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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여전한 대기업 기술탈취, 맞서 싸울 방법이 없다

등록 2017-10-15 17:14수정 2017-10-15 22:06

현대차와 소송중인 생물정화기술 업체 BJC
“15년 연구개발 성과 빼가 자체기술로 둔갑”
지난해 무혐의 결정 내린 공정위 재조사 방침

SJ이노테크 “한화, 특허기술 빼간 뒤 계약해지”
공정위는 “기술유용 확인할 방법 없다” 답변

2013년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지금까지 중소기업이 승소한 사례 0건
2~3년 걸리는 재판 기다리다 도산할 판
#1. 생물정화기술 전문업체인 비제이씨는 자동차 도장공정에서 발생하는 맹독성 유기화합물과 악취를 정화하는 미생물제재를 개발해 2004년부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공급해왔다. 이후 2015년 5월 현대차는 일방적으로 납품 중단을 통보했다. 현대차는 “경북대에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맡겨 새 기술을 개발해 다른 협력업체에 맡겼다”고 밝혔지만, 비제이씨는 기술 도용이라며 소송을 걸었다.

최용설(59) 비제이씨 사장은 “현대차에 제공한 각종 기술자료와 현대차가 무단 절취한 미생물 6병 등을 경북대 과제보고서에서 그대로 활용한 증거를 확보했다. 15년 동안 공을 들인 우리 회사의 연구개발 성과를 현대차와 경북대는 단 5개월여 만에 온갖 교묘한 수법으로 빼가 자체기술로 둔갑시켰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는 비제이씨의 중재 요청에 대해 지난해 8월 현대차에 3억원 상당의 배상 결정을 내렸으나 현대차는 거부했다. 비제이씨는 현대차의 기술탈취로 지금까지 미생물제 매출만 약 22억원 줄었으며, 올해 6월에는 현대차가 다른 화학제품 남품 계약까지 해지하는 바람에 도산 위기에 놓여있다. 비제이씨의 기술탈취 주장에 대해 현대차 쪽은 “비제이씨가 미생물제를 이용한 정화 처리 과정에 발생하는 악취 해소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여러차례 협의 끝에 계약이 해지된 것이다. 건네받은 자료도 중요한 기술정보가 아닌 제품 사용설명서와 같은 단순한 것들이서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2. 대구의 에스제이(SJ)이노테크는 태양전지 금속피복 제조시스템(솔라웨이퍼 스크린프린터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강소기업이다. 이 회사 정형찬(54) 대표는 도전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태양광 장비산업의 국산화에 기여한 공로 등으로 지난 2002년 고용노동부로부터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지금 기술개발 노력보다 ㈜한화에서 사용중인 태양광 장비의 기술 내역 추적에 몰두하고 있다. 한화가 에스제이이노테크의 핵심기술을 탈취해 제작한 복제장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어서다.

에스제이이노테크는 2011년 8월 한화와 태양광 설비 제조 위탁계약을 맺었다. 실제로 일부 시험장비를 입고시키기도 했으나 2014년부터 한화 쪽에서 출력 향상을 명분으로 실제 장비 납품은 미룬 채 핵심기술 설계도면과 상세부품 도면, 시운전 성능평가 자료 등만 요구했다. 정형찬 대표는 “한화의 요구에 맞춰 장비 개발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2015년 말에 갑자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애초 계약에 따른 800억원대의 기대매출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며 안타까워했다. 정 대표는 에스제이이노테크의 특허기술을 적용한 장비를 한화의 기계사업부문에서 제작해 한화큐셀 등 계열사에 납품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뒤 공정위에 신고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화의 기술유용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공정위의 답변이었다. 결국 지난해 9월 대구지방경찰청에 한화를 고소해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한화 쪽은 “에스제이이노테크가 몇가지 기술자료를 건네준 것은 맞다”면서도 “계약에 따른 통상적 요구자료였으며 계열사에 설치된 장비가 그 회사의 기술에 의존한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현대차와 한화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의혹은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행정 제재나 처벌이 이뤄지려면 피해를 주장하는 쪽에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손승우 단국대 교수(법학)는 “기술탈취 행위는 전형적인 ‘암수범죄(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용의자 신원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범죄)’여서 가해 기업이 혐의자료를 감추면 수사기관조차 범죄 사실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인력과 비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의 보복을 감수하고서 증거자료를 확보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민사소송을 통한 피해구제도 간단치 않다. 하도급법 개정으로 2013년부터 ‘3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됐지만 지금까지 관련 소송에서 중소기업이 승소한 사례는 단 한건도 없다. 또 보통 3심까지 2~3년이 걸리는 민사사건 처리 기간을 고려하면 손해배상 소송으로 대응하는 것은 중소기업이 엄두도 못낼 절차다. 특허변호사회의 손보인 변호사는 “기술탈취에 대한 피해 기업의 입증책임 부담을 대폭 완화하거나 행정적 지원제도를 강화하지 않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중소기업에게 피해구제 장치로서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며 법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기업과 거래에서 기술유출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를 보면, 기술유출 피해 중소기업 1개사의 평균 피해금액은 2012년 15억7000만원에서 2013년 16억9000만원, 2014년 24억9000만원으로 증가했다가 2015년 13억7000만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18억9000만원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중소기업의 피해경험 비율도 2014~2015년 3.3%에 머물다가 지난해에는 3.5%로 높아졌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단순히 해당기업의 피해로 그치는 게 아니라 국가적 피해로 이어진다. 대-중소기업의 상생기반을 무너뜨리고 전체 기업의 기술개발 동기와 혁신 역량을 떨어뜨린다. 정부는 지난 9월 초 당정협의를 통해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위를 뿌리뽑겠다며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주요 업종에 대한 공정위의 선제적 직권조사 등이 대책의 뼈대다. 하지만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의 효과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소기업 피해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조사와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피해가 확인될 경우 신속한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1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술탈취 피해 기업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근절 대책과 제도 개선 방안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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