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업 수의 0.2%에 불과한 ‘재벌기업’이 지난해 기업 영업이익의 41%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고용 창출력이 낮은 반도체가 성장을 이끈 탓에 재벌기업의 고용은 오히려 감소했다. 반도체에 쏠리는 불균형 성장이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어졌던 경로가 올해는 더욱 뚜렷해지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기준 영리법인 기업체 행정통계 잠정결과’를 보면, 지난해 조사 대상 영리법인 66만6163곳의 영업이익은 한해 전(235조2440억원)보다 23.5% 늘어난 290조6310억원으로 조사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0년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매출액 역시 한해 전보다 7.7% 늘어난 4760조원으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통계청이 법인세 납부 대상인 영리법인을 대상으로 부가가치세, 사업자 등록, 사회보험 등 행정자료를 활용해 집계했다. 업종별 자산과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기업 규모를 분류하고 대기업의 경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재벌기업)과 기타 대기업으로 나누어 살폈다.
전반적으로 지난해 기업 경영실적이 개선된 모습이지만, 이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재벌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영향이다. 재벌기업의 영업이익은 한해 전보다 54.8%나 늘어 118조6300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재벌기업이 전체 기업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0.8%로 한해 전(32.6%)보다 크게 늘어났다. 통계청은 “반도체 분야의 영업이익 급증이 재벌기업 영업이익 증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재벌 제조기업 영업이익은 한해 전보다 71.8% 급증했다. 전체 제조업체 가운데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부품, 컴퓨터, 영상, 음향 및 통신장비’ 분야의 대기업(재벌+기타 대기업) 영업이익 비중은 57.7%로 절반을 넘는다. 반면 재벌기업 가운데서도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감소 등의 타격을 받은 숙박·음식점업(-44.9%) 등의 영업이익은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반도체 중심의 재벌기업 성장세는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재벌기업 종사자 수는 140만3천명으로 전년 대비 0.1% 줄었다. 기타 대기업(6.9%), 중견기업(0.4%), 중기업(3.3%), 소기업(2.4%) 등이 소폭이나마 종사자 수를 늘린 것과 대비된다. 통계청은 “지난해 고용 창출력이 낮은 반도체가 성장을 이끌었고 고용 능력이 큰 대규모 조선사들은 구조조정으로 종사자 수를 줄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가 반도체 수출에 의존해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고용 개선이 지연되는 현상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불균형 성장은 올해 들어 본격화한 고용 둔화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은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올해 들어선 조선업에 이어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자동차업이나 서비스업의 침체가 본격화돼 재벌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까지 그 여파가 미치는 상황”이라며 “심각한 고용 부진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뒤처진 주력산업들의 경쟁력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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