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경제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열린 ‘사회적경제 분야 경제교육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오로지 돈과 성공의 논리만을 좇아 모두가 치열한 경쟁의 수레바퀴 속으로 뛰어들다 보니 불평등의 골은 갈수록 깊이 패이고 있다. 불평등 확대가 불러온 상처는 사회의 응집력을 약화시키고 신뢰 기반을 갉아먹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혹한 현실을 이겨낼 담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첫걸음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달리 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관점의 변화는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결국엔 사회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우리 모두가 ‘이기적 개인’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때 ‘협력적 사회’는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기 마련이다.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서형수·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가 공동주관해 열린 ‘사회적경제 분야 경제교육 포럼’은 국내 사회적경제 교육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과제를 공유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경제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엔 전국 곳곳의 사회적경제 분야 활동가와 연구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현장에선 ‘경제교육 패싱’ 일어나기도
참석자들은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어려움을 넘어서기 위해선 사회적경제 분야 경제교육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행사 진행에 앞서 서형수 의원은 “연대와 협동의 가치를 경제의 중요한 원리이자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서도 시급히 서둘러야 할 일”이라며 “민주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자유와 책임, 연대와 협동의 원칙과 실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자”고 말했다. 김정우 의원도 “사회적경제가 확산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해당 영역에서 활동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인재가 사회적경제로 지속적으로 유입되도록 하는 종합적·체계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축사를 맡은 임종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대표는 “사회적경제 교육에서 학교와 지역공동체를 연결하는 실질적인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낸 뒤 “각 업종별로 현장에서의 사회적경제 전문인력을 활용해 업종별 멘토링 과정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영사를 통해 “연대와 협동의 가치를 경제의 중요한 원리이자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서도 시급히 서둘러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송진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사회적경제 교육을 널리 확대하자는 공감대는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정부 역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5일 ‘4차 경제교육관리위원회’를 열어 올해 경제교육 추진 방향과 과제 등을 심도있게 다룬 바 있다. 이 자리에선 특히 공유와 나눔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경제교육을 활성화하자는 논의도 이뤄졌다. 앞으로 교육과정 개편 단계에서 사회적경제가 정식 커리큘럼에 반영될 가능성도 커졌다.
그럼에도 정작 일선 교육 현장의 발걸음은 더딘 편이다. 여러 한계와 장애물이 적지 않은 탓이다. 발표자로 나선 최종민 한국경제교육학회장(전북대 사대 교수)도 이른바 ‘경제교육 패싱’이 이뤄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경제 과목이 이론 중심이고 서술적·수리적이다 보니 학생과 교사 모두 어렵게 여긴다”며 “민주 시민에게 반드시 필요한 경제원리를 다양한 경제현상과 사례 중심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교육은 이데올로기 싸움의 장”
사회적경제 교육의 관점을 좀 더 분명하게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일선 교육 현장에 깊이 침투한 과도한 경쟁의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협력적 사회의 기초를 튼튼히하게 뿌리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 교육이 단지 또 다른 ‘경제’ 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은 “사회적경제 분야 경제교육은 개인 인성을 교육하는데서 나아가 사회자본을 형성하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며 “협동하면서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상상할 수 있도록 자극제가 되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신뢰와 협력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자본을 불평등 확대와 과도한 경쟁을 제어하는 방어막으로 삼자는 얘기다.
사회적경제 분야로의 신규 인력 유입이 저조한 현실을 일깨우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수원 전국학교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은 사회적경제 인재 양성에 대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창업지원엔 1인당 교육비 138만원이 투자되는 반면, 학생은 5만원에 불과한 현실을 꼬집었다. 주 위원은 “교육전문가와 지원 인력 등 분야별 전문가 양성과정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와 지역과 협력하는 풀뿌리 인재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세 명의 발표에 뒤이어 다양한 각도에서 사회적경제 교육의 현실을 짚는 토론이 진행됐다. 안현효 대구대 교수는 “경제학은 시장과 국가의 대립 속에 구성되는데 사회적경제는 이쪽에도 저쪽에도 포함되지 않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경제교육은 이데올로기 싸움의 장이라 단어 하나를 바꾸는데도 엄청난 이론 싸움이 벌어지므로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인숙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우리 나라에서 사회적경제가 교육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열린 사회가 되는 징표라 생각한다”며 “사회적경제 교육의 핵심은 자신의 필요를 얘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생각할 수 있는 통로 열어줘야”
이밖에 사회적경제 교육에 힘써온 당사자들의 귀한 조언도 잇따랐다. 심재학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교육실장은 “사회적경제의 공감대를 더욱 넓히려면 주입식이 아닌 맞춤형 교재를 개발하고, 새로운 교수법이 필요하다”며,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 확산을 위해선 새로운 정책과 예산 확대 등 새로운 주의 환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성호 삼양초등학교 교사는 “경제를 다루는 교과 안에 ‘경쟁’이라는 단어가 38번이나 등장한다”며, “옳고 그름을 떠나 다양한 가치를 제시해 아이들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국 전북지역경제교육센터장은 전국 15개 지역경제교육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경제 교육을 소개한 뒤, “사회적경제가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뛰고있는 실질적인 현장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마주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를 맡은 송경용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 공동의장은 “세계 최대 협동조합그룹인 몬드라곤의 힘은 교육에 있었다”고 강조한 뒤, “사회와 경제 영역 사이에서 통합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경제의 특성상 ‘교육’ 분야에서 정의와 방법론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