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1번가 부스 앞에서 열린 ‘사회서비스공단, 사회서비스노동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공공인프라 확대와 좋은 일자리를 촉구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 100일이 된 시점에서 다시 돌아본 지난 대통령 선거는 특별했다. 경제정책의 측면에서 후보간 정책적 차이가 뚜렷했던 선거였기 때문이다. 일자리 정책은 차이가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분야였다. 물론, 모든 정당은 예외없이 고용대책을 제시하였다. 겉으로는 이전 선거에서 모두가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건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후보간의 진정한 차별은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 추진 수단에 나타났다. 경제정책으로 진보와 보수를 구분이 가능했던 첫 번째 대통령 선거라 해도 좋았다.
높은 실업률은 고용시장의 실패이다. 전 사회가 일자리 결핍의 고통을 호소하고, 청년실업은 전 세대를 불안하게 만든다. 시장의 실패는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이유라고 경제학은 가르친다. 그럼에도 보수정당은 고용창출에 민간의 역할(즉, 시장)만을 강조했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규제의 완화’만을 내세우는 ‘정책자문 편의주의’에 빠져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어렵지 않다. 정부가 개입하여 고용시장의 실패를 개선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의존하여 ‘장기적으로 기다리다가’ 다 죽을 수는 없다는 케인즈식 인식과 일치한다. 과거 9년간 실패한 경제정책과 정확한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다. 적어도 오랜 기간 실패해 온 정책을 온전히 뒤집는 것임은 분명하다. 적어도 방향만은 옳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한국경제의 구조전환을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도 결국 성장정책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고 한국경제를 ‘중상위 소득의 함정(middle-high income trap)’에서 구해내려면 보다 담대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지난 10년 한국경제는 시간과 자원을 낭비했고, 스스로를 갉아 먹으며 늙었다. 도덕적 문제를 제쳐 두더라도, 4대강 및 자원외교 그리고 창조경제 정책은 정책적 참사가 되고 말았다. 경제의 고도화에 필요한 역동적 불균형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존의 경제구조를 퇴행적으로 강화했을 뿐이다.
70년대 중화학 공업정책(HCI Drive)은 한국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으나, 80년대 국제경제의 극적 개선에 힘입어 고도의 제조업 구조 확보에 ‘결과적으로’ 기여하였다.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민주당 정부는 획기적 정보기술(IT) 투자를 통하여 새로운 차원의 구조고도화를 촉진하였다(IT Drive). 이러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는 산업분야간 불균형을 발생시키지만, 충분한 국내외 시장수요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그리고 광범위한 전후방 연계효과를 발휘함으로써 각 시대의 성장을 이끌고 한국사회를 질적으로 바꾸는데 기여하였다.
삶의 질에 직업이 갖는 의미는 결정적이다. 그런데 개인이 어떠한 직업을 갖고 사는가는 결국 한 경제의 산업구조에 좌우된다. 50년대 평균적 개인의 삶과 2000년대의 그것이 다른 것은 각 시대의 산업이 다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성장전략의 방향 설정은 비교적 쉬웠다. 한국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일종의 모범답안 역할을 했다. 70년대는 일본이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미국이었다. 그러면 지금 이 시기, 소득 주도 성장정책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구조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사회서비스의 발전이 억제된 한국 사회
한국을 ‘헬조선’으로 부르는 데 반박하기란 어려우며, 현재 사회경제적 상황을 집약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한국을 비교한 통계를 보면 한국인들은 소득 뿐만 아니라 직장, 주거, 건강 등 핵심적 삶의 측면에서 현격하게 불만족해 한다. 또,또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가 OECD 평균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삶의 질이 광범위한 사회적 요인에 좌우되는 것이므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한국 사회와 정부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지나치지 않다. 예를 들어, 사회적 보호(Social Protection)나 보건(Health) 관련 정부지출이 OECD 평균에 비하여 현격히 낮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OECD의 경우 각각 26.2%, 9.6%이나 한국은 11.7% 및 3.6%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가 한국의 낮은 삶의 질의 배경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대중의 일상에 필요한 다양한 사회서비스 공급이 매우 부족한 초과수요 상태임을 의미한다. 경제시스템이 당연히 사회서비스 공급능력을 키워야 했지만 우리 사회는 외면해 왔다. 소득이 늘면 사람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내용이 달라진다. 산업활동도 이러한 상품과 서비스로 고도화 한다. 한국은 자동차나 전자제품 그리고 금융 등 상업서비스까지는 고도화가 잘 진행되었다. 그러나 돌봄서비스를 포함한 사회서비스 분야는 공급량이 부족하고 품질이 낮아 만성적 초과수요에 직면하고 있다. 할머니의 손주 양육이 당연시되고, 결혼은 이미 사치재이며, 일상에서 장애우들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이다. 사회서비스는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고 후생을 증진시키는 엄연한 산업이지만, 우리 사회는 ‘복지’라는 이름을 붙여 생산확충과 질적 고도화를 이념적으로 억제해온 결과인 것이다.
사회혁신적 성장(Social Innovation Drive)이 방향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경제에서 사회서비스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대체로 3-4%p 낮은 수준이다. 대략 수십조에 달하는 부가가치(따라서 생산량은 훨씬 더 많이)가 더 생산되어야 선진국 수준의 삶의 질에 필요한 조건을 준비할 수 있다. 당장 이러한 분야에 대한 공공의 고용 확충은 필요하지만 정책으로서는 미약하다. 좀 더 나아가 이들 분야에 사회를 혁신하는 성장산업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교육정책과 유인체계의 개혁, 기득권 중심의 장벽 철폐, 획기적인 공공자원의 투자가 동반되어야 한다. 사회를 총체적으로 ‘고도화’하는 전방위적 사회혁신적 정책과 일자리 정책은 일체화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전략은 ‘사회혁신적 성장전략’으로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이는 지난 반세기 이상 추구해온 한국사회와 경제발전 전략들과 동일 선상에 있다. 전략의 대상만 다를 뿐, 우리 보다 나은 사회와 닮아 가려는 이미 익숙한 추격모형인 것이다.
사회혁신적 성장전략은 이미 굳어진 사회경제적 구조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갈등을 촉발할 것이다. 정책의 추진에 필요한 예산 논의는 당연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의 본질을 가리기도 한다. 우선 한국은 경제정책 예산이 부족하다 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한국의 경제정책 재정지출은 약 17.7%로서 OECD 평균보다 5.5% 높은 최상위 수준이다. 새로운 경제정책을 위하여 증세로 추가 재원을 만들기 보다는 정책목표의 변화에 따라 예산을 재배치 하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경제예산을 많이 쓰고도 성과가 미약한 것은 자원이 기존의 경제구조를 강화하는데 낭비되었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수많은 증거를 갖고 있다. 소득 주도 성장은 예산의 재배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내 피부와 같이 익숙해진 오래 묵은 장치들을 제거해야 하는 일이다.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그래서 가능하지 않은 과정일 수도 모른다. 더구나 그 일을 담당해야 할 정책당국자들 자체가 오래된 장치의 일부일 때는 어떠할 것인가.
한홍렬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hongyul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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