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출범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 주요 내빈들이 사회적 금융의 번영을 기원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경제가 뿌리내리는데 소중한 마중물 역할을 할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공식 출범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과 은행연합회관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금융권 전문가를 비롯해 사회적경제 영역에 몸담아온 활동가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대기금 출범식 및 신년 비전포럼이 열렸다. 특히 정부에선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참석했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각 정당 대표들도 자리를 함께 해 새로 출범하는 사회가치연대기금에 힘을 실어줬다. 이 총리는 축사를 통해 “경제성장의 그늘인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 해소에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으나 결과가 충분치 못했다”며, “그 공백을 메꿔온 것이 사회적 경제로, 앞으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출범식에서 축사를 낭독하는 모습.
사회가치연대기금은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사회적 금융 생태계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형태의 기금이다. 2018년 12월 기준 인증 사회적기업만 2,123개에 이를 정도로 최근 몇 년간 국내 사회적경제 영역은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금융적 토대가 매우 허약하다는 점. 사회적 가치 추구가 목적인 사회적경제 조직 특성상 일반 금융시장을 통한 투자·융자 면에서 불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부가 사회적금융 활성화에 힘을 실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사회가치연대기금과 같은 도매기금 설립 등의 내용이 포함된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 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정부·지자체·시민사회·학계·금융계 등 각계 전문가들로 꾸려진 추진단에서 사회가치연대기금 설립 밑그림 작업을 진행해왔다. 다만, 사회가치연대기금은 어디까지나 민간에서 이끌고 정부는 지원 역할에 그치는 민관 협력모델의 틀을 유지할 계획이다.
사회가치연대기금의 핵심사업 목표는 △사회적경제 조직의 성장과 규모화를 위해 필요한 인내자본 공급 △사회성과보상사업(SIB) 등 사회문제 예방과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목적 프로젝트 지원 △사회적 금융 중개기관 육성 및 시장기반 구축 등이다. 영국의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과 같은 역할을 해내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사회가치연대기금은 앞으로 5년간 약 3천억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23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비전포럼에서 정원오 전국사회연대경제지방정부협의회장(서울 성동구청장)이 축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 특히 힘을 쏟을 분야로는 중개기관 육성이 꼽힌다. 예컨대 지역에 맞는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도 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중개기관에 자금을 매칭하는 방식이다. 후순위 투자·융자 등 사회적 금융의 최종 위험부담자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가치연대기금 사업을 총괄하는 김정현 기금사업실장 겸 이사는 “한마디로 사회적경제를 위해 사회적 금융을 공급하기 위한 기금”이라며 “기존 중개기관이나 소매금융 역할을 빼앗거나 통합하겠다는 욕심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도매금융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이다. 사회가치연대기금은 한국사회혁신금융(주), 신나는조합,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등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러 중개기관과 구체적 협력 방안을 세워둔 상태다.
내심 목표로 삼은 평균 수익률은 2% 정도. 다만, 초기 5년간은 사회적 금융 생태계 확충을 위한 적극적 투자 기간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 손실을 입더라도 그간 막혀있던 금융의 젖줄을 터주면 장기적으로 생태계가 자리잡으리라는 기대에서다. 김 실장은 “10년간 돈을 다 쓰겠다는 각오로 임할 것”이라며 “20년쯤 지나면 3천억 이상의 자금이 되돌아와,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모델이 가능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사회가치연대기금 앞에 놓인 과제도 적잖다. 관건은 몇 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의 향방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 제도화는 사회적 금융 활성화에 꼭 필요한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동수 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 대표는 “민관 협력이라는 취지를 살려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튼튼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동곤 기획재정부 사회적경제과장은 “올해 상반기 안에 기본법이 꼭 통과되도록 힘을 보태고 있다”면서 “설령 통과되지 않더라도 현행 법 제도 안에서 모든 지원을 다 할 것”이라 말했다.
23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비전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기금 운영 계획을 듣고 있는 모습.
사회가치연대기금과 중개기관의 원활한 협력을 얼마만큼 끌어내느냐도 성패를 가르는 변수다. 1세대 사회적기업가 출신인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은 “중개기관을 육성하며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협의회 상임대표도 “우리 사회의 사회적경제, 사회적 금융의 역량을 한데 모아 지역과 업종에 특화된 활동을 할 중개기관에 물을 제공하는 저수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식 출범한 사회가치연대기금은 현재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등 재단 운영을 위한 법적 절차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3월 초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가치연대기금 설립 작업 전반을 이끌어온 송경용 이사장은 “사회적경제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이 되는 금융을 만들겠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간적인 금융 모델을 우리 사회에 증명해 보일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