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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크·신·재’에서 ‘작·고·채’로…도시재생 시대엔 개발방식부터 혁신하자

등록 2019-01-02 10:35수정 2019-01-03 09:33

[HERI의 눈]
2031년 예상됐던 인구 정점 시기 10년 정도 앞당겨져
인구 감소의 직격탄 지방 강타…‘지방소멸’ 현실화 우려
‘빅 포로젝트’에서 ‘스몰 프로젝트’로 전환 필요한 시점
‘밖으로 확장’ 대신 ‘안쪽 빈 곳 채우는’ 도시개발 필요
다자녀 연계형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지원도 고민해야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19일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 인근의 남양주·하남·과천(경기), 계양(인천)에 12만 2천 세대 규모의 신도시를 조성한다고 한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가 전화를 걸어 신도시 건설에 대한 의견을 묻길래 “이제 더는 서울과 수도권에 신도시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답해줬다. 왜 그런가? 왜 지금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해서는 안 되는가?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우선 두 가지만 짚어보자.

지금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 1975년과 2017년의 전국 기초자치단체 인구와 인구밀도를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해보면 지난 40여 년 사이에 수도권 인구 집중이 얼마나 심화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1975년 당시 인구 5만 명을 밑도는 기초자치단체는 많지 않았는데, 2017년에는 그 수가 48개 시·군으로 늘었다. 특별시와 광역시의 자치구를 뺀 162개 기초지자체의 29.6%다. 인구수를 행정구역 면적으로 나눈 인구밀도를 비교해보자. 1975년 당시엔 서울과 인천, 대구, 부산의 도심부가 높은 탑처럼 솟아 있었다. 지금은 도심에서 인구가 빠져나가 높은 탑은 보이지 않는 반면, 수도권 전역에 촘촘한 탑들이 솟아 마치 거대한 바벨탑처럼 보인다. 1975년 당시 전체 인구의 31.5%가 살던 수도권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지금은 수도권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49.6%다. 딱 절반이다.

생각해 보자. 이미 이런 지경인데, 수도권에 다시 10만, 20만 가구의 신도시들을 건설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도권 신도시 주택들은 불티나듯 팔릴 것이고 빈틈 없이 사람들로 채워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지방 어느 도시는, 지방 농산어촌 어느 마을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텅텅 비게 될 것이다. 수도권 신도시는 지방 소멸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그러하니 이제 더는 수도권에 신도시를 짓지 말자. 지방도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신생아 40만 명 시대’ 2017년 무너져

수도권 신도시 건설은 집값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공급론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집값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특히 서울 강남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는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판교 신도시 사례가 그랬다. 2001년 3.3㎡당 평균 875만원이던 강남 아파트값은 판교 신도시 개발 발표 4년 뒤인 2005년에 1605만원으로 올랐다. 판교 분양이 진행된 2006년에는 다시 2199만원으로, 입주가 시작된 2009년에는 2500만원으로 더욱 올랐다. 강남 아파트값의 상승에는 판교 신도시 건설 이외의 영향도 물론 있었겠지만, 수도권 신도시 건설이 강남 집값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강남 집값은 단순한 수요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년 사이 다시 두 배로 뛰어 3.3㎡당 평균 4천만 원, 5천만 원이라는 기막힌 가격을 어떻게든 더 끌어올리려는 힘들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이미 집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집값이 행여 내려갈까 노심초사하며 집값이 더, 더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조만간 누릴 강남 입성의 영광과 함께, 내가 이만큼 고생해서 얻었으니 더더욱 집값이 올라야 마땅하다는 보상심리가 작동할 것이다. 이런 간절한 열망을 잘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은 강남 집값이 더욱, 더욱 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부추기고 있다. 그 믿음은 이미 종교와 정파를 초월했다. 그뿐인가. 우리 사회 최고 기득권자인 당사자들이 바로 국가 정책을 결정하고, 전달하고, 판단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상은 이제 도시재생의 시대다. 게다가 인구감소 시대가 눈앞에 닥쳤다. 2031년으로 예상했던 우리나라 인구의 정점 시기는 그보다 10년 앞으로 당겨질지 모른다. 인구감소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진 이유는 신생아 출생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한 해에 태어난 신생아가 100만 명이 넘었다. 1971년에도 102만4773명으로 백만 명을 넘겼다. ‘백만 신생아 시대’의 마지막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밀어붙인 산아제한 정책의 효과로 신생아 수는 줄고 또 줄었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80만 명의 벽이 깨졌고, 2000년대 초에는 60만 명 밑으로 내려왔다. 그나마 유지돼 왔던 40만 명의 벽은 2017년에 무너졌다. 2016년 40만6243명에서 2017년 35만7771명으로, 1년 만에 5만 명 가까이 줄었다. 이르면 2019년에는 20만 명대로 내려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신생아 수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감소한다면 전체 인구수도 이제 곧 감소 추세로 바뀌어 명실상부한 인구감소 시대에 들어설 것이다. 인구감소의 직격탄은 지방이 먼저 맞게 될 것이고, 지방 소멸은 더 이상 예측이 아닌, 눈앞의 현실이 될 공산이 크다.

도시재생 시대에도 물론 개발은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재생시대에 걸맞게 개발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것도 아주 혁신적으로 바꿔야 한다. 한마디로, 도시개발 시대의 개발 방식은 ‘크·신·재’로 요약할 수 있다. 개발의 단위를 ‘크게, 크게’ 삼았고, 신도시와 신시가지 건설과 같은 ‘신개발’과 도심 재개발과 주택 재개발, 그리고 재건축과 뉴타운을 망라하는 ‘재개발’이 주를 이뤘다. 신개발과 재개발을 대단위로 벌여왔다는 얘기다. 도시 인구가 급증하니 ‘빨리빨리’ 도시를 개발해야 했다. 논밭을 갈아엎어 신도시와 신시가지를 개발했고, 한 채 한 채 지을 겨를이 없으니 아파트 단지, 공업단지 같은 대단지 개발방식을 택했다. 오래된 달동네를 재개발했고, 도심부의 오래된 골목길과 건물을 헐어내고 고층빌딩을 세웠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지었던 저층 아파트를 철거하고 고층 아파트로 바꾸는 아파트 재건축이 뒤를 이었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재개발과 재건축의 규모를 거의 도시처럼 키운 뉴타운이라는 신상품을 개발해 전국에 전파했다.

■ 도시재생이 명실상부한 ‘뉴딜(New Deal)’이 되려면

도시재생 시대의 개발은 ‘작·고·채’로 가야 한다. 개발의 단위를 단지에서 필지 단위로 ‘작게, 작게’ 줄이고, 새로 만드는 대신 ‘고쳐 쓰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더는 도시를 밖으로 확장하지 말고 도시 안쪽의 빈 곳을 ‘채우는’ 쪽으로 혁신해야 한다.

도시개발 시대의 개발이 대규모의 ‘빅 프로젝트’였다면, 도시재생 시대의 개발은 소규모의 ‘스몰 프로젝트’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빅 프로젝트는 빅 컴퍼니만 일을 따고 맡을 수 있다. 대기업과 대형 건축사무소, 대형 건설회사와 엔지니어링이 아니면 그 큰일에 참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반면에 한 채 한 채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짓는 스몰 프로젝트라면 작은 설계사무소와 동네 자영업자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도시재생을 통해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그 혜택이 우리 사회 밑바탕까지 고루 돌아가도록 하려면, 이름처럼 도시재생이 명실상부한 ‘뉴딜(New Deal)’이 되려면, 이제 바뀌어야 한다. 대규모 신개발과 재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작게, 고치며, 채우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신생아 출생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현실은 국가 위기를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다. 비상한 각오로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찾아야 할 때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출산 장려 위주의 기존 정책 패러다임을 삶의 질 향상, 성평등 구현, 인구변화 적극 대비 위주로 전환하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함께 왜 지금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지 깊이 헤아리며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자녀 연계형 신혼부부 공공임대주택 지원사업’을 제안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국가와 지방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자. 기본 5년에다 자녀를 출산하면 자녀수에 비례해 그 기간을 연장해주자. 자녀 한 사람마다 10년간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해준다면 파격적일 것 같다. 네 아이를 낳아 키운 나 같은 사람에게 40년 동안 집 걱정을 덜어준다면 아주 감사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신혼부부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어떻게 마련해주면 좋을까? 개발시대에 해왔던 신개발, 재개발 방식의 대규모 단지개발 대신에 작게 작게 고치고 채우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해답이 있다. 다세대, 다가구 주택을 국가나 지방정부 또는 공기업이 매입해 여러 신혼 가구들이 각자, 또는 함께 편히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주택’ 방식으로 리모델링해서 제공하자. 건물 곳곳에 입주 세대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공간을 풍부하게 배치한다면 매력적인 주거공간이 될 것이다. 원도심의 빈집과 빈 가게들, 폐교된 학교를 매입하거나 빌려 역시 신혼부부들이 살기 편하게 잘 고쳐 제공해줘도 좋겠다. 어르신들 내외분만 살고 계시는 대형 평형 아파트도 방 한 두 개를 국가나 지자체가 임대해 신혼부부들을 위한 주택으로 고쳐 제공해주면 노소세대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불편 없이 함께 사는 ‘땅콩아파트’가 곳곳에 등장할지 모르겠다. 그 외에도 길은 아주 많을 것이다. 찾기만 한다면.

도시개발 시대는 가고 도시재생시대가 왔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개발방식으로 바꾸자. 강자들만 먹고 사는 ‘크게, 신개발, 재개발’ 방식에서 약자들도 함께 사는 ‘작게, 고치고, 채우는’ 방식으로.

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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