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 조세회피처를 활용해 현대상사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을 빚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5일 공개한 조세회피처 자료를 보면, 현대상사는 2006년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뮤다에 ‘현대 예멘 엘엔지(LNG)’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자사가 보유한 ‘예멘 엘엔지’ 지분 5.88%를 모두 넘겼다. ‘예멘 엘엔지’는 예멘 마리브 지역의 유전과 천연가스전을 개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로, 현대상사, 가스공사 등 한국 기업 여럿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다. 2006년 당시 현대상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유동성 위기로 건설비를 내기 어려워지자 가스공사가 현대상사의 페이퍼 컴퍼니 ‘현대 예멘 엘엔지’ 지분 48%를 넘겨받았다. 이 거래로 가스공사는 현대상사가 갖고 있던 ‘예멘 엘엔지’ 지분 2.88%를 확보하게 됐다.
두 회사가 지분을 사고파는데 조세회피처를 활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가스공사 관계자는 “이중과세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그는 “(조세회피처 거래는) 현대상사가 요청했고 버뮤다 (페이퍼 컴퍼니 ‘현대 예멘 엘엔지’) 설립에 (가스공사가) 공식적으로 관여하진 않았다”면서도 “세금을 많이 내면 가스요금으로 직결되니까 절세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탈세 의도는 없었다. 가스요금 인상과 국부유출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겠다”면서도 “착한 ‘조세회피’라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뉴스타파>는 유출된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의 1950~2016년 조세회피처 기록에 한국인 232명이 포함됐다고 6일 보도했다. 거주지 주소와 여권번호, 국적 등을 확인해보니, 한국 주소를 기재한 한국인은 197명, 조세회피처에 세운 법인은 90개였다. 코스닥 상장기업 등 중견업체와 가스공사 등 공기업, 재벌 기업도 다수 포함됐다. 특히 조세회피처를 통한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효성은 2006년 조세회피처인 케이맨제도에 ‘효성파워홀딩스’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것으로 또다시 확인됐다. 효성이 지분 100%를 소유한 이 회사는 자산 300억원 가량으로 시작했다가 700억원으로 늘어났지만 2015년 돌연 청산됐다고 <뉴스타파>는 보도했다. 효성 관계자는 “효성파워홀딩스는 중국 변압기 사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합법적으로 설립한 회사”라며 “한국기업이 중국회사의 지분을 사고파는 게 까다로워 국외에 법인을 설립했지만 중국 사업이 부진해져 2015년에 철수했다”고 해명했다.
정은주 방준호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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