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울마을주간’에 열린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 정책포럼’에 열중하고 있는 참석자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지난달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5대 국정 목표로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5대 목표를 세우고, 총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2020년까지 총 178조원의 필요재원을 제시했는데, ‘더불어 잘사는 경제’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에 각각 42.3조원(23.8%), 77.4조원(43.5%)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처럼 새 정부는 경제와 복지를 국정운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경제와 복지의 교차점인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도시재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다. 이전처럼 대규모 토목건설 중심의 일시적인 경기부흥이나 대기업 중심의 성장으로 중소기업 하청발주가 늘어나도록 하는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이를 토대로 경제와 복지의 자원이 지역 내에서 연계되고 순환되며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관계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활성화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
이는 지역의 풀뿌리 자치를 활성화 시킨다는 점에서 또 다른 국정 목표인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국민이 주인인 정부’와도 연계된다.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를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로 개편하는 내용의 '내 삶을 바꾸는 공공서비스 플랫폼' 정책도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지역의 필요한 서비스를 주민들의 의견으로 찾아 경제와 복지 문제를 자치적으로 해결해간다.
지역의 공동체를 통한 경제, 복지, 자치 과제 해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앞선 정부처럼 토목건설을 통한 방법이라면 예산을 뿌리고 곳곳에 건물들을 짓는 일이 중심이 된다. 또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이라면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서 이들의 요구사항을 토대로 장애를 해소하거나 전략사업을 대기업 간에 분배해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동체 중심의 경제?복지에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공동체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란 결국 ‘관계’를 복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각자가 가진 자원과 정보를 파악하고 연결을 지으며 서로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유, 참여, 자치를 위해서는 이를 안내해주고 촉진하고 북돋워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공동체는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는다. 주민들 간의 연계, 교육, 끊임없는 정보제공과 이를 바탕으로 한 토론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이 성장에는 누군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모바일,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통해 이러한 정보의 교류와 맞춤형 데이터 제공이 원활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초 데이터를 집어넣기 위해서도, 또 이러한 데이터를 해석하여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결국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의 현안과 주민들 간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포함되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성과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촉진과 연계의 역할을 하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그런데도 이러한 공동체 중심의 정책 추진에 있어 사람의 역할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관계를 연결해주는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지역주민들뿐만 아니라 민과 관의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 퍼실리테이터, 코디네이터, 인큐베이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지역 안에서 촉진자와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들의 처우는 그렇지 못하다.
한 지역의 도시재생센터 코디네이터들의 노동환경을 살펴보자. 4명의 코디네이터가 지역주민들과 만나서 지역공동체를 다지는 동시에 지역을 바꿔나가는 방향에 대해 의논한다. 중간지원조직으로서 행정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하고, 주민 행사와 강의를 기획한다.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는 기본이고, 야간회의나 주말 행사로 야근은 밥 먹듯이 한다. 그런데 이들의 처우는 어떠할까? 이들은 계약직도 아닌 위촉직으로 되어 있다. 월 15일 근무 계약을 하고 15일치 수당만 받는다. 4대보험도 안 되어 있으며, 퇴직금도 없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중간지원조직의 상황은 이처럼 열악하다. 중간지원조직을 민간에서 위탁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1~3년 단위로 심사를 해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조직 자체가 비정규직인 셈이니 일하는 사람이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고용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23개월 계약을 하거나 퇴직금을 회피하기 위해 11개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면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서 민간의 질 안 좋은 일자리를 양산하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마저 든다. 이런 상황에서 경험이 축적되고 전문성이 키워지길 기대하기란 어렵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인재육성 방안 고민이 필요한 때
적정한 노동환경 마련과 함께 고민할 부분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인재양성이다.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는 이들 외에도 사회적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다. 아래의 그림처럼 기업가, 실무자, 코디네이터, 행정가, 전문가별로 각기 다른 역량이 필요하며 이러한 역량은 단기 교육과정으로 달성될 수는 없다. 체계적인 경험과 훈련, 무엇보다 장시간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여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필요하다.
자료: 정상훈, ‘사회적 경제 인재육성 로드맵과 육성방안’ (2014.6)
그런데도 8~12주간 단기 교육과정을 통해 ‘OOO전문가 양성과정’으로 속성으로 필요한 인력을 키우려 하거나, 자격증 제도를 통해 지식과 정보 위주의 테스트로 환원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역량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어떠한 경험들이 제공되어야 할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틀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한 채 말이다.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인력만이 아닌 사회적 경제조직 안에서 이들이 어떻게 성장해서 향후 리더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업에서 인재육성플랜을 짜고, 각 역할 단계별로 요구되는 리더십 내용을 정의하고 성장 경로에 따른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는 것처럼 사회적 경제 역시 장기적인 인재육성 고민이 필요하다.
끝으로 사회적 경제조직에 대한 인재육성 방안이 오로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만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97년 외환위기 전후로 자활기업,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사회적 경제는 시민들에게 낯설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새 정부의 경제?복지?자치 정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도 더 많은 주민이 사회적 경제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청소년 교육, 평생학습과 연계된 생애주기 인재육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앞서 설명한 5대 국정 목표로서 ‘더불어 잘사는 경제’ 중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 전략으로 기재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가 들어 있다. 법·제도 및 추진체계 구축, 생태계구축, 좋은 일자리 창출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그리고 생태계구축에서 ‘17년 인력 양성 로드맵 수립, 사회적 경제 학습체계 구축 등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력 양성 체계 마련’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당장의 실무인력에 급급한 단기적인 전략이 아닌 사회적 경제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인력 양성 로드맵과 학습체계 구축이 필요한 때이다.
주수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
jusuwo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