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실업’ ‘비정규직 확대’. 국민 대다수가 꼽은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남긴 상처다. 국민 10명 중 6명은 외환위기가 본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1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IMF 외환위기 발생 20년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외환위기가 내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답한 이들이 59.7%로 절반을 넘었다. 당시 대학생(68.9%), 자영업자(67.2%), 농·축·수산업(62.5%), 사무·관리·전문직(60.5%)이었던 이들 가운데서 외환위기가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조사는 지난달 23~26일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같은 결과는 외환위기 발생 1년 뒤인 1998년 12월 같은 기관이 실시한 조사에서 ‘IMF 개혁조처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답한 국민이 60.8%(부정적 31.8%)에 달했던 것과 대비된다. 1998년 한 해동안 2만여개 기업이 문을 닫고 160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살풍경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기대가 20년 뒤, 과반수가 넘는 국민에게 ‘부정적인 기억’으로 변한 셈이다.
특히 절반 이상의 응답자(57.4%)는 1997년 외환위기를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의 가장 어려운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2010년대 저성장(26.6%),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5.2%), 1970년대 석유파동(5.1%) 등을 크게 앞질렀다.
외환위기가 현재 한국경제에 끼친 부정적 영향으로 ‘소득·빈부 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라고 답한 이들이 31.8%로 가장 많았다. ‘대량실직·청년실업 등 실업문제 심화’(28%), ‘계약직·용역직 등 비정규직 확대’(26.3%) 등 일자리 불안이 뒤를 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문제 가운데 ‘1997년 외환위기가 영향을 끼친 부분인지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88.8%, 공무원·교사 등 안정적 직업선호에 대해선 86%, 소득격차 심화에 대해선 85.6%가 ‘외환위기 영향’이라고 답했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은 외환위기 뒤 개인적 경험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외환위기 때 경험하거나 느낀 것을 선택해달라’는 질문에 ‘경제위기에 따른 심리적 위축을 느꼈다’는 이들이 64.4%로 가장 많았다. 특히 ‘비정규직 근무, 퇴직뒤 창업 등 직업여건이 변화했다’(40.9%), ‘본인·부모·형제 등의 실직이나 부도를 겪었다’(39.7%)는 응답자가 적지 않았다. 정영호 KDI 여론분석팀장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직접 비정규직 근무, 실직, 소득하락 등을 체험하며 ‘격차’와 ‘불안’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외환위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환위기를 두고 가장 많은 응답자가 ‘금 모으기 운동’(42.4%)을 먼저 떠올렸고, 위기극복 원동력으로 ‘국민의 단합’(54.4%)을 지목하는 등 위기 속 빛났던 국민의식에 대한 기억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외환위기 발생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 가장 많은 응답자(31.1%)가 경제적 측면에서는 ‘일자리 창출 및 고용안정성 강화’를 꼽았다.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등 경쟁력 제고가 19.2%로 뒤를 이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부정·부패 척결을 통한 신뢰구축’(32.7%)과 ‘저출산 및 고령화 대책 마련’(32.5%)이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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