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열린 한 취업지원 행사에서 탈북자들이 채용공고판을 살펴보는 모습. 최근 들어 탈북자들의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사회적기업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인천 남동구의 주택가에 자리잡은 5층짜리 낡은 건물. 이 건물 3층의 약 400㎡ 넓이 공간 입구엔 ‘해주부용식품’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북한식 만두를 제조·포장해 대형마트 12곳에 납품하는 업체다. 윤향순(46) 대표는 청진예술대를 졸업하고 철도총국 당 선전부 아나운서로 일하다 2006년 남한 사회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새터민). 한국 땅을 밟은 지 6개월 만에 무턱대고 길거리 행상 일에 뛰어든 윤 대표는 이후 식당을 운영하다 2012년 해주부용식품을 설립했다. 과거 고향(해주)에서 즐겨 만들어 먹은 까닭에 누구보다 익숙한 만두를 아예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셈이다. 인천 남동구 일대는 국내에서 새터민이 가장 밀집된 지역으로 꼽힌다.
해주부용식품은 설립하고 3년이 지난 2015년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설립 초기 피할 수 없던 여러 어려움도 사회적기업 인증을 계기로 서서히 줄어들었다. 현재 한국인은 물론이고 탈북자와 결혼이주자 등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8명의 직원이 함께 땀 흘려 일하고 있다. 윤 대표는 “사회적기업에 주어지는 인건비나 사업개발비 지원 혜택을 보고 있다”며 “대신 채용률과 직원 복지 상태를 철저하게 유지하는 등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매출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모어댄, 새터민에 고객 대면 업무 맡겨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새터민들에게 사회적기업이 새로운 생존 해법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작정 냉혹한 이윤 논리만을 좇는 대신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기업운영 원칙이 새터민들에게 일종의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해주부용식품처럼 새터민이 직접 사회적기업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새터민에게 적극적으로 일자리 문호를 넓히는 국내 사회적기업 사례는 많다.
버려지는 차량 가죽이나 시트를 이용해 가방과 지갑 등을 만드는 새활용(업사이클링) 전문 사회적기업 ‘모어댄’이 대표적이다. 2015년 6월5일 ‘환경의 날’에 탄생한 모어댄은 최근 프리미엄 가죽 백팩 및 지갑 브랜드인 ‘컨티뉴’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모어댄은 비영리기관 추천과 면접을 통해 새터민들에게 꾸준히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이 밖에도 빌딩 미화 및 주차관리 업체인 송도에스이, 탈북여성과 결혼이주여성의 등의 일자리 창출과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만든 소셜 프랜차이즈 카페 ‘카페오아시아’ 등 새터민을 보듬어 안는 사회적기업의 수는 차츰 늘고 있다.
인천 남동구에 자리잡은 사회적기업 해주부용식품의 생산시설 내부. 최우성 기자
이처럼 새터민들에게 사회적기업이 한층 의미있게 다가서는 배경은 무엇일까? 극히 이질적인 성격의 사회 환경에 맞닥뜨린 새터민 입장에서 볼 때, 일반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 흡수’ 기능을 잘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해주부용식품의 윤향순 대표는 “새터민은 대부분 생각이나 습관 등이 거의 굳어진 상태에서 (한국으로) 넘어오기에 한국 사회나 기업조직에 적응하기 여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모어댄의 최이현(37) 대표도 “비록 평생직장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남한 사회와 대면하는 접점 기회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며 사회적기업의 고유한 역할에 무게를실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새터민 출신 직원들에게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판매 업무를 맡기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새터민을 주로 제조공정 등에만 투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현실이 장및빛만은 아니다. 사회적기업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결코 적지 않은 편이다. 상당수의 새터민들이 정부가 다달이 지급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단기 일용직에 나서는 걸 오히려 선호하는 엄연한 현실도 무시할 순 없다. 이렇다 보니 한 업체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며 경쟁력을 쌓기보다는 급여 조건에 따라 이리저리 일자리를 수시로 옮겨 다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사회적기업 대표는 “일용직을 나가면 돈을 훨씬 더 받는데 새터민이라고 굳이 여기서 일하려 들겠느냐”며 “기업문화 면에서 사회적기업이 유리한 건 맞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고 꼬집었다. 이 업체도 한때 새터민 채용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나 지금은 이주노동자가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해주부용식품 윤향순 대표. 2006년 한국 땅을 밟은 새터민이다. 최우성 기자
“사회적기업 자체가 경쟁력 보여줘야”
결국 사회적기업의 경쟁력이 열쇠란 지적도 있다. 국내 첫 통일학 박사로 탈북자 국내 정착 과정을 연구하는 북한 출신의 주승현 전주기전대 교수는 “새터민이 겪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사회적기업이 유리한 건 분명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다만 사회적기업 자체가 경쟁력을 증명해 보이지 못하는 한 새터민들이 사회적기업에 그다지 우선순위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도 “사회적기업이라 하더라도 인건비 지원 덕에 일정 기간 버티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결국 새터민 상황에 맞는 고유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낼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골판지 상자 제조업체인 메자닌아이팩이 경영 위기에 내몰리다 지난 2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 시사하는 바 크다. 이 업체는 통일부와 사회복지법인 열매나눔재단, 에스케이(SK)그룹의 지원을 받아 새터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이다.
해답은 취약계층 보호라는 틀에서만 바라보는 쪽(사회적기업·정부)과, 생존과 미래에 우선순위를 두는 쪽(새터민) 사이의 엇갈린 시선을 어떻게 만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과연 가능할까? 사회적기업의 ‘중간자’ 역할을 강조하는 최이현 대표의 말 속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최 대표는 “중요한 건 (새터민을) 얼마나 많이 고용하느냐가 아니다”라며 “‘많이’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에 충실할 때 사회적기업은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morg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