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발명해 수원성 축성에 활용한 거중기. 다산초당 제공
정조가 세상을 떠난 해는 1800년이다. 1752년에 태어났으니 만 48세였다. 그가 즉위한 해는 1776년이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이고 곧이어 프랑스 혁명이 유럽을 휘몰아쳤다. 마지막 개혁군주로서 정조의 존재는 어쩌면 조선도 세계사적 흐름에 완전히 비켜나지 않았음을 말하는 듯하다. 이후, 미국 헌법은 지금도 미국의 기초이고, 프랑스 혁명으로 현대의 보편적 가치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18세기는 그야말로 단절된 기억이다.
정약용은 정조와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정조 보다 열 살 아래인 정약용은 정조 사후 36년을 더 살았다. 정조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여전한 것은 이후 우리 역사의 질곡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정약용으로 상징되는 실학이 조선의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정약용이 수많은 저술에서 제시한 인재 등용 원칙이나 경자유전 철학 등은 오늘날에도 새겨들을 게 많아, 지식인들이 현실을 비판할 때 손쉽게 인용한다.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실학적 태도는 지식인 사회 내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러나 정조와 정약용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정직한가? 말하기와 글쓰기에 동원되는 ‘인용사전’ 이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정약용과 실학을 얘기하면서, 정작 현실문제에 대한 생각과 행동은 그 반대편의 노론과 닮지는 않았는가?
2월 초 강원대에서 한국경제학회 등이 주최해 경제학자 전체가 참여하는 ‘경제학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필자가 토론자로 참여한 제 1 특별 세션은 학술대회의 대표적 행사이며, 한국경제의 현재와 나아갈 방향을 진단하는 자리였다. 올 회의는 최근 경제정책과 관련한 논란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별 세션의 발표 1은 현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기조였다. 발표 2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의 타개를 위하여 시도해 볼 만한 정책임을 설명했다. ‘규제철폐’를 주된 정책 기조로 하는 시장주의적 입장과 유효수요의 확대를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스주의 간의 전형적인 대립이었다. 수년 전,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만과 그레고리 맨큐의 논쟁과 같은 장면도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허무한 기대였다.
발표 1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가혹하게 평가하기를 넘어 ‘조롱’으로 넘쳐났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글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잘못된’ 개념으로 간주하였다. 그렇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또한 경제정책은 청와대가 나설 것이 아니라 관료에게 일임하라고 주문했다. “규제 혁파와 노동, 교육의 개혁 없이 복지, 사회안전망, 소득재분배를 무분별하게 추진하는 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말로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이어 진행된 소득주도성장론에 관한 발표 2는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무대장치를 위하여 구색 맞추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회자는 두 발표자가 토론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발표 2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논의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즉 현재 한국경제의 부진은 수요부족에 있으며, 지속해서 감소해온 노동소득분배율이 수요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하였다. 소득주도성장론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 케인스식 유효수요이론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수요와 공급에 바탕을 둔 시장주의적 사고방식은 경제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체질’과 같은 것이다. 시장주의적 경제정책은 언제나 든든한 이론적 배경을 사회간접자본처럼 갖고 있다. 필자를 포함하여 한국의 경제학자 다수는 미국에서 공부했다. 특히, 지금 중견학자들은 미국 경제학계가 가장 보수적인 기간에 수학하였다. 이들에게 시장주의적 정책 처방은 논리적으로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책임에서도 해방된 정책자문이다. 정책을 자문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탈이 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시장주의적 정책 처방은 오히려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지난 10년간, 시장 중심적 사고방식이 경제정책을 지배했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그러한 정책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노인 및 청년자살률, 그리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한국사회가 ‘자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독점화된 대기업이 아닌 개인에게 부여된 경쟁의 부담으로 시장이 효율화되기보다 시장 자체가 서서히 파괴되는 장면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 실패한 정책을 ‘시장 또는 규제 완화’라는 안전판 뒤에서 또다시 정책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을 “게으르다”고 하는 표현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싶다.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정책에 경제학자와 언론이 찬사를 보낸 것은 게으를 뿐만 아니라 ‘사악’하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이제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로 미국의 경기를 호전시킨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의 과감한 재정확대였다. 이처럼 직접적이고 역사적으로 수차례 증명되었으며 심지어 강의시간에 가르치기까지 하는 정책 경험에는 왜 눈을 감고, 역사상 한 번도 검증되지 않은 트럼프의 감세정책에는 찬사를 보내는 것인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야말로 대담한 도전이라 할 수 있어도 트럼프의 정책은 그냥 게으르고 당파적인 세금감면 혜택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제를 풀어내는 처방은 경우에 따라서 ‘시장원리’가 될 수도 있고 ‘정부의 개입’이 될 수도 있다.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다른 선택을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이미 시장경제체제 하에 살고 있으며, 어떠한 정책 처방을 내리든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사실이 오히려 우리에게 정책선택의 자유를 제공하지 않는가? 한국의 주류 경제학은 어째서 정책의 선택에서 미국보다 더 자유롭지 못하고 교조적으로 되어 버린 것일까?
경제학계의 교조적 태도는 정책의 선택 권한을 관료에게 넘기는 비민주적 양태로도 이어진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정책은 없다. 정책 방향과 정책수단의 선택은 바로 선출된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관료에게 맡겨야 할 것은 정책수단의 효율적 집행과 관리에 그쳐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혁신성장이 정책의 새로운 축으로 설정되었는데 그 뒤에는 바로 관료집단의 영향력 회복이 있지 않은 지 의심스럽다. 혁신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리고 혁신이 정책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혁신이 정책목표가 되는 순간, 관료들이 ‘규제완화’나 ‘연구개발지원’과 같이 늘 해오던 일을 하도록 면허를 받는 것과 같다. 혁신의 여부는 민간의 책임이 될 뿐이다. 정책자원도 ‘희소한’ 자원이므로 선출된 권력이 본래 지향하던 정책의 추진은 약화한다. 한국에 혁신이 부족한 것은 혁신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혁신의 보수가 낮은 사회경제적 구조 때문이다. 모험에 대한 보수가 낮은 사회임을 어려서부터 깨닫고 공무원 교사를 꿈꾸는 것을 이제야 온 사회가 이해하게 되지 않았는가?
실학이 조선을 개혁하지 못하고 결국은 소 중화주의라는 시대착오와 성리학에 자리를 내주었다. 이황과 이이는 지금도 세계가 인정하는 훌륭한 성리학자이다. 그러나 이황과 이이의 학문이 철학으로서 당대 어떤 의미를 가졌든, 후기에는 조선의 보수성을 강화하고 개혁을 저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불과 50년 사이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소 중화주의에 집착하여 성리학은 형식적인 예학이 되었고 실학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경제학이 ‘규제 완화’만을 외치는 동안에 실천적 사회과학의 역할을 상실해가는 지금과 많이 다르다 할 수 있을까. 정약용이 지금 살아온 들 설 자리가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한홍렬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코리아컨센서스 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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