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를 촉구했다.사진제공 중기중앙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 경영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지원대책 가운데 국회 입법처리 지연이나 정부의 준비 소홀 때문에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4건 중 1건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들어 최저임금 16.4% 인상의 부담이 소상공인 등에게 본격 발생하기 시작했는데도 해결 노력보다 정치적 공방만 벌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정부의 ‘7·16대책(최저임금 인상 결정 직후인 지난해 7월16일 발표)’에 포함된 입법 과제의 진행 상황을 살펴본 결과, 모두 11개 법률 제·개정안이 국회 해당 상임위에 계류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법률이 통과되어야만 시행할 수 있는 정부 대책은 모두 19개로, 전체 76개 대책의 25%를 차지한다. 처리가 지연된 입법 과제들은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인들이 최저임금 인상 지원대책보다 더 애타게 기다려온 정책이다.
대표적인 법안이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이 지난해 1월 대표발의하고 국회 해당 상임위(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심의절차까지 마무리된 이 법안은, 새 정부의 핵심과제인데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관련단체의 입법 촉구 여론도 커 국회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정유섭 의원 대표발의로 지난해 정기국회 막판에 보완입법안을 내놓으면서 국회 상임위 심의절차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유섭 의원안은, 이훈 의원안의 이행강제금 부과 등을 ‘반시장적’ 처벌조항으로 규정하고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여야 합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훈 의원은 “복수로 발의된 법률안은 반드시 병합심사 뒤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2월 임시국회에서 상임위 통과가 이뤄지도록 노력해보겠다”라고 말했지만, 국회의 여러 복잡한 현안과 일정상 전망이 불투명하다.
생계형 적합업종의 법제화가 1년이 넘도록 지연되자 소상공업계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현재 민간 자율합의 방식으로 지정하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적합업종은 이행을 강제할 방법이 없는데다 법정 권고시한(6년)마저 끝난 업종이나 품목이 많아 한계에 이르렀다. 이수동 중소기업식품발전협회장은 “도시락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었으나 대기업 식품업체들이 도시락의 정의가 다소 불명확한 점을 악용해 도시락만 뺀 김밥 단품생산체제를 신설하거나 확장하는 등 편법 진출사례가 빈번해 식품관련 소상공인의 피해가 심각하다”며 법제화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대규모 점포의 입지규제가 가능한 ‘상권보호구역’을 신설하고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처럼 영업시간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유통산업법 개정안도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시급한 법안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7·16대책에서 입법화를 약속하고서도 홍익표 의원을 대표로 한 여당발의안을 올해 1월23일에야 국회에 제출했다. 상가임대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임차인의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정의당 노회찬 의원과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성정되어 있을 뿐 정부·여당안은 아예 제출되지도 않았다.
전국유통산업연합회의 김동규 대외협력국장은 “재벌 대기업의 복합쇼핑몰 진출에 따른 소상공인과의 분쟁 발생 지역이 현재 서울 상암동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6곳이고, 진출 가능성 때문에 분쟁 발생이 우려되는 지역도 40여곳에 이른다. 2~3년 동안 진행된 피해와 갈등이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임대료 상승 부담과 계약 연장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상가임대차법 개정도 자영업자들에게는 최저임금 인상 지원대책보다 더 절실한 요구”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7·16대책에는 넣었으나 국회 심의과정에서 아예 폐기된 경우도 있다. 임금 지급여력이 약한 초기 창업기업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비롯한 12가지 공적부담금을 면제해주기 위해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개정키로 했으나, 지난해 12월 국회 법안심사소위 심의에서 이미 한시적 특례조항으로 운영해온 부담금 면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소급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와 폐기 결정이 내려졌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방지 목적으로 발의된 ‘지역상권 상생발전법 제정안’도 다른 법률과 중복 또는 충돌하는 요소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통합입법안 마련을 오는 9월까지로 미뤘다.
이처럼 정부가 7·16대책으로 내놓은 입법과제들은 대부분 소상공인 관련단체들이 국회와 정부에 지속적으로 청원해온 법안들이다. 하지만 ‘과도한 재산권 침해’ 등 해묵은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아 국회 문턱을 넘는 데 난항이 예상되기는 했다. 경제민주화네트워크의 안진걸 운영위원장(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소상공인들을 당장 힘들게 하는 요인들을 해소하려면 가맹법, 대리점법, 상가임대차법, 하도급법 등 정부가 발표한 입법과제들이 하루빨리 이행되어야 한다”며 “정부 부처 장·차관들은 일자리 안정자금 현장 홍보보다 국회 설득에 총력을 쏟는 게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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