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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디지털 시대 일의 미래, 노조 참여가 핵심

등록 2017-10-24 21:53수정 2017-11-09 17:24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⑥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 독일 한스뵈클러재단 선임연구위원
공항에서 하는 일들이 그 사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 건 ‘일의 미래’를 취재하기 위해 독일로 가는 길에서였다. 탑승 수속은 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 모바일로 할 수 있었고, 가방을 부치는 것도 무인 창구에서 직접 했다. 보안 검색을 통과해 법무부 창구를 찾았으나 이번에도 자동출입국심사대로 안내를 받았다. 여권을 스캔하고 지문을 대며 얼굴 사진 한 장을 찍으니 끝이었다.

무인 자동화는 어느덧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문득 항공사 체크인 데스크와 출입국 심사대에서 일하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 봤다. 자동화는 인간의 직업과 노동생활에 직접 영향을 준다. 그래서 기계가 주인이 되는 자동화냐, 인간(노동)이 중심이 되는 자동화냐는 중요한 질문이다.

독일은 자동화와 디지털화를 추진하면서도 인간 노동의 변화 역시 고려해온 사회다. 2012년부터 ‘인더스트리 4.0’이란 프로젝트로 생산현장의 자동화·디지털화를 추진하면서, 일과 직업의 문제를 다루는 ‘아르바이트 4.0’을 같이 가동해 노사정이 함께 노동, 직업, 복지제도의 변화를 논의했다.

이런 노력에 대해 독일 노동 문제 전문가인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사진) 한스뵈클러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겨레>와 만나 “디지털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도구”라며 “어차피 다가올 디지털화라면, 일을 효율화하고 (일·가정 양립 등) 사회 친화적인 쪽으로 함께 만들어가자고 노사정이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자동화·디지털화 과정서
노사정 원칙 합의뒤 타협 노력
실직 공포 없애주는 게 최우선
노동자도 새로운 지식 학습을”

자이페르트는 11월15~16일 열리는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 둘째 날 오전 ‘기술혁신 시대의 사회적 합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그는 한스뵈클러재단 부설 경제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시대의 노동 유연화 문제를 중점 연구하고 있다.

자이페르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에는 (일의 미래에 관해) 완전한 합의가 있다고 믿을까 봐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세부 사항에 들어가면 아직도 노사 간에 이견이 많다는 것이다. 디지털이 노동의 유연화를 가져왔지만 노사가 기대하는 유연화가 다르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노동자는 일을 일찍 끝내고 아이 돌보는 시간을 많이 갖기를 원하지만, 사용자는 집이 됐든 카페가 됐든 어디서든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아서 일할 수 있길 원한다는 것이다. 자이페르트는 “최소한의 원칙에 합의했으니 이후에는 법제화 과정에서 계속 타협을 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 유행어가 됐지만 기술변동에 따른 사회제도의 변화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쉬운 일은 아니다. 독일에서 합의가 가능했던 데 대해 자이페르트는 노사가 합심해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독일 제조업 생산이 25%나 감소하는 큰 충격이 있었는데, 사용자는 해고를 하지 않고 노조는 임금삭감을 전제로 단축조업을 하면서 이 시기를 버텨냈다. 어려운 시기에 함께 논의하고 합의한 게 서로에게 좋았기에 이번 합의도 가능했던 것 같다.”

국제로봇연맹(IFR) 자료를 보면, 한국은 노동자 1만명당 로봇 수(531대)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2025년엔 한국 제조업 생산인력의 40%를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고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예측했다. 그런데도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나 사회적 합의는 부족하다.

이에 대해 자이페르트는 “일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서 노조를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두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정부와 사용자는 노동자들이 기술변화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해주고, 노동자 역시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화는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부품 업체와도 밀접히 연관된 것이므로, 모든 노동자가 변화를 잘 받아들이도록 노사정이 함께 고용, 복지, 재교육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글·사진 베를린(독일)/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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