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가상통화 거래소의 시세 전광판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해외 노동자의 본국 송금 용도 등으로 가상통화(가상화폐) 사용이 널리 퍼진 동남아시아 각국에서도 가상통화 대응방안 논의가 활발하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나왔다. 가상통화가 국경을 넘어 거래되고, 각 나라가 규제 대책을 고심하고 있는만큼 우리정부도 국제 공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담겼다.
8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낸 ‘가상통화 관련 주요국의 정책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최근 동남아 국가의 중앙은행과 정부는 자금세탁, 테러단체 지원, 조세회피 등을 막는데 초점을 맞춘 가상통화 대응방안을 만들고 있다.
이들 국가의 경우 해외 노동자나 외국인 관광객이 높은 송금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 가상통화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 제도권 금융보다 가상통화 거래에 대한 접근이 쉬운 편이라는 점도 이 지역에서 가상통화가 널리 퍼지고 있는 배경으로 꼽혔다. 보고서는 또 가상통화 거래가 활발했던 중국과 한국이 규제 수위를 높이면서 아직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동남아가 거래 루트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이 지역 가상통화 사용이 활발한 이유로 짚었다.
가상통화 사용에 대한 동남아 각국의 대응은 불법 규정부터 용인까지 다양하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해 11월 “가상통화를 정식 결제수단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며 가상통화의 매매와 거래를 불법화 했고, 이에 따라 가상통화 거래소 업무도 중단했다. 현재까지 가상통화 거래를 인정하지 않는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조만간 법적 의무나 요구조건 등을 담은 가상통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반면 필리핀 중앙은행의 경우 지난달 내부통제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등 일정한 요건을 바탕으로 가상통화 거래의 합법성을 인정했다. 태국도 일단 가상통화를 용인한 상태에서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가상통화를 지불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상통화 제도가 어느정도 갖춰진 일본이나 미국은 각종 가상통화 관련 사고 대응에 분주하다. 비트코인 거래량 1위 국가인 일본은 지난달 가상통화 거래소 외부해킹을 통한 도난 사건이 벌어지자,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관련 법안에 따라 해당거래소에 대한 사고 원인 보고 요구, 업무개선명령 등을 내렸다. 이와 함께 금융청에 등록된 가상화폐 교환업자 등 32곳을 대상으로 긴급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가상통화공개(ICO)를 통해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기관들의 사기 혐의 기소가 이어지며 제이 클레이튼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 “다수 가상통화공개가 미 연방증권법에 의거하지 않은 형태로 진행되고 있고 투자자들이 손실을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9월 금융리스크방지와 위안화 환율 안정 등을 목적으로 가상통화 거래와 사용을 금지한 중국은 최근까지도 불법적으로 활동하는 가상통화 지급결제 서비스에 대한 단속을 이어가고 있다.
보고서는 이같은 세계 각국의 가상통화 대응을 전한 뒤, “익명성과 거래 수월성으로 인해 개별 국가의 가상통화 관련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국제공조가 필수적”이라며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올해 3월 개최될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공동으로 규제안을 제안할 예정인만큼 우리 정부도 관련 논의에 미리 참여해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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