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을 마친 대학생이 학사모를 쓴 채 학교 취업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생애 첫 일자리가 직장 생활 11년차 이후에도 임금과 고용에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청년들의 입장에선 생애소득을 따져봤을 때 눈높이를 낮춰 임금수준이 낮은 곳에 취업하는 대신 취업준비 기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이를 고려해 정부가 일자리의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청년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이 작성한 ‘청년기 일자리 특성의 장기효과와 청년고용대책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남성의 첫 일자리 임금이 지역이나 가정환경 등이 엇비슷한 또래 청년들의 평균 임금보다 10% 높은 경우엔 11년차 이상의 경력을 쌓은 뒤에도 임금이 평균보다 4.37%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 경력 11년차 이상이 된 이후 계속 고용을 유지하게 될 비중도 평균보다 1.3%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런 경향은 남성 대졸자뿐 아니라 학력 수준과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청년층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이번 분석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청년 패널을 통해 2007년 당시 청년(15~29살)이었던 1만206명의 10년 뒤 고용 상황을 추적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첫 일자리의 중요성 탓에 청년들이 첫 직장을 구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학교 졸업이나 중퇴 이후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걸리는 평균기간은 2004년 10.5개월에서 지난해 11.6개월로 1.1개월 정도 증가했다. 한요셉 부연구위원은 “괜찮은 일자리에 진입할 수 있는지가 생애주기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어쩔 수 없이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오래 걸리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청년실업률 등 청년고용지표가 급격히 악화된 주원인이기도 하다. 긴 구직기간은 장기적으로 소득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남성 4년제 대학 졸업자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인데, 첫 일자리를 구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평균보다 1년 길어질 경우 경력 3~4년차 때 임금은 평균보다 7.4%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한 부연구위원은 “첫 직장이 경력상 ‘디딤돌’이 되기보다 ‘함정’이 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정부의 청년대책이 일자리 양을 늘리는 데 집중하느라 일자리의 질을 고려하지 않거나, 첫 직장 이후 이직을 통한 생애소득 증가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다는 비판이다. 2003년부터 정부는 종합대책 성격의 청년고용대책만 10차례나 발표했지만, 청년실업률은 지난해에도 9.8%를 기록하며 전체 실업률(3.7%)보다 세 배가량 높다.
보고서는 대표적으로 청년고용장려금과 청년인턴제 등 사업주 지원 방식의 청년고용대책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정부 지원을 받기 원하는 기업은 경영사정이 열악한 한계기업인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질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또 지난 정부가 대표적 청년고용대책으로 앞세워온 ‘청년취업성공패키지’의 경우, ‘상담부터 기관 알선을 통한 취업까지 최장 12개월이 걸리는 참여기간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성 4년제 졸업자의 경우 긴 취업준비기간이 장기적으로 임금에 악영향을 끼치는 만큼 조기 취업을 통해 첫 일자리를 얻는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미다. 이직이나 창업을 통해 임금(소득)상승을 꾀하려는 청년의 일자리 이동을 막는 방식으로 짜인 ‘청년 내일채움공제’도 수정이 필요한 대책으로 지목됐다. 내일채움공제는 청년이 중소기업에 취업해 2년 동안 300만원을 적립하면 정부와 회사가 각각 900만원, 400만원씩을 적립해 1600만원의 목돈을 만들어주는 제도인데, 더 나은 일자리로의 이직이나 창업을 위해 퇴직할 경우 지원금 대부분이 환수된다. 한 부연구위원은 “첫 일자리 임금 수준이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지만,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청년들이 개인 차원에서 더 나은 일자리로 이직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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