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맨 왼쪽)은 정부 발의 개헌안에 포함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조항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입각해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전략 수립을 위한 중진의원-상임·특위 위원장 연석회의.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치권에 때아닌 마르크스 소동이 한바탕 일었다. 올해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라서?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에 포함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조항을 두고, 자유한국당의 김무성 의원이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적 노동가치론’에 입각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 의원은 한국당의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 위원장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소식을 접하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빨갱이’ 또는 ‘종북’이라고 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마르크스’, ‘노동가치론’ 같은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김 위원장의 ‘고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제 더는 우리 사회에서 ‘종북’이라는 올가미가 듣지 않는다는 그 나름의 시대인식이 작용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을 주장한 것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역사를 잠시 돌이켜 보자. 분명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자본주의는, 똑같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바퀴인데도 오른쪽 바퀴는 정규직, 왼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끼운다면 둘에게 상이한 임금이 돌아가는, 그런 자본주의다. 그러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이 최초로 확립된 경제체제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비판자인 마르크스가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을 리 없다.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에서는 같은 노동에 대해 같은 보상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왜 그럴까? 바로 경쟁과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쟁이란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 간의 경쟁, 그리고 노동자들 간의 경쟁 모두를 말한다. 어떤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가, 옆 공장에서 자신과 거의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는 임금을 자기보다 더 높게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보자(그런데 이렇게 ‘옆 공장’이 있다는 것, 즉 여러 공장이 한꺼번에 모여 있으면서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특성이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거나 옆 공장으로 옮겨가 더 높은 임금을 받고자 할 것이다. 물론 신분제가 철폐된 자본주의에서 그는 얼마든지 이직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로운 경쟁이 지배적으로 되면, 같은 일, 나아가 직종은 달라도 같은 가치의 일을 하는 노동자는 모두 같은 크기의 임금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은 개별 자본가가 거스를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의 철칙인 것이고,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달성한 커다란 인권적 성취라고까지 할 만하다. 그러니 자유한국당이 그러한 성취에 먹칠할 게 아니라면, 이번 개헌안의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조항에 재를 뿌려서는 안 된다.
봉건제 등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체제와 비교해서 보면 자본주의가 같은 노동에 대해 같은 보상을 해주는 성격이 있긴 하지만, 이 성격이 자본주의 자체가 내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늘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이 최초로 흔들린 계기가 바로 여성 노동력이 노동시장에 대거 유입되었을 때다. 산업화 초기에 여성들이 대체로 남성과 다른 일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고된 육체노동보다는 좁은 공방에 모여 레이스를 만들거나, 탄광 같은 곳에서도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더구나 남성을 가장으로 하는 ‘표준 가족’을 상정하면, 여성의 임금은 대체로 보조적인 의의만 있었기에 좀 낮더라도 전체 가계소득 증가에 도움만 된다면 감수할 만했다.
그러나 기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여성이 못할 만한 일이 점차 사라지고, 실제로 20세기 초 양차 대전을 겪으며 남성들이 주로 담당했던 일을 여성이 떠맡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남성과 여성 간의 임금 격차가 실제적인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차대전 직후에 국제연맹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가 결성되었을 때 남녀임금 격차가 주된 인권적 의제로 논의되었고, 마침내 국제노동기구의 헌장에 ‘같은 가치를 갖는 노동에 대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같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명문화되기에 이른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혹시 자유한국당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을 겪고서야 비로소 얻게 된 이러한 소중한 깨달음을 뒤로 돌리려는 것인가? 여성에 대한 전근대적 억압과 차별에 찬성하는 것인가?
국제노동기구에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이 논의된지 꼬박 99년이 흘렀다. 그사이에 적어도 몇몇 선진국에서는 성별 임금 격차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으며(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꼴찌 수준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해 인종이나 출신국, 고용형태(정규직 또는 비정규직), 학력이나 심지어 외모에 따라서도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미묘하게 노동 성과와 무관한 임금 차별이 우리 경제엔 만연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현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의 효율성도 떨어뜨려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유한국당이 우려하는 ‘사회주의’는 바로 여기에서 자라날 것이다. 그러니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천명하는 것은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의 미덕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핀’인 셈이다. 자유한국당의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는 저지의 대상이 ‘사회주의’인지 ‘개헌’인지를 명확히 하고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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