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초 열린 ‘포용국가 전략회의'에 참석해 발표를 들은 뒤 손뼉을 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역 불평등 해소는 한국 사회의 숙원이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오래된 이야기지만 지역을 테두리로 한 여러 집단이 겪는 격차와 차별, 즉 지역불평등은 다양한 양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 조선 ·자동차 등 중심산업이 쇠락해가며 빚어지는 지역경제의 위기, 비싼 도시 거주 비용 때문에 점점 더 변두리로 밀려나는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공간적 분리, 동일한 생활권 안에서의 계층 격차 등이 그런 것이다.
역대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은 ‘지역 간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지방 도시로 공공기관을 이전하거나 대기업이 공장을 이전하도록 지원해서 핵심기능이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균형발전정책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 중 소멸 위험에 놓인 지역이 39%나 된다는 조사가 있다. 수도권은 과밀화에 따른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한편 비수도권의 정주 여건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을 발전시키는 방법론은 주로 ‘돈’에 집중했다. 즉 지역에 돈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는가가 핵심이었다. 지역 산물을 외부 도시에 최대한 많이 파는 것, 관광객을 많이 오도록 하는 것, 외부에서 기업을 유치해 오거나 정부로 부터 교부금을 더 따내는 일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감세 등 각종 혜택을 주고 데려온 온 대기업 공장이 자기들 편할 대로 철수하면서 해당 지역의 경제가 일시에 위기를 맞이하는 일이 잦았고, 대형마트가 지역 골목까지 파고들어 지역의 돈을 수도권으로 뿜어내는 통로 구실을 하기도 했다.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외부기업을 유치해 지역경제에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이런 방식은 지역경제를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휘청이게 하는 허약한 체질로 변모시켰다.
이러다 보니 생각을 달리해 보려는 모색이 시작했다. 즉 지역경제의 문제는 지역에 돈이 유입되지 않아서라기보다, 지역민이 지출한 돈이 지역사회에서 돌지 못하고 너무 빨리 지역을 벗어나는 데서 오는 것이란 인식이 싹텄다. 지역내에서 돈이 혈액처럼 흐르는 게 지역기업과 주민에게 사업과 고용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돈의 유출은 있는 기회마저 증발시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돈의 유출을 억제하고 지역 내에서 돈이 오래 머무르면서 순환하도록 지역경제를 혁신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서 제기된다.
아시아미래포럼 두 번째 날인 31일 오후에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가 함께 ‘포용성장’과 ‘지역순환경제’의 관점에서 지역의 자립적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 배제와 독식이 아닌 공존과 상생을 모색하는 ‘포용성장’은 이 세션의 열쇳말이다. 지역순환경제는 지역민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 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를 연계하고, 지역 금융을 활성화해 돈의 유출을 막는 것에서 시작한다.
228개 시군구별 지방 소멸 위험 현황. 2013년 75곳이었던 소멸위험 지역은 5년 사이 89곳으로 불었다. 한국고용정보원
“지역이 진정한 자율권과 자치권 가져야”
최근에는 균형발전을 ‘자치’와 ‘포용’이란 가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포용적 성장을 위한 지역혁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행정부처 역시 지역균형발전을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특별강연에 나서는 민형배 자치발전비서관은 “지역발전은 해당 지역의 구성원들 사이의 민주적 협치를 통해 지역의 내생적, 자율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힐 예정이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용기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포용성장을 위한 지역경제의 구조적 혁신에 대한 청사진을 제안할 예정이다. 포용적 성장 관점에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전략으로 경제구조의 ‘지역화(Localization)’를 꼽았다.
“사회적경제는 지역 자립과 경제순환을 촉진한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임경수 전주시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센터장은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던 시절의 개인과 지역, 국가의 화폐적 발전모델은 한계에 부딪혔다”며, “비교우위의 산업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화폐적 수익을 늘려감으로써 지역내총생산(GRDP)을 증가시키는 지역개발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임 센터장은 지역사회 내에서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회적경제에 초점을 맞춰 지역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해 자립과 돈의 순환을 촉진하는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홍사흠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포용성장 관점에서 본 한국 사회의 지역경제정책’을 짚을 예정이다. 국가균형발전에 관한 논의를 지역 간 격차 극복뿐만 아니라 지역 내 소득 계층 간, 공간 격차에 관한 이슈로 확대해야 한다는 게 홍 책임연구원의 의견이다. 그는 지역 간 격차와 지역 내 포용성을 진단하고, 포용적성장 관점에서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투 트랙의 정책 방향을 제안할 예정이다.
지방분권…. 지역화폐, 생활임금 등 다양한 정책실험의 길 열려야
지역순환경제는 주민의 생활공간이자 경제적 공동체인 지역이 주민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고 유통하며 분배하는 상생과 순환의 협동공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는 지역순환경제를 튼튼하게 떠받치는 버팀목이다. 지역주민과 밀착되어 활동하는 소상공인들도 마찬가지로 소중한 참여자들이다. 지방정부는 지역과 연계하여 발전하는 경제주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화폐 발행이나 생활임금 정책을 실시하는 등 생산과 소비를 지역 안에서 순환시키는데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곽상욱 오산시장과 김수영 양천구청장, 김승수 전주시장,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포용성장 관점의 지역순환경제’를 위해 실행했던 정책사례를 소개하고, 향후 정책의 청사진을 밝힐 예정이다.
토론자로 참여하는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은 “지역주민에 의해 소유되고 지역주민에 의해 함께 운영되며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기업의 육성과 순환적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며, “지방자치뿐 아니라 지역경제에서도 시민사회의 개입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토론자인 정건화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의 질서가 지배하던 지역경제가 ‘지역순환경제’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실천 영역이 무엇인지 탐색할 예정이다. 종합토론은 한국 사회의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 지역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담론과 정책에 대한 논의다. 종합토론 좌장은 ‘지역순환경제’ 담론을 한국 사회에 촉발한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이 맡았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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