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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3선 서울시장의 세 가지 숙제

등록 2018-07-19 16:30수정 2018-07-19 18:41

[HERI의 눈]
피부 와닿는 사회혁신의 체감도 높이고
도심부 개혁해 ‘녹색교통 천국’ 만들어야
서울과 지방의 상생은 가장 시급한 과제
대규모 재개발사업 유혹에서 벗어나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선과 시장 3선 출마 여부를 놓고 고민할 때, 나는 부디 그가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해 기왕에 시작한 일을 꼭 마무리지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의 바람대로 박 시장은 사상 최초로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해 당선됐고, 최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서울시장을 세 번씩이나 한 사람은 박 시장이 처음이라지만, 도시를 근본적으로 바꿔낸 시장들 중에는 3선 이상, 10년 이상 시장 자리를 맡았던 경우가 아주 많다. ‘자동차 도시’를 사람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뉴욕시장에 당선된 마이클 블룸버그는 12년 재임 기간 중 하이라인 및 브로드웨이 보행광장 조성, 공공자전거 도입 등 많은 성과를 냈다. 130년 만에 좌파 파리시장으로 당선돼 센강변 고속도로를 해변으로 바꾼 베르트랑 들라노에도 13년 동안 파리시장직을 맡았다.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전 베를린 시장도 13년, 자크 시라크 전 파리시장은 18년 장기집권을 했다. 브라질 꾸리찌바를 세계 도시혁신의 원조로 만든 자이메 레르네르는 꾸리찌바 시장 세 번, 파라나주 지사 두 번을 합해 20년을 자치단체장으로 일했다.

혁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 주요 대도시 혁신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서울을 바꾸는 데에도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이 지난 6년 반 동안 벌여온 도시혁신과 사회혁신의 대장정을, 4년을 더해 10년 혁명으로 완수해주길 바란다.

도시를 바꾸는 혁명

박 시장을, 아니 박원순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 명함에 적힌 ‘소셜 디자이너’라는 생소한 단어에 잠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희망제작소를 출범시키면서 당시 내가 일하던 서울시정개발연구원보다 훨씬 더 나은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듣고 살짝 빈정이 상하기도 했다. 이후 희망제작소에 자주 불려가 단체장을 꿈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면서, 그의 명함에 적혀있던 소셜디자이너가 사회혁신을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이란 걸 이해하게 됐다. 그의 꿈대로 많은 인재들이 시장, 구청장, 군수에 당선돼 도시를 바꾸는 것을 지켜보면서, 또 그 자신이 서울시장이 되어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그가 품었던 사회혁신의 꿈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혁신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혁명이다. ‘깨작깨작’ 조금씩 바꾸는 게 아니라 근본을 뒤집고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자동차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도시공간을 재편하는 일이고, 시민이 도시의 주인으로 등장해 주인답게 도시 살림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일이다. 한줌 정도 기득권 세력들이 오래도록 권력을 쥐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민들은 내내 고달픈 삶을 대물림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 이게 혁명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시를 바꾸는 혁명, 세상을 개혁하는 혁명이다.

민선7기 ‘서울혁명’으로 바꿀 게 아주 많겠지만, 특히 다음 세 가지 과제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혁신의 체감이고, 둘째는 도심부 개혁, 그리고 셋째는 서울과 지방의 상생이다.

박 시장이 지금까지 해온 숱한 일들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사회혁신이다. 마을공동체, 협치, 공유도시, 사회적경제, 청년허브, 50+ 캠퍼스, 찾동, 안심주택, 걷는 도시 등 많은 정책과 사업들은 결국 서울 시민의 삶을 혁신하자는 것이다. 일자리와 주거, 임대차와 복지 등 시민의 고달픈 삶 전반을 바꾸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회혁신의 구체적 내용들이 정작 덜 알려져 있고, 그 효과 또한 덜 체감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서울시가 지난 6년 동안 지원해온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을 서울시 지도 위에 표시한 걸 보면, 나머지 지역이 빽빽하게 채워진 것과 달리 강남·서초·송파구 일대는 듬성듬성 비어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실제 참여자들도 적고 사업 인지도도 낮다. 구청장과 시장의 소속 정당이 달라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연대가 느슨한 탓도 있겠고, 박 시장에 대한 호오가 엇갈려 귀를 닫은 시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 홍보와 설득 논거에도 문제가 있었는지 모른다.

‘시민 모두를 위한 일’ 설득 힘써야

도시혁신과 사회혁신은 시민 모두를 위한 일이다. 공고한 기득권 일부는 혁신으로 빼앗기는 게 싫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 시민들에게 혁신은 곧 나를 위한 일, 내 자녀와 부모의 편안한 삶을 위한 일이다. 서울시의 청년정책들은 강남의 청년들에게도 필요한 일이고, 50+ 또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강남의 베이비부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혁신이 시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고, 어떤 실리를 가져다주는지를 쉽고 분명한 팩트를 가지고 설명하고 보여주기 바란다. 알아듣고 믿게 말이다.

도심부 개혁에도 좀 더 힘을 실으면 좋겠다. 서울시는 이미 4대문 안 서울 도심부를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했고, 종로 버스전용차로와 자전거 전용차선 도입 등 도심부 개혁은 이미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녹색교통진흥지역답게 서울 도심부가 녹색교통의 천국이 되도록 시민의 공감, 특히 도심부에 살고 일하는 종로·중구 구민들의 동의와 지지 속에 근본적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서울 도심부는 대중교통과 녹색교통 전용지역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자전거와 보행으로 어디든 오갈 수 있는 곳, 적색교통이 없으니 쾌적하고 맑은 공기를 향유할 수 있는 곳, 거리와 골목마다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이 늘 오고가는 곳, 넘치는 보행자들의 사랑을 먹고 경제생태계와 활력이 짱짱하게 유지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와 정도, 그리고 순서에 있다. 가장 쉬운 일부터 시작해서 그 효과를 함께 공유하고, 조금 어려운 일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서울시가 무례하게 밀어붙이는 방식 말고, 미리 의논하고 충분히 준비하고 연습하면서 시행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좋다. 낙원상가에서 오랜 시간 바이올린 가게를 운영해온 형님이 계신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도심에서 열리는 집회·시위에 대해 아주 원색적으로 비난하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도심 데모와 차량통행 제한이 자신의 생계에 직격탄이 되리라 생각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도심부를 대중교통과 녹색교통 위주로 개편하면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아니라 오히려 이익이라는 점을 함께 확인할 수 있어야 도심개혁의 속도가 붙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지방의 상생은 가장 시급하고 중한 과제다. 서울시장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이 일을 잘해 서울시가 살기 좋아지면 원하든 원치 않든 지방에 피해를 준다. 블랙홀처럼 사람과 일과 활력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박 시장이 하루 빨리 이렇게 선언했으면 좋겠다. ‘제 임기 중에 서울시민 100만 명 또는 200만 명을 지방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서울시의 인구 감소는 서울의 실패가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상생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것입니다. 서울에서 밀려 내려가는 게 아니라, 지방을 살리고 국토를 살리기 위한 사명을 품은 자발적 하방을 지방에서도 따뜻이 맞고 환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과 지방의 상생을 위해 저는 지방의 단체장들과 긴밀히 협력하겠습니다.’

대규모 토건사업은 금물

오늘날 도시재생의 핵심은 서울과 수도권의 비대화와 지방 농·산·어촌의 인구소멸 위기에 있다. 개발시대에 물건 만들어내듯 도시를 만들고 살아온 지난 세월의 누적된 지병을 치유하려면 이제 도시를 생명체로 보고 죽어가는 생명을 회생시켜야 한다. 서울 따로, 경기 따로, 지방 따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국토가 한 몸, 한 덩어리 생명체다. 대한민국의 도시재생은 지방재생에서 시작돼야 하고,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 말고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서울의 청년들과 중장년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살고 일할 명분과 실리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다채로운 길을 만들고 열어주길 바란다. 서울과 지방의 상생을 위한 다양한 교류와 협력도 필요할 터이나, 핵심은 사람에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지방에 내려가 서울에서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 수 있다는 확신과 사례들을 만들어줘야 한다.

때는 참 좋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같은 지향으로 일하고 있고, 서울과 지방의 단체장들도 국민과 시민을 위한다는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 아닌가. 3선 서울시장이 맨 앞에서 치고 나가고, 그 성과들이 공감과 지지를 늘려간다면, 이내 들불처럼 번져갈 것이다.

뱀다리로 몇 마디만 덧붙인다. 소셜디자이너 즉 사회혁신가는 토건시장과는 상극이다. 혹여 사회혁신 대신에 개발과 재개발로 가지 않길 바란다. 재생을 명분으로 내건 개발과 재개발도 마찬가지다. 지하도시, 도로지하화, 철도지하화 등도 다르지 않다. 대단위 재개발이나 신개발 대신 오래된 건물과 장소를 하나하나 고쳐 쓰는 게 도시재생이다. 앞으로 4년, 서울에서 대규모 토건사업들이 더는 벌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둘 다 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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