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31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부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 1.5%에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회의를 주관하는 이주열 금통위 의장. 한국은행 제공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1일 기준금리를 현 1.5% 수준에서 동결했다. 최근 고용지표와 각종 경기지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이 자칫 경기위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자본유출과 가계부채 리스크 등을 고려해 오는 10월 또는 11월 금통위 회의 때 인상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회의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글로벌 무역분쟁과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 신흥국 금융불안 등 향후 성장경로상 불확실성이 높은 점, 그리고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아직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앞서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올해 들어선 이날까지 여섯차례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내리 동결 결정을 내렸다. 이날 금통위에선 이일형 위원이 지난달에 이어 연이어 인상 의견을 냈다.
연초만 해도 시장에서는 상반기 또는 늦어도 7~8월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빗나가고 말았다. ‘금리인상 시기를 실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해 이 총재는 “지난해 11월 금리를 올리며 ‘완화 정도를 줄여나가겠다’(기준금리 인상)고 한 뒤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급속도로 커졌다. 그래서 연초부터 (인상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 신흥국 금융위기 조짐, 미-중 무역 분쟁 등 악재가 기준금리 인상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다.
낙관하기 힘든 경제상황으로 인해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대신 자본유출 우려와 가계부채 리스크는 더욱 커지게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 사이에 세차례 정책금리를 올려, 미국 정책금리는 현재 1.75~2%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시장인 미국보다 한국이 0.5%포인트 낮은(상단 기준) ‘금리 역전’은 자금 유출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다음달 미 연준의 정책금리 추가 인상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인데, 이 경우 한-미 간 금리차는 0.75%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 바탕해 최근 3년가량 급증한 가계부채도 고민거리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총량이 이미 높은 수준에 와 있고, 증가율이 여전히 소득증가율을 웃돌고 있어 금융불균형의 정도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며 “통화정책을 운용함에 있어 경기, 물가도 짚어봐야 하지만 (현재는) 금융안정에 좀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처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의중을 내비친 셈이다. 하지만 경기가 지금보다 개선되지 않는 한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집값 과열 등 경기 현안과 관련해 이 총재는 “고용부진이나 주택시장 과열 문제는 경기적 요인보다는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어서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최근 수도권의 집값 오름세의 배경에 대해, “수급 불균형도 있고 일부 지역의 개발 계획, 그에 따른 가격 상승 기대가 확산된 점,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고 대체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빠른 상승은 지자체 개발 계획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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