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유럽연합(EU)이 한국의 조세 지원제도를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논쟁할 것들이 많아 이미 협의에 들어갔다. 빠른 시간내 해결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제공 사진.
최근 유럽연합(EU)이 발표한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한국의 이름이 오른 데 빌미를 준 것은 ‘외국인투자 조세지원 제도’다. 정부는 이미 몇해 전부터 이 제도의 문제를 파악하고도 부처 간 이견 등을 이유로 제도 개선을 미뤄온 것으로 드러나,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대한 비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유럽연합이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한국을 조세회피처로 지정했다”고 보고, 이번주 중으로 유럽연합 대사를 불러들여 ‘외국인투자 조세지원 제도가 소득이전 등 조세회피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재차 설명할 계획이다. 한국은 유럽연합과 조세협정을 맺고 있어 당장 직접적인 제재가 이뤄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지만, 한국에 투자하는 역내 기업들에 대한 세무관리나 모니터링 강화 등 간접적인 압박이 가해질 소지가 있다.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핵심 쟁점인 외국인투자 조세지원은, 외국인 기업이 특정 신기술을 가지고 국내에 들어오거나 경제자유구역 등에 입주할 경우 법인세와 소득세를 5~7년간 50~100%까지 감면해주는 제도다. 1960년대 특정 기술 유치를 목적으로 일부 산업분야에서 시행되다가, IMF 외환위기 이후 외국 자본 유입과 지역균형발전 지원이라는 목표 속에서 지원 분야를 넓혔다. 유럽연합은 올해 1월 ‘조세회피처 여부 판단을 위해 조세제도를 평가하겠다’고 92개국에 서한을 발송했다. 스위스 등은 조세제도를 바꾸겠다고 약속해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빠져나갔지만, 우리나라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오명을 자초하고 말았다.
사실 정부는 몇 해 전부터 이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기재부 의뢰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14년 작성한 ‘ 투자 조세지원제도에 대한 심층평가’ 보고서는 “세금을 감면해가면서까지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촉진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장기적으로 제도를 축소·조정해가야 한다”며 “국제적으로 외국인에게만 주어지는 조세지원을 부당한 조세 경쟁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외국인 조세지원제도가 ‘차별적인 혜택’이라는 이유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앞서 제기했던 셈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현재는 제도 도입 당시와 달리 국내 자본이 부족하거나 기술유치가 절박한 상황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용률이 낮아지는 등 실효성도 거의 없는만큼 폐기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외국인 투자관련 법인세 등 감면 실적은 2011년 8199억원에서 2017년 1161억원(추정치) 수준으로 줄었다. 그만큼 감면제도 이용이 줄고 있다는 의미다. 2004~2015년 국내에 들어온 누적 해외직접투자액은 1121억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경제자유구역으로 투자된 액수는 56억달러(5%) 수준에 그쳤다. 최기호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도의 기술 수준을 가진 나라에 새로 들여올 신기술이 많지 않은데다, 노동공급·시장수요 등 매력이 없는 상황에서 조세 비용 절감만을 노리고 외국기업이 들어오진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집하다 이번 사태를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재부는 용역 자료를 바탕으로 2015년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구체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외국인 유치를 담당하는 관계부처 반대로 제도 개선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산업부 쪽은 “해외에서도 내·외국인 차별이 없을 뿐 외국 투자기업에 대한 지원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관련 제도를 폐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정부 부처 내 이견은 올해 7월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작성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당시 자료에는 산업부 요구로 ‘경제특구에 입주한 국내기업에 외투기업 수준의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 정책은 이번에 문제가 된 조세제도의 차별적 성격을 고치기 위한 제도는 아니었다”며 “주로 입지·현금지원과 관련한 것으로 세제지원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종석 선임 연구위원은 “이미 지방이전, 고용창출 등에 대한 내국기업 세제 혜택이 많은 상황에서 다시 외국기업 수준으로 높이는 방식은 법인의 실효세율을 높여 세수를 확보하려는 정부 정책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