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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장애인에게 여행은 세상에 나와도 된다는 메시지”

등록 2018-09-26 17:48수정 2018-09-26 20:10

[더 나은 사회]
장애인여행 전문 기업 ‘두리함께’
방대한 자료 ‘무장애관광지도’ 펴내
“도움만 받다 자기주장도 펴더라…
하고 싶은 게 있는 주체 된 거죠”
두리함께를 통해 제주 바닷가를 여행 중인 관광객들. 두리함께 제공
두리함께를 통해 제주 바닷가를 여행 중인 관광객들. 두리함께 제공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 ㄱ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출국을 앞두고 며칠이나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했는데, 근처 호텔을 예약하고도 공항에 발이 묶여 꼬박 이틀을 공항 바닥에서 노숙했다. 호텔 셔틀버스에는 전동 휠체어가 탈 수 없고, 장애인 콜택시는 거주 제한이 있어 타 지역 거주자인 ㄱ씨는 이용할 수 없었다.

집을 나선 순간부터 모든 것이 도전인 장애인들에겐 놀라운 얘기도 아니다. 작은 턱, 약간의 경사, 좁은 통로, 휠체어가 탈 수 없는 이동수단…. 비장애인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것조차 이들을 막아선다. 이동 자체가 어려운 판에 ‘훌쩍 떠나는’ 여행은 말 그대로 남의 이야기다. 장애인·노약자 등 ‘관광 약자’도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무장애여행’이 공정여행의 새로운 한 축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장애인에게 여행은 그냥 새로운 걸 보는 게 아니에요. 방 안에만 있던 사람이 세상에 나오는 거죠.” 무장애여행 사회적기업 ‘두리함께’ 이보교 대표의 말이다. 설립 4년 차, 지금까지 4200명 이상의 장애인이 두리함께를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고객들이 갈수록 저희를 귀찮게 해요. 몸은 힘들지만 너무 기뻐요.” 처음엔 복지관이나 가족 신청으로 끌리듯 나와 “너무 힘들어 집에 가겠다”거나 여행 왔다는 사실에 만족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여기 가고 싶다” “이것도 하고 싶다”고 자기주장을 편다. “도움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있는 주체가 된 거죠.” 이 대표는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그러나 무장애여행은 매 순간이 전투다. 장애인 50% 할인 규정 때문에 좋은 시간대와 단체 항공권 발급은 거절당하기 일쑤고, 저가항공은 아예 휠체어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비행기만이 아니다. 현재 제주도엔 공식 등록된 렌터카만 4만여대인데, 이 가운데 운전보조장치인 핸드컨트롤을 갖춘 차량은 7대뿐이다. 전동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차량도 고작 4대. 안전바가 있고 턱이 없는 숙소도 찾기 힘들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며 정부가 자랑하는 ‘열린관광지’도 수가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덜컥 믿고 여행을 떠났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두리함께를 통해 무장애여행에 나선 여행객이 휠체어를 타고 제주도를 돌아보고 있다. 두리함께 제공
두리함께를 통해 무장애여행에 나선 여행객이 휠체어를 타고 제주도를 돌아보고 있다. 두리함께 제공

화장실 물 내리는 방식까지 사전조사

그래서 이들은 발로 뛴다. “차에서 내리면 오른쪽 몇 미터 위치에 화장실이 있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칸이 몇 개, 너비는 몇 센티, 물을 내리는 방식이 버튼식인지 누름식인지, 문은 미닫이인지 여닫이인지, 계단이나 턱이 있는지, 있으면 몇 센티인지까지 사전조사를 해서 알려드리죠.” 이용객 취향도 세심하게 파악한다. 자연경관도 반응이 좋지만, 의외로 공연을 선호하는 이도 많다. 장애인 대부분(89%)이 중도장애인인데, 이들은 장애가 생기기 전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가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이렇게 모인 어마어마한 정보를 모아 올해 ‘무장애관광지도’를 내놓았고, 필요한 정보가 바로 제공되는 가상현실(VR) 여행도 준비 중이다.

이 대표는 “장애인 여행객이 늘어나니 무장애시설을 갖추는 곳도 생겼다”며 “수익과 효율만 따지는 일반 여행사는 절대 우리처럼 못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항상 마음에 품고 있다며 이 대표가 보여준 한 이용객의 문자메시지는 이런 여행이 장애가 있는 여행객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준다. “여행에 참여한 고아무개씨 부인입니다. 그이가 갑자기 (세상을)떠날 줄 알고 여행을 갔나 봐요. 뜻을 이루고 가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장애인들이 제주를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주/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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