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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문재인 정부의 첫 사회혁신 정책이 성공하려면

등록 2017-08-25 15:52수정 2017-08-25 16:36

【HERI의 눈】
사회혁신은 묵은 난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과정
마을과 지방분권에서 시작하는 미래를 위한 ‘전환’
마을의 고유한 맥락과 속도 차이 인정하는 게 출발
11일 춘추관브리핑실에서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 공공서비스 플랫폼 추진에 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 기자단
11일 춘추관브리핑실에서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 공공서비스 플랫폼 추진에 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 기자단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국정 방향으로 ‘사회혁신’을 제시했다. 정책수립과 관리를 위해 청와대에 사회혁신 수석 비서관을 신설했다. 또 정부는 8월 11일 주민센터 기반 '내 삶을 바꾸는 공공서비스 플랫폼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사회혁신 정책의 첫발을 뗀 것이다. 앞으로 전국에 '사회혁신센터'를 만들어서 지역 문제를 지역 주민들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사회혁신의 일반적 정의는 “정부와 기업(혹은 국가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시민의 자율적, 주도적인 참여와 실천을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해 가는 모든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방법은 상상력이 핵심이기에 어떤 권위적인 것도 인정함이 없고, 참여자의 제한도 없는 민주적 과정이다.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는 제도와 집단이 이른바 ‘적폐’라 불리는 난제라면, 이는 분명 사회혁신의 대상이다. 사회혁신은 적폐라는 난제를 가장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아가 사회혁신이라는 새로운 방법은 기존에 '자원'이 아니라 생각하고 저평가 또는 주변화된 관계, 사람들, 움직임들을 자원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포함한다. 근대화와 성장논리 속에서 주변화된 모든 사람과 관계들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혁신은 곧 민주화의 새로운 과정이기도 하다.

내 삶을 바꾸는 ‘공공서비스플랫폼’ 개념도.                            자료: 정부24(www.gov.kr/portal)
내 삶을 바꾸는 ‘공공서비스플랫폼’ 개념도. 자료: 정부24(www.gov.kr/portal)

대의제를 넘어 시민들의 ‘삶의 힘(역량)’을 키워야

지금까지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동원되는 자원은 보통 ‘자본', '전문가 집단', '정치권력' 그리고 '행정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 자원은 소수의 손에 독점되거나 특정한 자격조건이 있을 때만 활용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자원을 활용할 사람들은 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다. 난관에 봉착한 시민들과 해결에 필요한 자원이 분리되다 보니 고통받는 시민들은 자원을 독점한 집단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삶의 힘(역량)이 없이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의 문제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 어쩌면 이것이 인간이 처한 가장 심각한 존엄성 파괴 상태일 것이다. 삶에 대한 자기 선택권, 생존을 위한 자기 능력과 기술이 점차 사라지면서 교육, 의료, 주거, 육아, 상가임대료, 취업, 고용조건은 물론 여가와 문화 등 삶에 필요한 자원들이 정부와 기업이 책정한 비용과 제도에 따라 수동적으로 결정된다. 이 자원들을 얻지 못하면서 빈곤의 늪에 떨어지는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다.

사회혁신은 바로 이 존엄성을 회복하고 시민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 해결의 자원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노벨상을 탄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이 밝힌 ‘역량(capabilities)’과 ‘자유로서의 발전’은 이런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을 만들고,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헌신하며, 대안 교육을 시도하고,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비영리 단체들을 조직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회혁신 운동은 또 대부분 지역과 마을을 출발점 또는 거점으로 삼고 있다.

이미 유럽은 사회혁신을 미래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전환전략’으로 다루고 있으며, 여러 의제를 하위 과제로 삼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지원 아래 사회혁신 의제 및 모델을 발굴하는 ‘유럽 투모로우 (Europe Tomorrow)’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주요 의제로 다음과 같은 12가지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주제들은 유럽연합 또는 국가 차원의 정책이며 동시에 지역과 마을 단위에서 시민들이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이 중심이 된 기존의 추진 전략과 달리 ‘시민 과학기술’, ‘주민참여 예산제’ 등 시민의 자율적 참여가 기본이다. 아울러, ‘탈성장’, ‘공유’, ‘다운 시프트’, ‘업사이클링’, ‘비전력(非電力) 삶’과 같은 대안적 삶의 철학을 포용하는 미래지향 전환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사실 사회혁신은 모든 국정과제를 관통하는 국가 미래구상이자 정책실현의 방법론이다. 한두 개 정부부처가 전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든 부처가 부처 간 장벽을 깨고 협력해야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국내외 사회혁신 흐름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사회혁신을 국정과제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혁신에 성공하기 위한 5가지 조건

문재인 정부는 읍 면 동 주민센터를 활용한 ‘공공서비스 플랫폼’ 사업으로 사회혁신이란 국정과제 실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먼저 시간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서로 다른 지역과 마을, 그리고 사람마다 담긴 고유한 시간과 속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요 산업 형태, 세대별 인구 유형, 지정학적 특징, 사회문화교육 기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 분포에 따라 각 마을이 추진하는 목표, 실행 주체, 필요한 합의 절차와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화를 전제로 한 주민참여 기반 공공서비스 플랫폼은 고유한 맥락과 시간이 필요하다. 숲 속에는 수많은 생명이 각자의 고유한 시간 속에서 서로의 자양분이 되듯이 말이다.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 획일화된 중앙의 제도·절차가 투입되면, 그런 사회혁신은 권위주의적 동원을 반복하는 결과에 그치고 말 것이다.

둘째, 부처 간 장벽을 없애고 유연한 제도로의 공공행정 혁신이 시급하다. ‘주민센터’ 자체는 행정안전부 관할이지만 주민들이 향유할 공공서비스는 모든 부처를 관통하는 복합적 서비스이다. 정부가 주민센터를 보는 관점부터 혁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주민 ‘관리’가 아니라 ‘지원’을 위해 가장 유연한 업무협력 시스템을 만들어 내야 한다. '관리'의 관행이 계속되면 마을총회와 주민자치는 동원부대일 뿐이며, 공공서비스 플랫폼은 중앙 제도에 지역 주민들의 민원을 끼워 맞추는 틀에 불과하게 된다. 전문가와 행정 관료는 민의의 실현을 위한 지원조직이지 민의를 재단하는 조각가가 아니다. 주민센터를 통한 마을총회, 커뮤니티 허브, 공공서비스 플랫폼이 제 기능을 하려면, 정부는 마을총회 결과가 잘 반영되는 행정혁신에 나서야 한다.

셋째, 공공성 회복에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마을은 공공성 위에서 숨 쉴 수 있다. 공공성 회복은 정부의 책임이다. 공공성이 무너지면 주민들은 마을 사이를 떠돌게 된다. 마을이 텅 빈다면 아무런 정책도 의미가 없다. 서구의 마을 사회혁신 사례들 대부분은 마을 주민들이 그 마을에 남아있도록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폐광이나 폐업 이후 떠나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새로운 지역 산업을 육성하기도 하고, 값싼 주거?교육비용을 찾아 마을을 떠나면서 삶의 터전이 여러 갈래 쪼개지는 사람들을 위해 공공주택, 무상교육을 시행하기도 한다. 정부는 주민들이 복지와 공공성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집중이 가능할 때 동장 직선제나 주민참여 예산제, 마을총회와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넷째, 포용성을 넓혀야 한다. 정부 구상에 담긴 마을은 포용적(inclusive) 마을이어야 한다. 포용성은 단지 문을 열어놓는 것만이 아니라, 그 문을 누구나 쉽게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낮은 문턱, 넓은 길, 좋은 안내판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을은 모든 갈등과 시간이 공존한다. 마을에는 서로를 해치지 않는 한, 모두가 공존 가능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바로 개성보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포용적 마을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포용성은 최첨단 기술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다양한 주민들은 하나의 디지털 앱으로 묶일 수 없다. 정부는 주민 스스로 자신의 경험과 교육수준에 맞게 필요한 정보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다양한 지원방식을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필요한 정보에 대한 접근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서비스도 결국 얼마나 많은 사회복지사가 적절한 노동조건 속에서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가에 달려있다. 약자들이 가려지거나 떠나지 않고 함께 참여하여 회복되는 마을이 될 때, 즉 포용적 마을이 될 때 주민참여, 마을총회, 공공서비스 플랫폼은 그 의미를 지킬 수 있다.

다섯째, 직접 민주주의를 과감히 상상해야 한다. 마을총회가 읍?면?동 연합 총회로 확장되고 이를 통해 지방의회와 국회를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대의제 정치권력 구조에서 구 단위까지 의회가 시민들의 의사결정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총회가 진정한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은 사실상 읍?면?동 단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의회와 충돌하는 과정은 아니다. 오히려 의회가 주민들의 삶 속에서 제 기능을 하도록 지원하는 공생관계가 될 것이다. 마을과 마을이 연합 총회를 통해 도로 개선 정책, 교육지원 정책, 도시재생 정책들을 협의해 나간다면, 이는 지방의회와 정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럴 때 주민센터는 공공서비스는 물론 민주주의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시간, 행정혁신, 공공성, 포용성, 직접 민주주의 지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사회혁신 정책의 필요조건이다. 이를 기반으로 주민들은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시민주도 사회혁신을 추구할 수 있다. 다섯 조건과 함께, 정부는 교육이 지역과 마을 단위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공교육과 마을의 자유로운 협력을 위한 제도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또한 마을의 친환경 에너지 자립 실현을 위한 지원과 제도적 개선이 추진되어야 한다. 거대 도시 서울의 생존과 소비를 위해 타 지역이 희생되어선 안 되고, 서울에만 의존하는 지역 경제구조 또한 혁신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을과 주민센터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서의 사회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출발일 수 있다. 마을은 모든 갈등이 얽혀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가능성과 잠재력, 희망 또한 동시에 응집된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사회혁신 정책은 주민 스스로 자기 삶과 존엄성 유지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도록 공공성을 얼마나 건강히 회복시키는가에 그 성패가 달렸다. 그리고 이것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를 관통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승원 사회혁신리서치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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