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사진 왼쪽에서 다섯 번째)를 비롯한 여성 리더들이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각국의 성별 격차와 불평등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제공
올 다보스 포럼은 오랜만에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 경제를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의 모델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돋보였다. 하지만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이를 둘러싼 각국 정상들의 날 선 대응으로 다소 빛이 바라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18년 만에 다보스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폐막식서 “불공정 무역 관행을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보호무역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도 약한 달러가 미국에 이익이 된다며 환율 결정에 정부가 개입할 듯한 여지를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비롯해 독일 메르켈 총리와 캐나다 트루도 총리 등 유럽 정상들은 자유주의, 다자주의를 위협하는 미국의 행보를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중국의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무역전쟁은 시작하긴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며 “다른 나라에 무역제약을 가할 때, 그 나라의 중소기업, 청년, 나아가 그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다극화 시대, 보호무역주의 회귀 논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18 세계경제포럼이 나흘간의 여정을 마치고 지난달 말 막을 내렸다. 올해 포럼의 핵심주제는 '갈라진 세계, 공동의 미래 창조(Creating a Shared Future in Fractured World)'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순다르 피차이 구글 회장 등 정·재계 리더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400여개의 세션에서 올해의 주요 쟁점과 경제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포럼에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 △세계 경제의 다극화 탐색 △과학기술 거버넌스 구축 △사회분열 극복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포럼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세계 경제의 회복 전망이었다. 오랫동안 침체한 글로벌 경제가 올해는 회복세를 보일 조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8년과 2019년 글로벌 성장 전망치를 3.9%로 상향 조정했으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포럼에서 “미국의 세금 개혁과 투자 부양 정책, 신흥국의 수출 호조 등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 다보스 포럼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공동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경제 모델을 모색하고자 했으나, 미국이 일으킨 보호주의의 역풍이 만만치 않았다.
자료: 세계 각국 경제성장 전망률, 국제통화기금(IMF), 2018.
4차산업혁명, 기술의 혁신 어떻게 다룰 것인가
보호무역주의와 함께 포럼장을 달궜던 또 하나의 주제는 가상화폐를 둘러싼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등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다. 다보스포럼은 2018년 10대 글로벌리스크 요인을 선정했는데, 사이버 공격 및 범죄가 상위권에 올랐다. 최근 사이버 범죄로 인한 전 세계 경제적 손실이 2016년 9만5천 달러에서 2017년 1170만 달러로 증가했으며, 향후 손실액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가상화폐 열풍과 함께 사이버 보안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학계 및 재계 전문가들은 기술 혁신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순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차이 구글 회장은 “인류에게 인공지능 기술은 불의 발견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며 “위험은 상당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인류의 진보를 위해 미래를 전망하며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신기술의 혜택을 모두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개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2018년 세계 10대 리스크, 세계경제포럼, 2018.
자료: 전 세계 사이버범죄 피해액, 세계경제포럼, 2018.
정부, 사회 불균형 해결 적극적으로 나서야
빈부 격차, 성별에 따른 차별 문제는 전 세계적인 사회 문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의 격차가 커짐에 따라 소득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옥스팜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17년 창출된 전 세계 부의 82%는 가장 부유한 1%에 돌아갔고, 최하위 빈곤 인구 50%에 해당하는 37억 인구는 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억만장자의 재산은 2010년 이후 연평균 13% 증가해 연평균 상승률이 2%인 일반 노동자의 임금보다 6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니 비안이마
옥스팜 인터내셔널 총재는 파리경제대학 세계 불평등 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소개하며 사회 불평등을 약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각국 정부가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사례를 담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2010년 기본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존엄성 임금’을 도입해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면서 실업률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 영국 법원은 우버 앱에서 일하는 택시운전사들을 자영업자가 아닌 직원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해, 이들이 휴가수당, 유급휴가를 비롯해 국가에서 보장하는 최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비안이마 총재는 “정부는 주주와 고위 임원에 대한 보상을 제한하고, 기본 생활임금을 도입하고, 공정한 세금체계를 수립하는 등 모든 시민이 4차 산업혁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공정한 사회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ek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