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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저널리스트에 대한 독자의 비판은 권리이자 의무다

등록 2018-06-07 17:03수정 2018-06-07 17:17

[HERI의 눈]
‘신뢰 위기’ 해법으로 등장한 ‘옴부즈맨’
1990년대 프랑스 ‘메디아퇴르’ 제도 정착
국내 진보 언론, 독자 만나려는 의지 부족
대화와 소통 촉진하는 매개체 되어야
세계 주요 언론들은 옴부즈맨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2006년 영국 <가디언>의 앨런 러스브리지 편집인이 김효순 <한겨레> 편집인(당시)과 두 나라의 언론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가운데는 <가디언>의 옴부즈맨인 이언 메이지 독자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 주요 언론들은 옴부즈맨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2006년 영국 <가디언>의 앨런 러스브리지 편집인이 김효순 <한겨레> 편집인(당시)과 두 나라의 언론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가운데는 <가디언>의 옴부즈맨인 이언 메이지 독자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1913년, 아버지 조지프 퓰리처의 뒤를 이어 <뉴욕 월드> 발행인으로 일하던 랠프 퓰리처는 북미 최초로 옴부즈맨을 임명했다. 뉴욕 월드가 편집 방향을 놓고 갈팡질팡하던 시기에, 논란을 정리함과 동시에 독자들이 자신들의 기사를 믿고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규제 장치 중 하나인 옴부즈맨은 이처럼 언론이 신뢰의 위기에 빠져 허덕이거나 독자들이 이탈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등장했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어로 ‘메디아퇴르’(m?diateur, 중재자), 즉 옴부즈맨과 유사한 이 제도는 1990년대 등장했다. 당시 언론의 황금기가 지나고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찾아오자 ‘진지한’ 언론과 ‘상업적’ 언론, 둘 사이에 어떤 길을 가야 하나 고심하던 <르몽드>는 ‘정론지’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자 메디아퇴르 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의 공영방송과 주요 일간지, 그리고 몇몇 주간지들은 이러한 메디아퇴르라는 직책을 두고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과 저널리스트의 작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시니어 저널리스트들이 맡는 메디아퇴르의 역할은 독자 혹은 시청자와 편집국 사이의 대화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그 어떤 부서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지위에서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규칙을 만들고, 그 준수 여부를 감독하며 독자의 관심을 편집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자사의 윤리 헌장과 독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기사 혹은 사설의 제목, 글쓰기 스타일, 탐사보도, 인터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좋은 혹은 나쁜 저널리즘 관행을 지적하고, 저널리즘의 매뉴얼을 마련하는 게 주된 임무다. 이처럼 메디아퇴르에게는 “언론사가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기사의 퀄리티를 보증”하는 책임이 주어진다.

매체마다 ‘메디아퇴르’ 작업 방식은 달라

프랑스의 메디아퇴르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같은 의견을 공유하지만, 이들의 작업 방식이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공영방송 채널 중 하나인 의 메디아퇴르인 마리 로르 오그리는 시청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동시에 ‘보트르 텔레 에 부’(Votre t?l? et vous, ‘당신의 TV와 당신’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TV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France3 소속 저널리스트들과 시청자들을 초대해 France3의 보도방식과 저널리즘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1980년부터 라디오 방송에서 일을 해왔고, 몇몇 라디오 채널의 보도국장을 맡기도 했던 브뤼노 드내스는 2015년부터 공영방송인 <라디오 프랑스>의 메디아퇴르를 맡고 있다. 그는 라디오 프랑스의 주요 채널 중 하나인 프랑스 엥테르의 ‘랑데뷰 아베끄 메디아퇴르‘(Rendez-vous avec m?diateur, ‘메디아퇴르와의 만남’이라는 뜻)라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채널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청취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사이트나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서도 청취자들이 보낸 의견을 취합해 라디오 프랑스의 각 채널과 경영진에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청취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나 보도의 뒷이야기, 미디어 관련 기사 등을 제공함으로써 청취자들이 라디오 프랑스뿐 아니라 미디어 전반에 대해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르몽드의 메디아퇴르인 프랑크 누치는 르몽드의 독자 모임(Soci?t? des lecteurs du Monde)과 함께 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독자들의 의견을 파악한다. 또한 르몽드 구독자들과의 오프라인 만남을 조직해 르몽드 저널리스트들의 작업 방식과 저널리즘의 변화에 대해 저널리스트와 독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별도로 메디아퇴르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의견을 듣는 매체도 있다. 프랑스 최대 지역일간지인 <우에스트 프랑스>는 별도의 리서치 담당 부서가 독자들의 관심을 파악하기 위해 독자들과 직접 만나고 있다. 이들은 거리에서 신문을 구매하는 독자들을 만나 현안에 대한 생각을 묻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어떤 내용이 신문에 실리길 원하는지 질문한다. 이를 통해 독자의 새로운 관심이 어디로 옮겨갔는지를 파악하고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독자와의 대화, 이제는 활성화시켜야

이른바 한국의 진보 언론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만날 때마다 이들의 반복적인 하소연을 듣는다. 주된 요지는 “도대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밝혀내 촛불 정국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결국 새로운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자신들도 일조를 했는데, 왜 독자들은 그토록 비난만을 퍼부어대는지 정녕 이해할 수 없어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그런 독자들이 진정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인지 아니면 무턱대고 비난만을 일삼는 사람들인지 알 수는 없다. 독자가 한둘이 아닌 이상 그들을 ‘어떤 사람들’로 쉽게 규정할 수도 없고, 규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안타까운 건 그 독자들이 누구인지, 왜 비난을 하는지, 그들이 원하는 언론의 모습은 무엇인지, 독자의 기대와 요구를 알기 위해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물론 소통 에디터처럼 옴부즈맨과 유사한 직책을 마련한 언론사도 있고, 주기적으로 ‘옴부즈맨 칼럼’을 선보이는 언론사도 있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차원에 그쳐서인지 독자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언론을 향한 독자의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는 이들의 의견을 언론이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하고, 이를 통해 변화를 꾀해야만 한다. 독자들이 원하는 게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추호의 실수도 없는 완전무결한 언론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언론이 혹은 저널리스트가 잘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에 대해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을 때 비로소 독자들은 언론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보도를 했는지, 그 과정에서 만난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등을 독자에게 더 자세히 설명할수록, 그리고 독자들과 더 많이 대화할수록 독자와 우리 사이에 놓인 불신의 벽을 조금씩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르몽드의 메디아퇴르인 프랑크 누치의 말이다.

지금은 더 이상 팔짱만 끼고 있을 때가 아니라 불신의 벽을 깨뜨리기 위해 언론사가 독자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때다. 감시견인 저널리스트가 민주주의의 중요한 일꾼이듯, 뉴스 보도라는 중대한 역할을 위임받은 이들에 대한 독자의 비판은 시민으로서의 권리이며 의무다. 더구나 지금은 언론이 독자가 알아야 할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단순한 강연자가 아니라, 대화와 소통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진민정 저널리즘학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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