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들이 혼밥족을 위한 간편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기 작가 공지영의 출세작이다. 1993년 강고한 남성 지배 사회에서 여성들의 홀로서기를 촉구해 큰 파장을 불렀다.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따온 책 제목은 대한민국 중장년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다. ‘직장 인생’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선 남성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경전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어렵지만, 아내나 부하 직원, 비서, 기사 등에게 많은 부담을 준 생활과 작별할 시기가 됐다.
가사노동 등 일상의 여러 의무를 면제받는 데 요긴했던 ‘돈벌이 핑계’는 퇴직과 함께 사라진다. 중장년 남성들이 노후로 가는 길목에서 첫 번째로 마주치는 과제가 자기 앞가림이다. 그동안 생계를 책임지느라 고생 많이 했다는 위로는 잠깐이다. 대접받는 버릇을 버리지 못해 오롯이 짐만 되는 중장년 남성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보험연구원의 2016년 보고서 등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배우자와 사별 또는 이혼해 홀몸인 고령자의 사망률이 배우자가 있는 사람보다 서너 배 높다. 나이 들어 혼자 살아가기가 얼마나 팍팍한지 잘 보여준다. 부인이 사망한 뒤 1년 안에 숨진 남성 비율은 더 도드라진다. 자신을 돌봐주던 부인의 부재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이 많다는 얘기다. 이렇게 남성의 ‘노후 생존력’은 상당히 취약하다.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혼자 사는 65살 이상 남성은 여성의 3분의 1 수준이다.
노후의 ‘삼시세끼’
홀로서기는 모든 걸 ‘혼자서’가 아니라 ‘혼자여도’ 해낸다는 뜻이다.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노후가 가능하다. 제 손으로 끼니를 챙겨 먹는 게 익숙지 않은 이들에겐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것부터 녹록지 않다. 퇴직하고 집 안에만 죽치고 앉아 부인의 세끼 상차림을 기다리는 ‘삼식이’ 타령이 흔한 농담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집안일 하는 남성, 요리가 취미인 남성도 늘어나는 추세지만 지금의 중장년 세대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정년이 5년 남짓 남은 중견기업 부장 P씨는 몇 년 전부터 노후를 위한 ‘작은 실천’을 해오고 있다. 아침 식사 차리기다. 아침 식사가 필수인 그는 다양한 시도를 거쳐 과일, 야채, 빵에 두유를 곁들인 맞춤형 메뉴를 개발했다. 손이 가장 덜 가면서도 공복감을 없애주는 땟거리다. 아침을 스스로 해결해온 오랜 경험은 끼니 준비의 고민과 부담도 크게 낮춰줬다. 인터넷에 요리법이 넘쳐나고, 간편식과 편의점 도시락이 잘 나와 끼니 해결의 어려움은 꽤 줄었다.
폼 나게 사는 것도 생존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자맥질을 하는 것처럼. 기본은 먹고, 입고, 자는 것이다. 의식주만 제 손으로 감당해도 노후 준비의 입문편은 끝낸 것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밥상 차리기, 설거지, 빨래, 청소는 정말 귀찮다. 자질구레하기 그지없는 일상은 돈으로 때우기도, 누가 대신해주기도 쉽지 않다.
집안일과 같은 궂은일도 근력 운동과 비슷하다. 운동을 하면 자연스레 근육이 붙듯이, ‘집안일 근육’이란 것도 생긴다. 집안일은 ‘돕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인식과 실행이 뿌리내리면 홀로서기의 기초가 다져진다. 여성이라면 근력을 좀 더 키우고 전구 갈아 끼우기나 간단한 가전제품과 공구 다루기 정도는 익힐 필요가 있다.
홀로 선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자립을 포함한다. 몸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순간 삶의 질은 급속히 떨어진다. 두 다리로 가고 싶은 데를 가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과 침대에 등짝을 붙이고 누군가의 돌봄을 기다리는 것은 ‘극과 극’이다.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돌봄을 받지 않는 것은, 가정경제는 물론 사회에도 크게 기여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7년 나이대별 진료비 현황을 보면, 전체 69조원에서 50대 18%, 60대 19%, 70대 이상이 29%를 차지했다. 50대 이상이 전체 의료비의 3분의 2에 가까운 45조원을 쓴 것이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0%가 넘는 돈이다. 의료비는 해마다 6~7% 늘어나는 추세다. 노인 돌봄 비용도 2016년에 이미 5조원을 넘어섰다. 병원 갈 일은 별로 없는데, 월급의 3% 이상이 건강보험료로 꼬박꼬박 나간다며 너무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사회에 큰 보탬이 되고 있으니.
정신적 자립은 자기 생각과 의지대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토대다. 늙어갈수록 외로움의 무게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자신의 외로운 모습이 더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요즘 1인 가구가 빠르게 늘고 혼밥, 혼영, 혼행, 혼술 등이 추세가 되면서 그나마 환경은 많이 나아진 셈이다.
반면, 인간은 홀로 있을 때 존재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젊은 시절에는 거부할 수 없었던 꾸밈의 유혹과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짜 자신과 마주할 기회가 생긴다. 나이가 주는 여러 축복의 하나다. 정신적 홀로서기는 노후가 그저 덤으로 주어지거나 쇠락해가는 시간만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경제적 자립의 필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반드시 돈이 넉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벌어뒀거나 버는 범위에서 쓰고, 불요불급하지 않은 씀씀이는 줄인다는 마음가짐과 지혜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자존감이 크게 상하지 않을 정도면 적절하겠다.
‘최고의 노후’
나이 든 사람은 돌봄과 부양이 필요한 존재로만 각인돼 있다. 고령화를 끔찍하게 여기고 그 대책에 골머리를 앓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죽음이 임박한 즈음이 아니라면 제힘으로 당당하게 사는 게 그리 힘들지 않다. 주변 사람과 사회에 주는 부담을 더는 것만으로도 홀로 서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외부와 고립된 채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품앗이와 연대, 나눔은 나이가 들수록 더 중요해진다. 건강한 관계는 자신이 홀로 설 때 가능하다. 육체적·경제적 여유가 있어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만큼 좋은 노후는 없다. 50살 이상 회원이 3500만 명인 세계 최대 시니어 단체 AARP의 창립자 에델 퍼시 앤드러스가 제시한 모토는 ‘돌봄을 받는 게 아니라 주는’ 시니어다.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면 돌봄 부담을 줄이겠다는 작은 목표 세우기를 권한다. 가장 사소한 일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실천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길을 아는 것보다 한 발짝씩 그 길을 걸어가는 게 훨씬 중요하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