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케이티(KT) 회장이 경찰의 ‘케이티 불법 정치자금 의혹 수사’라는 최대 고비를 만났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등으로 연임 이후에도 안팎의 퇴진 여론에 부딪혀온 황 회장이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10일 경찰청과 케이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케이티 임원들이 2016년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제보를 지난해 12월 입수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고,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자금으로 기부할 수도 없다. 경찰은 케이티가 법인카드를 이른바 ‘카드깡’ 방식으로 현금화한 뒤 임원 개인 이름으로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제보는 케이티 내부 관계자에 의해 이뤄졌으며, 관련된 케이티 임원과 국회의원들의 명단이 정리된 문건이 경찰에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자금이 제공된 의원들은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중심이지만, 이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상임위 의원들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치권과 케이티 양쪽에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쪽에서는 불법 자금인 줄 모르고 받았다고 해명할 수 있지만, 자금 수수 명단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아직 황 회장의 개입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 쪽은 황 회장에게 보고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수사 대상이 황 회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경우 황 회장의 거취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8일 참여연대와 케이티민주화연대(케이티새노조 등을 비롯한 시민·노동단체 연합체), 김종훈 국회의원(민중당)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경은 불법 정치자금 등 케이티의 권력형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고, 불법 비리의 주범 황창규 회장은 즉각 퇴진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케이티새노조 관계자는 “이번 불법 정치자금 수사는 폭발력이 큰 사안이어서, 황 회장에게는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케이티 회장으로 취임한 황 회장은 지난해 초 “국정농단사태 연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케이티 안팎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연임을 시도해, 지난해 3월 주총을 통과했다. 케이티는 2015년 말~2016년 초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18억원을 출연하는 한편, 최순실씨 요청으로 최씨의 측근인 이동수씨 등을 임원으로 채용하고 최씨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원어치 일감을 준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연임 이후 황 회장은 케이티가 평창 동계올림픽 통신 분야 공식파트너인 점을 활용해 ‘평창올림픽에서 5G 시범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적극적 대외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달 이뤄진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에서는 총괄 조직을 없애고 주요 경영진을 교체해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영의지에도 안팎으로 악재가 계속 쌓이고 있다. 최근 경찰 수사로 추가로 드러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 가운데 삼성전자 재직 당시 개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 회장 명의의 계좌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 등으로 일하다 2009년 퇴직했다. 또 서울중앙지검은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수뢰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 전 수석이 사실상 지배했던 e스포츠협회에 케이티가 낸 후원금에 대가성이 있었다는 혐의를 포착하고 케이티 임직원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케이티 내부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뤄진 케이티노조(케이티1노조) 선거에서 전체 조합원의 25%가 소속돼있는 본사지방본부위원장에 케이티 내부 비판세력인 ‘케이티민주동지회(민동회)’ 소속의 정연용 후보가 당선됐다. 민동회 계열 후보가 지방본부위원장에 당선된 것은 16년만이다. 정연용 위원장은 지난달 17일 민동회와 공동성명서를 내어 “케이티 적폐의 핵심인 황창규 회장을 퇴진시키고 그가 자행한 온갖 불법행위가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케이티 홍보실 관계자는 경찰의 정치자금 수사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특별히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수노조인 케이티새노조가 외부 정치권을 끌여들여 경영에 간섭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며 “대부분의 케이티 직원들은 평창올림픽과 5G 성공을 위해 바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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