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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무풍지대’ 해외원조에도 개혁의 바람을 불어 넣자

등록 2017-08-29 10:39수정 2017-08-29 17:11

[HERI의 눈] 공적개발원조 선진화를 위한 세 가지 제언
‘최순실 인사’ 드러난 전 이사장 사퇴로 끝이 아니야
부처 할거, 컨트롤타워 부재 등 적폐구조 들어낼 때

2016년 5월 우간다를 국빈 방문해 코리아 에이드 사업 현장을 찾은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2016년 5월 우간다를 국빈 방문해 코리아 에이드 사업 현장을 찾은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국정농단의 촉수는 한국사회 구석구석까지 뻗었다. 한국이 다른 나라를 돕는 공적개발원조(ODA) 영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순실 등 비선 실세가 새마을 ODA, 코리아 에이드(Korea Aid) 등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공적개발을 사익추구 수단으로 악용했다. 시민사회는 문재인 정부의 집권으로 ODA의 정상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임명되는 등 기대할 만한 점도 보여줘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무풍지대에도 개혁의 바람이 몰아치리란 낙관론도 등장했다. 이번 기회에 부처별 할거가 문제가 된 ODA 추진체계를 통합할 수 있다는 기대도 부풀었다.

취임 100여일이 지난 지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시민사회에서는 이번에도 개혁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국제개발협력 관련 내용이 부실하다. 그간의 전문가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개혁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또 이미경 전 의원을 내정한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 인사도 실망을 주었다.

우선, 가장 고질적인 문제이자 ‘비선 실세’가 침투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도 지목되는 원조 분절화 문제를 보자. 지난 10년 동안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에서 숱하게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정부의 국정운영계획에서 유·무상원조의 통폐합은커녕 무상원조의 외교부로의 통폐합도 무산되었다. 2017년 현재 한국의 ODA 수행기관은 유·무상원조를 합해 총 42개 기관(9개 지자체 포함, 규모 약 3조원)이나 된다. 이 중 1조원 정도의 무상원조는 대통령 공약과 시민사회 주장을 반영해 코이카(KOICA)로 통합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막판에 무산됐다. 유상원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ODA를 사업으로 가진 부처들이 반대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분절화와 통합 문제에서 ‘유·무상간 전략적 연계’와 ‘무상원조의 통합적 추진’만을 국정과제에 명시하고 있어 지난 정권의 정책과 전혀 차이가 없다. 또 새 정부의 공약 중 하나였던 국제개발협력전략회의(가칭)의 구체적인 위상과 역할이 아직 오리무중이다.

코이카의 새 수장 인사도 마찬가지다. 현재 코이카 이사장 자리는 공석이다. 김인식 전 이사장은 특검 수사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이 관철한 인사로 드러나 사임했다. 이 자리에 내정된 사람은 5선 의원을 지낸 이미경 전 의원이다. 코이카 이사장 선임에 필요한 적법한 절차인 내부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기도 전이다. 이 전 의원이 개발협력에 전문성이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공동선대본부장을 지냈던 데에 대한 보은인사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정권의 적폐를 반복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찍이 원조 분절화 문제를 해결한 영국과 일본을 보자. 두 나라 모두 클레어 쇼트, 오가타 사다코 등 전문성 있는 인사를 주무부처 수장에 앉히고 이를 노동당, 민주당 정권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처럼 새 정부도 ‘전통적인 보은인사 자리’라는 불명예가 따라다니던 코이카 이사장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전문성 있는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

최순실 같은 이가 ODA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한국 ODA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이고 본질적 문제를 보아야 한다. 무상원조와 유상원조의 분절화와 무상원조 내의 파편화,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기능부전으로 인한 ODA 컨트롤타워의 부재, 유상원조·구속성 원조·양자원조의 높은 비율, 정부주도의 거버넌스, 형식적인 시민사회와의 개발 파트너십 등 10년 동안 과거 두 정권에 의해 이미 구조적으로 굳어진 고질적인 병폐가 그 이유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제개발협력에 관한 원칙과 비전,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원조철학이 한국사회에는 경제 제일주의와 공룡화된 경제부처들에 의해 통제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어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원조규범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철학의 빈곤과 제도의 분절화로 ODA 사업은 개별적이고 계획 없이 시행되게 된다. 이 틈새로 국정농단세력이 침투해 ODA를 사적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다.

‘촛불 정권’ 문 정부에 보내는 세 가지 당부

국제개발협력의 개혁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 다음 세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을 위한 철학을 세워야 한다. 선진 공여국들은 오랜 세월 국제원조의 당위성과 목적, 그리고 원칙을 놓고 계속 토론과 논쟁을 벌여 사회적 합의를 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국제개발의 주요 목적과 원칙이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국가마다 국익과 인도주의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두는 위치가 다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국가가 처한 상황과 맥락에 맞게 국익과 인도주의라는 가치 사이에서 원조철학이 정해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신흥공여국 한국이 작은 규모의 ODA 예산으로 어떠한 목적과 비전 아래 국익과 인도주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공론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논의가 성공적으로 임기 5년 안에 원조철학으로 합의된다면, 차기 정부의 성격과 무관하게 한국의 ODA가 합의된 원조철학에 따라 이행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여야 한다. 이는 곧 국민이 낸 세금에 대한 책무성과 협력대상국에 대한 책무성을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는 ODA의 사상적 토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둘째, 부처 간의 나눠먹기식 ODA 분절화는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국정과제로서 문재인 정부의 ODA 정책이 분절화를 방지하고 통폐합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유·무상간 연계와 무상원조의 통합적 추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절화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처럼 ODA 예산을 미리 유상원조와 무상원조의 배분비율로 나누고 이에 맞게 사업을 정하는 공여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중에서 찾아볼 수 없다. 국제개발이라는 영역에서 협력대상국의 요청이 있고 이들이 원하는 사업 중심으로 예산을 배분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데, 한국은 부처 간에 예산을 미리 배분하고 거꾸로 개발협력에 접근하는 비정상적인 거버넌스 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셋째, 대통령까지 ODA 정책 내용이 전달되기 전에 부처의 이해관계로 ODA를 재단하는 어설픈 ‘중간상인’들을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국제개발협력의 이슈가 어느 국가, 어느 정권에게도 핵심적인 국가정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경제정책, 교육정책, 복지정책, 또는 외교정책이 해외 빈곤국을 지원하는 국제개발정책보다 정부에게는 중요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ODA 정책을 눈여겨보기 어려울 것이고 대강 담당부처 또는 전문가라고 포장하는 ‘정책상인’들에게 일임하거나 ODA 정책을 경제정책 내지 외교정책 아래 종속시키기 쉽다. 코이카 이사장이 쉽게 보은인사의 대상이 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대통령이 손수 ODA 정책을 챙기지 않으면 원조철학이 없는 한국적 맥락에서는 쉽게 ODA가 부처 이기주의의 희생물이 되고, ‘중간상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새마을 ODA가 되고 코리아 에이드가 되는 것이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제개발협력에서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보인 적폐를 끊어야 한다. 현재까지 발표된 국정과제와 인사는 실망스럽지만, 아직 문재인 정부에게서 희망을 거두어선 안 될 것이다.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의 우려를 듣고, 무풍지대인 국제개발협력에도 개혁의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김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oxonian0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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