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문을 나서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성의 뇌물공여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의 전·현직 경영진에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에 대해 ‘사상 최악의 재벌 봐주기 판결’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5일 논평에서 “항소심 판결은 오로지 이 부회장의 석방을 위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그에 따른 논리를 만들어낸, 사법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재벌 봐주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의 뇌물죄 관련 핵심 증거이자 퇴행적 정경유착의 전형을 보여준 이번 사건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사실상 피해자로 단정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도 없었다고 부인한 점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국민의 상식을 뒤집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해 뇌물공여·업무상 횡령·국외재산도피·범죄수익 은닉·국회 위증 등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국외재산도피·범죄수익 은닉 혐의는 고의성이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또 뇌물공여 및 그에 따른 업무상 횡령 부분에 대해서도 마필의 사용이익과 차량부분 등 36억원 상당만을 유죄로 보고, 영재센터 16억원 지원과 마필구입대금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이어 코어스포츠재단의 송금도 뇌물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될 뿐이지 국외재산도피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 대상으로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1심 재판부와 입장을 완전히 달리했다”면서 “삼성은 1990년대 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의혹으로 10년 이상 홍역을 치뤘고,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의 불공정 문제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 모두 이 부회장 등 3세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거의 상식에 속하는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전형적인 정경유착을 찾을 수 없다면서, 사건의 성격을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을 협박했고, 삼성은 그 요구에 따라 행동한 이른바 피해자에 가깝다는 인식을 보여줬다”면서 “항소심 판결은 사상 최악의 ‘재벌 봐주기’ 판결로 기록될 것이며, 이는 ‘정치권력 위에 재벌’이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적폐청산과 사회적 갈등의 처리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이후 20년 간 진행된 이재용으로의 삼성그룹 승계작업의 존재를 부정하고 수많은 사실관계를 애써 외면함으로써 증거에 눈감고 이성과 정의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판결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또 “국민들은 여섯 달 동안 민의의 광장에서 이러한 재벌의 악습에 대한 대개혁을 요구하며 정경유착과 재벌특혜 체제의 말끔한 청산을 호소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런 정의로운 민심을 완전히 짓밟았다”면서 “재벌봐주기와 이재용에 대한 면죄부 판결로서, 법원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상식과 정의에 반해 자본과 권력에만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또다시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들과 함께 이재용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며, 대법원이 반드시 이 부당한 항소심 판결을 바로 잡아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투기자본감시센터와 약탈경제반대행동도 이날 논평을 통해 항소심 재판부의 집행유예 판결을 비난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