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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주거 사각지대 없애려면 ‘사회주택’이 널리 확산돼야”

등록 2018-11-30 14:59수정 2018-12-03 17:13

[2018 사회주택포럼]
‘공급자 이익’에서 ‘주거복지’로 패러다임 전환
주거인권·공동체 등 사회적 가치 극대화에 도움
서울 시작으로 전주·시흥 등 사례 늘어나는 중
“지자체 조례에 의존 현실”…법·제도 기반 시급
지난 11월11일 오전 화재로 7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1월11일 오전 화재로 7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 11일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사건은 ‘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세상 앞으로 불러냈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냈던 도시개발과 주거정책에 의해 가려졌던 존재들이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를 기준으로 삼으면,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에 사는 ‘비주택’ 가구는 39만1245가구에 이른다. 이들 중 도시에 거주하는 절대 다수는 반지하방·옥탑방·고시원 등을 전전한다. 그나마 보증금 명목의 목돈 300만~1000만원 정도를 쥐고 있다면 반지하방이나 옥탑방을 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월세만 내는 고시원을 떠도는 실정이다.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임대주택의 공급 확대를 통해 주거 안정성을 강화하겠다며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 연 4만호(총 20만호)’, ‘공공분양주택 연 3만호(총 15만호)’, ‘공공임대주택 연 13만호(총65만호)’ 등의 공급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모두 재정 부담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다.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뉴스테이)과 관련해선 중·대형 민간 건설사들의 이윤만 챙겨줄 뿐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기존의 임대주택 제도가 불러온 사회적 배제와 갈등 또한 만만치 않다. 임대주택 공급 물량 확대가 주거 약자를 위한 정책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히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은 배경이다.

■ 개정 법률안, 야당 반대로 법사위 계류 중

이런 가운데, 기존 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유력한 대안으로 ‘사회주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회주택의 특징은 정부 보조금이나 민간의 자원을 재원으로 활용하되, 입주자는 저소득층·청년·1인 가구 등 특별 수요를 지닌 주거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경제 등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며 제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조직들이 민간 사업자로 참여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지 저렴한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만 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입주자들이 좀 더 나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안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일상의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며, 사회적 신뢰를 쌓고 확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체들이다. 대규모 단지 건설에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소규모로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 뿐더러, 지역 고용 창출이라는 성과를 거두는 장점도 있다.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미래를 위한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은 셈이다.

서울에서 시작된 사회주택은 현재 전주(전북)와 시흥(경기) 등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광역단체로는 경기·충남이, 기초단체로는 경기도의 광명·성남에서 사회주택 공급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지방선거에 당선돼 정부를 꾸린 상태다. 이밖에 국토부도 지난해 사회임대주택을 전국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물론 어려움도 적잖다. 대부분 지자체 단위의 자체 조례에 의존해 시행되는 형편이라, 재원 마련 등에서 한계가 뚜렷한 편이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을 모색하고자 열린 ‘2018 사회주택포럼’ 현장.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을 모색하고자 열린 ‘2018 사회주택포럼’ 현장.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주거 약자를 위한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본격적으로 모색하는 ‘2018 사회주택포럼’이 열렸다.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윤관석 의원실(더불어민주당)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사)한국사회주택협회, (사)나눔과 미래, 한국타이어 나눔재단,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는 후원 기관으로 참여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윤 의원은 사회주택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법안은 지난해 1월 국토교통위 국토소위를 통과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아직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윤관석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공공임대와 민간임대로 충족할 수 없는 주거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주택이 확산돼야 한다”며, “12월 초 예정된 법사위에서 법안이 통과돼 주거취약계층을 포용하는 사회주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경용 (사)나눔과 미래 이사장도 1989년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영구임대아파트가 도입된 이래 사회주택이 등장하기까지 한 세대가 걸린 역사를 되짚으며, “사회주택 정책이 좋은 거버넌스와 현장의 수요에 부합하는 정책으로 실천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 모색’을 주제로 ‘2018 사회주택포럼’이 열렸다. 주요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 모색’을 주제로 ‘2018 사회주택포럼’이 열렸다. 주요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 정부, ‘사회임대주택 활성화 방안’ 의지 있나?

첫번째 발제를 맡은 김란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자체 차원에서 진행됐던 사회주택의 정책과 현황을 되짚으며, 사회주택의 법적근거 마련을 당면한 최우선과제로 꼽았다. 서울시 사회주택 사업은 2015년 1월 사회주택 조례가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빈집살리기 프로젝트 △토지임대부 사업 △리모델링 사회주택 사업을 통해 2018년도 6월 기준으로 72개 사업지에 803호를 공급했다. 토지임대부 사업이란 서울시 혹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서 토지를 매입해 사업자에게 30년 동안 장기로 임대하고, 사업자는 주택을 신축해서 시세의 80%로 임대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을 말한다. 2006년엔 시흥에서 사회주택 조례를 제정했고, 이어 전주에서도 사회주택 사업이 이어졌다. 김 박사는 “상위법 없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에 의존해 운영하다 보니, 제도적 기반이 취약해서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인 양동수 변호사는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꼬집었다. 양 변호사는 “주거 약자를 위한 주거정책의 목표가 공급량을 제시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라는 공동체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마을과 지역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사회적 신뢰 자본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등의 관점이 함께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한 뒤, “국토부가 주거복지 로드맵을 통해 사회적경제 주체에 의한 ‘사회임대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음에도 정책 의지를 담은 양적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사업 자체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주택 방식의 공급과 운영을 제안했다. 실제 그는 1300세대 규모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인 ‘위스테이’를 진행 중이다. 사회적기업이 건설하고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간 건설사가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갔다면, 위스테이 사업은 임대료 수익이 다시 지역사회로 환류되도록 하는 구조를 구현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는 획일적인 지원이 아니라, 임대료 절감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 청년 등 특정 대상을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방식, 소셜믹스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방식 등 공공성의 층위를 다양하게 접근해줄 것을 당부했다.

21일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 모색을 주제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2018 사회주택 포럼’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국회의원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사무총장인 김승수 전주시장이 진지한 자세로 발제를 듣고 있다.
21일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 모색을 주제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2018 사회주택 포럼’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국회의원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사무총장인 김승수 전주시장이 진지한 자세로 발제를 듣고 있다.

■ ‘소셜 비엔비’ 형태 등 다양한 가능성

마지막 발제에 나선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사회주택의 전국화를 위해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산촌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사회주택의 다양한 모델을 제안했다. 최 위원장은 “지방 중소도시의 경우, 집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일자리를 구해 오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주택 모델이 있을 수 있겠다”며, “일자리 연계형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빌려주고 관리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고령화된 농어산촌에는 에너지 복지 등의 차원에서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운영한다거나, 정주성에 갇히지 않는 주거문화와 연계해 3개월·6개월 단위로 머무를 수 있는 가칭 ‘소셜 비엔비’ 형태 등 사회주택 모델의 다양한 가능성도 제시됐다.

정책사례 발표를 맡은 김승수 전주시장은 임대주택의 임대료를 매년 5%씩 인상해 온 부영아파트의 횡포에 맞서 형사 고발까지 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7월 국회특별법이 통과되면서 2년 단위로 5% 상승률로 제한하고, 민간 사업자들과 입주자들간의 임대료 협상 결과를 사후신고에서 사전신고로 바꾸면서 임대료 폭정을 제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시장은 지방정부가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의 민간사업자들을 규제하고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법·제도적인 개선을 촉구하며, 지방 정부의 관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전주시는 전국의 지방 정부 중 가장 큰 행정조직으로 손꼽히는 ‘사회적경제과, 공동체지원과, 도시재생과’로 구성된 ‘사회적경제국’을 ‘사회적도시추진국’으로 명명하고, 내년 초 도시 전반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사회적 도시’를 선포할 계획이다.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 모색을 위해 21일 마련된 ‘2018 사회주택 포럼’에서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회 이사장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권혁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처장, 천현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백승호 국토부 민간임대정책과장, 남원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정책방안 모색을 위해 21일 마련된 ‘2018 사회주택 포럼’에서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회 이사장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권혁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처장, 천현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백승호 국토부 민간임대정책과장, 남원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세 명의 발제와 정책사례 발표에 뒤이어 한국주택학회장인 천현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아 토론이 진행됐다. 토론엔 임소라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과 권혁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처장,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와 서울연구원 남원석 박사, 백승호 국토부 민간임대정책과장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이희숙 변호사는 “사회주택사업의 특성상 금융과 토지, 인프라의 지원이나 제도적 개선 없이 개인이나 개별적인 조직이 높은 지대를 감당하긴 어렵다”며, “전국화를 위해선 제도 개선이 우선되어야 다양한 사례가 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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