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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를 잡아라 2. 인도네시아- ① 복합쇼핑몰의 천국
2018년 8월18일부터 9월2일까지 열리는 ‘18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둔 7월3일 방문한 자카르타 시내 곳곳은 굉음과 함께 도로·빌딩 준설 등을 포함한 인프라 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루 종일 꽉 막힌 도로,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모호한 좁은 길을 오가는 차량과 오토바이, 미세먼지를 보고 있자니, 마치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둔 서울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2억6천만 명에 이르는 세계 4위 인구대국. 2014년 이후 매년 평균 5%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잠재력을 가진 인도네시아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님을 곧 알아차렸다. 후덥지근한 거리를 지나, 시내의 고층 건물 안에 들어서니 별천지가 펼쳐졌다. 대리석의 벽과 바닥, 화려한 조명 등으로 꾸며진 크고 웅장한 쇼핑몰들이 나타났다. 인도네시아가 ‘쇼핑몰 천국’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스타필드가 자카르타에
인도네시아는 ‘냉방’과 ‘치안’이 확보된 공간에서 소비와 여가를 즐기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잡았다. 이른바 ‘몰링‘(malling)이다. 쇼핑몰에서 쇼핑하고, 외식하고,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기는 트렌드를 말한다. 한국의 스타필드가 이를 모방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짧은 거리를 갈 때도 차량과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바깥 생활을 거의 하지 않는 이들의 생활 중심지가 쇼핑몰이다. 평일엔 친구와 연인끼리, 주말엔 가족 단위 방문이 많다.
외국 기업의 직접투자가 활발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중산층이 빠르게 형성된 것도 몰링 문화가 확산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14년 친서민·개혁 성향의 조코 위도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실행한 ‘조코노믹스’(Jokonomics)라는 개혁·개방 정책의 결과물이다. 조코 위도도 정부의 경제개혁 실효성은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두잉 비즈니스 인덱스(DB)’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106위였던 인덱스 순위가 2018년 72위로 34계단 상승했다.
특히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누리는 젊은층이 더 적극적으로 지갑을 연다. 이들은 라이프스타일·의류·화장품·인테리어·식료품·문화·미용·쇼핑 등 서비스산업에 기반한 내수시장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자, 한국 등 외국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는 일등공신이다. 김병삼 코트라(KOTRA) 자카르타무역관 관장은 “백화점, 영화관, 마트, 레스토랑 등을 두루 갖춘 현대식 쇼핑몰은 쇼핑 공간을 넘어 시민들의 생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인도네시아는 수년 전부터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투자처다. 수년 전부터 CGV, 롯데백화점과 롯데면세점, 뚜레쥬르,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등 국내 서비스 관련 기업들이 중산층과 젊은층을 겨냥한 쇼핑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출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산층 성장… 한국 기업 진출 유리
7월3일부터 6일까지 자카르타 시내의 여러 복합쇼핑몰을 둘러봤다. 그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샤넬·프라다·루이뷔통 등 명풍 브랜드부터 자라·유니클로·H&M에 이르는 중저가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입점해 있었다. 한국과 달리 쇼핑몰 안에 백화점이 입점한 구조라 매장의 총면적이 넓고, 영화관·마트·레스토랑 등을 골고루 갖춘 모습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한국과 가격 차이도 거의 없어 이들의 소득수준(1인당 국내총생산(GDP) 4051달러·세계 114위)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았지만, 매장마다 손님으로 북적였다. 중산층이 그만큼 두껍다는 뜻이다.
세계은행의 인도네시아 경제 자료에 따르면 하루 수입 15달러 이상을 중산층, 1달러 이하를 빈곤층으로 정의한다. 2017년 기준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5200만 명이 중산층이며, 이들의 소비가 전체 가계 소비의 43%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매력지수에서도 인도네시아는 2013년 세계 18위를 차지했고, 2030년에는 7위, 2050년에는 4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미용·패션 등에서 소비가 큰 한국과 달리, 사계절 변화가 없는 인도네시아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소비가 크다.
‘쇼핑몰 도시’라는 자카르타에는 전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쇼핑몰이 수십 개에 이른다. 그랜드인도네시아, 센트럴파크몰, 몰오브인도네시아, 퍼시픽 플레이스몰, 플라자 스나얀, 폰독인다몰, 간다리아 시티몰, 롯데쇼핑에비뉴 등이 대표적이다.
쇼핑몰에서 즐기는 식사·여가·문화
7월5일 롯데그룹의 자랑거리인 자카르타 메가 쿠닝안 지역 ‘롯데쇼핑에비뉴점’를 찾았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면세점, 계열사인 롯데리아, 엔제리너스 등이 입점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1층 출입구 옆에 있는 엔제리너스 매장. 평일 오전이지만 매장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이들의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지만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송상현 롯데리아·엔제리너스 인도네시아법인장은 “인도네시아산 원두를 블렌딩하는 현지화에 성공해 2017년 매출이 40%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몰 4층에 입점한 롯데리아 역시 치킨세트 1개당 3만3천~4만4천루피아로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인기가 많다. 송상현 법인장은 “불닭치킨, 양념치킨과 밥을 함께 제공하는 등 한국적인 매운맛을 선호하는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덕분에 KFC와 맥도널드보다 후발 주자임에도 빠르게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선 문화·식음료(F&B)를 강화한 복합쇼핑몰의 전망이 밝다. 현재 롯데쇼핑에비뉴점만 해도 500여 개 점포가 입점했지만, 근린시설을 더욱 확장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남승우 롯데백화점 인도네시아법인장은 “인테리어, 침구, 홈패션, 식기와 주방용품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매장을 점점 늘릴 것”이라고 했다.
젊은층 사이에선 이제 쇼핑몰은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니다. 일상의 탈출구이자 놀이터, 신문화를 접하는 첨단기지다. 그랜드인도네시아몰에서 만난 직장여성 리카(23)는 “이슬람 사원 대신 쇼핑몰을 찾는 걸 더 좋아한다”며 “친구들과 부담 없이 수다를 떨 수 있고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패션, 영화 등도 즐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인도네시아 쇼핑몰마다 극장이 있다. 그랜드인도네시아몰 7층 CGV의 겉모습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널찍한 휴게 공간, 팝콘과 음료 판매점이 흡사했지만, 극장 외에 가상현실(VR) 체험 등 놀이 공간이 넓은 것이 특이했다. 쇼핑몰 문화에 익숙한 현지인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마헨드라(31·남)는 “로컬 영화 비중이 높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져 한 달에 한두 번 영화를 볼 때마다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마리아(27·여)는 “상영관 주변에 휴식 공간이나 놀이시설 등이 다른 극장들보다 잘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에 좋아 종종 찾는다”고 했다.
2012년 진출한 이후 현재까지 사이트(극장) 46개와 스크린 300개를 보유한 CGV는 1위 ‘XXI’에 이어 극장업계 2위로 성장했다. CGV는 2020년까지 90개 사이트를 확보할 계획이다. 김경태 CGV 인도네시아법인장은 “잠재고객이 될 젊은층에 비해 절대적으로 스크린 수가 적지만 시장은 매년 12% 이상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급 브랜드로 승부 건 ‘라네즈’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화장을 즐긴다. 덥고 건조한 기후와 미세먼지 탓이다. ‘K-뷰티’에도 관심이 많다. 소득수준과 맞물려 비싼 스킨케어 시장 확대도 점쳐지고 있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화장품 시장은 마켓과 드러그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로레알, 존슨앤드존슨 등 저가 브랜드가 90% 이상을 선점하고 있다. 2013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이 설화수, 라네즈, 이니스프리 등을 앞세워 틈새시장 공략을 위해 뛰어든 상태다.
7월4일 오전 10시, 개장과 동시에 자카르타 시내 폰독인다몰에 있는 라네즈 플래그십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손님들이 있었다. 푸른 용기로 ‘워터’(촉촉함)를 강조한 여러 스킨케어 제품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중년여성 리나(52)는 “친구들이 사용하는 안티에니징 크림이 수분이 많고 촉촉해 써볼까 해서 방문했다”며 “건조함이 사라져 당기는 느낌이 없을뿐더러 각질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매장 점원인 라트나 드위 옥타비아니(24)도 “스킨케어뿐 아니라 립스틱도 수분이 많아 갈라지고 건조한 느낌이 없어 즐겨 쓴다”고 했다.
‘건강 빵’ 이미지로 성공한 뚜레쥬르
7월7일 오후 자카르타 중심부에 있는 코타카사블랑카몰 내 뚜레쥬르 매장. 매장 안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고객이 빼곡했다. 그룹 샤이니의 노래 <데리러 가>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뚜레쥬르는 2011년 첫 진출 뒤 자카르타에만 43개 매장이 입점했을 정도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식음료 브랜드 중 하나다. 품질과 맛, 가격을 높여 프리미엄 베이커리 브랜드로 특화한 것이 주효했다.
정인철 매니저는 “뚜레쥬르 하면 맛있고 건강하고 좋은 원료를 쓰는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다. 가격이 10~20% 비싼데도 품질과 맛,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히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매장의 하루 평균 고객 수는 500~600명으로 대부분 30~40대 중산층 이상의 여성 고객이다. 티우란(38)은 “일주일에 두세 번 와야 할 정도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이다. 맛과 형태가 다른 브랜드보다 뛰어나다.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품질을 고려하면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과도 종종 이곳에 들른다. ‘농크롱’(같은 공간에 모여 함께 이야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정 매니저는 “무슬림이어서 대부분 술을 마시지 않아 단맛을 즐긴다. 빵에 설탕·치즈·초콜릿이 많이 들어가는데, 한국보다 당도를 높인 크림치즈호두빵과 단팥빵이 대표 인기상품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시각 뚜레쥬르 매장 앞 ‘브래드톡’ 매장. 한산함을 넘어 적막하기까지 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수시로 현지 시장조사를 해 고객 트렌드에 맞춰 2개월에 한 번씩 신제품을 론칭하는 등 끊임없는 제품 개발과 현지화·차별화가 주요한 성공 비결이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자카르타에 있는 폰독인다몰 전경.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그랜드인도네시아몰 7층에 입점한 CGV 전경.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롯데백화점에비뉴점에 입점한 F&B매장 위치를 안내해주는 알림판.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폰독인마몰에 입점한 라네즈 플래그십 매장을 방문한 리나(왼쪽)가 직원에게 스킨케어 제품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코타카사블랑카몰 내 뚜레쥬르 매장.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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