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연내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정부가 우선 ‘근로자 이사회 참관제’(근로자 참관제)를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올해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한 바 있는데, 공약 이행 일정이 한 발 늦춰진 셈이다.
8일 기획재정부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이 지연될 경우에 대비해 근로자 참관제를 시범 도입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기획재정부 인재경영과장은 “노동이사제를 위한 공운법 개정은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지만 법안 통과가 늦춰지는 상황에서 근로자 참관제를 먼저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며 “우선 올해 안에 공공기관 10곳 정도에서 근로자 참관제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근로자 참관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노동이사제와 비슷하지만, 노동자 대표가 의결권을 가진 이사로 참석하는 노동이사제와 달리 노동자 쪽에 의결권은 주어지진 않는다. 기업 운용에 대한 노동자 대표의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없이 단순 참여와 의견개진 정도에 그치는 제도인 셈이다. 기재부는 노동이사제 의무화에는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근로자 참관제는 노사 합의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올해 안에 도입하기로 한 바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이 늦춰진 이유에 대해 기재부는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이사제 도입 내용을 담아 발의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경제재정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등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늦춰진 공약 이행에 있어 정부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국회 논의에만 기대고 있었을 뿐 제도 도입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온 탓이다. 노동이사제 도입과 관련해 정부가 따로 관련 법안을 낸 바는 없고 박광온 의원 법안에 대해 의견을 제출한 정도에 그쳤다. 박광온 의원 법안은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은 이와 근로자 대표를 각각 1명씩 공공기관의 비상임이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대해 정부는 ‘시민단체 추천 이사는 어렵고 노동자 대표 이사 선임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시민단체 추천인물은 안된다는 의견을 낸 것 이외에 정부가 실질적으로 법안소위 등에서 적극적으로 관련 법안을 논의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를 기업의 주요 이해당사자 가운데 한 축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제도다. 공공기관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노사협력이나 상생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반면 주주를 주인으로 하는 현대 기업 체계에 맞지 않고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제도라는 반론도 있다. 공운법 개정을 통한 중앙 공공기관에 대한 노동이사제 도입이 늦춰지고 있는 가운데, 지방자치단체들은 한 발 앞서 노동이사제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시행 중이고,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등에서도 올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 위한 조례가 통과됐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