’는 부자 감세 저항

2000년대 들어 소개된 한국선
대중 지지 높지만 정부 소극적
“복지 수요 커져 증세 못 피해”
“소득재분배 초점 맞춰 논의 필요”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의 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는, 마크롱 정부가 축소한 부유세를 원상복구하라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말 노란 조끼 시위대가 파리 개선문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의 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는, 마크롱 정부가 축소한 부유세를 원상복구하라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말 노란 조끼 시위대가 파리 개선문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자는 주장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을 연초부터 달구고 있다.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은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부유세 폐지에 항의하며 기세를 더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그저 포퓰리즘으로만 치부하기엔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나도 심각하다. 더구나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면 불평등 교정 능력이 없는 체제를 손질하는 건 당연하고, 그 핵심은 세금제도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프랑스의 부유세 요구 미국에서 ‘부유세’ 논쟁의 불씨를 댕긴 건, 정치 신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이다. 그는 지난달 초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에서 연소득 1천만달러(약 112억원) 이상인 고소득자의 최고한계세율(최고세율)을 70%로 인상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연소득 60만달러(약 6억7천만원) 이상일 때 37%이므로, 적용 대상은 전체 소득자의 1%가 채 안 되는 ‘초고소득자’로 좁히되 이들의 세율을 크게 올리자는 내용이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들은 소득이 아니라 소득 불평등의 결과이자 원인이 된 자산 자체에 주목한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5천만달러(약 562억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가구에는 연 2%, 10억달러(약 1조1217억원) 이상에는 연 3%의 부유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상속받은 유산이 350만달러(약 39억원) 이상일 때 45% 이상, 최고 77%(유산이 10억달러 이상일 때)의 상속세를 물리는 법안을 제안했다.

68혁명 이후 최대 민생 투쟁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이 요구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부유세 부활이다. 프랑스는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합해 130만유로(약 17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이에게 부유세를 매겨왔는데,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 ‘투자 촉진’ 등을 이유로 부과 대상을 부동산으로 축소해 ‘부자 감세’ 논란을 불렀다.

이대로는 교정 불가능한 불평등 두 나라에서 부유세 요구가 커지는 건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평등이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또한 부자들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감세였으며, 불평등을 바로잡으려면 부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폭스 뉴스>의 여론조사에서 연소득 100만달러(약 11억2천만원) 이상을 상대로 한 증세 찬성 의견은 65%였고, 공화당원 중에서도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다.

사실 1930~1980년 미국 최고세율은 평균 78%였고 심지어 1951~1963년엔 90%를 넘었다.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인 에마뉘엘 사에즈와 가브리엘 주크만이 분석한 바로는 1960년의 경우 최고세율 91%를 적용받은 이는 평균 연소득의 100배 이상, 지금 돈으로 670만달러(70억원) 이상을 버는 이들이었다. 그보다 적게 버는 ‘그냥 부자’가 적용받은 세율은 25~50%였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지속된 감세로, 소득 하위 50%의 수입은 최근까지 변화가 없었지만 상위 0.1%의 수입은 300% 이상 폭증했다. 또 상위 1%의 주세와 지방세를 합해도 그들이 가진 자산 대비 세 부담은 3.2%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99%는 그 두 배가 넘는 7.2%에 이른다는 게 두 사람의 지적이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뉴욕 타임스>에 쓴 글에서 “부의 극단적인 집중은 경제력과 정치력의 극단적인 집중을 의미하며, 심각한 불평등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워싱턴 의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그린 뉴딜’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초고소득층의 소득세를 최고 70%까지 올려, 이 돈으로 향후 10년 안에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고 주장해 미국발 부유세 논쟁을 촉발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워싱턴 의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그린 뉴딜’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초고소득층의 소득세를 최고 70%까지 올려, 이 돈으로 향후 10년 안에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고 주장해 미국발 부유세 논쟁을 촉발했다. 연합뉴스
윌리엄 게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최근 <시엔엔 비즈니스> 기고에서 1975~1979년 소득 상위 1%의 소득은 55만2천달러에서 184만달러로 233% 증가했지만, 그들의 소득에서 연방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35%에서 33%로 오히려 하락했다며 “이들이 얻은 이익 중 일부는, 나머지 인구의 희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역시, 소수의 부자만 내는 부유세는 사실상 폐지된 반면 대다수의 서민·노동자들이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휘발유의 유류세는 인상된 것에 분노한다. 부유세 폐지 등 부자 감세의 규모는 32억유로(약 4조677억원)에 이르는데, 이를 메우려고 정부 지출 축소와 간접세 인상 등 서민 부담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부유세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을 통해서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대선 때부터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부유세를 공약으로 내놨다. 참여정부에서 2005년 도입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과세 대상이 최상위 일부 ‘땅 부자’여서 사실상의 부유세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나올 때마다 ‘세금폭탄론’, ‘경제 발목론’ 등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극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명박 정부에선 종부세가 유명무실해진 것을 비롯해 큰 폭의 부자 감세가 이뤄지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조금 높아지는 등 최상위층을 겨냥한 약간의 ‘핀셋 증세’ 시도는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조세 구조를 어떻게 개혁할지, 지출이 얼마나 필요하니 누구를 상대로 얼마를 더 걷는 게 합리적일지 등 세금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심지어 이런 논의를 하겠다며 야심차게 만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보고서 하나로 조만간 마무리될 예정이다. 최근엔 가업상속공제 대상과 금액을 대폭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해, 조세 정의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도 산다.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공약을 설계한 김정진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불평등이 임계점에 이를 정도로 심화돼 예전보다 부유세에 공감대가 넓은 것 같다. 참여정부 때는 언론 환경까지 안 좋아 그랬다 쳐도, 이 정부는 사회적 지지기반이 훨씬 넓은데 증세 문제에 너무 수세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24조원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에 쓸 게 아니라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 확대, 최저임금 지원 등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복지 지출에 먼저 쓴다면 세금 올리는 데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종부세 트라우마’ 탓인지 이렇게 몸을 사리는 정부와 달리, 김 소장의 말처럼 증세가 필요하며 이를 감수하겠다는 대중적 공감대는 넓은 편이다. 지난해 10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전국 성인 800명을 상대로 한 전화여론조사에선 10명에 6명꼴로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소득과 자산이 많은 최상위층이 더 내야 한다’는 의견도 62.1%였다. 그보다 1년 앞선 2017년 8월 조사에선 응답자의 71.7%가 ‘더 나은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했고, 85.1%가 부자 증세를 지지했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복지 지출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증세를 피할 수 없다는 객관적인 조건을 다수의 국민이 잘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정치권 안팎에선 “복지 수요 자체가 워낙 커져서, 이 정부는 어떻게 버티더라도 다음 정부는 누가 되든 증세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많다. 부유세 자체의 세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사회복지세, 사회상속세, 국토보유세 등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한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럼에도 실제로 증세를 추진한다면 정치적 부담과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므로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는 “방향은 증세가 아니라 소득 재분배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이름을 부유세로 하든 뭘로 하든, 이전 프랑스 방식으로 동산과 부동산을 합친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에 재산세를 부과해야 한다. 총자산에서 부채 빼고 10억원씩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1 대 99로 가는 사회에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세금의 역할이 ‘소득 재분배’”라고 덧붙였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발 여론을 고려하면) 증세냐 감세냐, 복지증세 불가피론 이런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걷을 것이냐 하는 ‘조세 정의’의 차원에서 세금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정책·정치 논쟁의 공간이 넓어지는 선거 국면 등에서 조세 정의를 강조한 정책이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 정치의 판도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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