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일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통해 서울 강남 4구 등 11개 구와 세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날 오후 서초구 한 부동산 앞에 한 시민이 매물 목록, 재건축 안내문 등을 살펴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4년 최경환 부총리는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은 격”이라며 부동산 관련 규제 혁파를 주장했고, 정부는 이른바 부동산 3법인 ‘주택법’,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의 개정을 추진했다. 당시 야당은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며 개정에 반대했지만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제 활성화에 필요하다”며 부동산 3법의 빠른 통과를 재촉했다. 대부분의 언론도 “초이노믹스의 동력을 살려야 한다”며,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4년 12월 부동산 3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은 본격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주택법’ 은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의 실질적인 폐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3년 유예,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서 조합원 분양주택 수를 1주택에서 3주택으로 늘리는 것을 주목적으로 개정되었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3법 통과로 ‘주택시장 회복과 전·월세 시장 안정’을 전망했지만, 그 이후 주택 가격과 전·월세 가격, 그리고 가계부채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지금 잘 알고 있다. 치솟는 집값과 전·월세 가격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은 커졌고, 가계부채는 1400조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가계의 이자수입에서 지출을 뺀 이자 수지는 5조 7589억 원 적자인데, 가계의 이자 수지 적자는 1975년 통계 작성 이후 초유의 사태라고 한다. 빚더미에 오른 가계가 채권자에서 채무자로 바뀐 것이다.
부동산 3법의 개정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실질적으로 서울 강남의 주택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그동안의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부동산 3법 개정으로 인한 최대 수혜 지역이 강남이라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한여름에 겨울옷’이 아닌 강남 재건축 단지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들을 모두 없앤 결과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3.3㎡ 당 분양가가
4천만 원 전후로 책정되는 단지가 속출하게 되었다. 부동산 3법 개정뿐 아니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주택청약 1순위 요건 완화,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 등 투기를 조장할 수 있는 전방위적인 조치가 취해지면서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부산, 대구, 세종, 제주 등 전국적으로 투기 붐이 일었다. 심지어 ‘옷’ 보다 ‘집’을 더 자주 사는 갭(gap) 투자자들까지 생겨났다. 주택을 경기 부양 수단으로 보았던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의 만연과 주택 가격의 비정상적인 상승으로 이어졌다. 세종시의 일부 대형 아파트는 최근 상승액이 5억 원에 달하는데, 이는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고, 한 달에 200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할 때, 20년 이상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막대한 불로소득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봄까지 이어진 시민들의 저항 결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국토교통부 장관이 바뀌었고, 여야가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는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8·2 대책’을 발표했다. 8·2 대책은 부동산 3법 개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와 같이 법 개정이 필요한 정책이 일부 있지만 관련법의 개정 없이 즉각 실행할 수 있으면서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 때의 주택법 개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폐지되어 있었을 뿐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분양가상한제는 시장 상황에 따라 조만간 부활할 것으로 예상한다. 3년 유예되었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2018년부터 부활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부동산 3법 개정이 다음 정부에서 이렇게 쉽게 무력화되는 것을 보면서 왠지 허탈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부동산 3법 개정이 만들어낸 재앙을 우리 사회가 극복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주택 가격 상승을 전제로만 작동하는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주택 가격 상승이라는 불확실한 어음을 가계부채라는 확실한 현금과 바꾸어 놓았다. 우리 사회는 소득과 무관하게 터무니없이 올라가 있어, 언제든 하락할 수 있는 집값과 1400조로 늘어난 가계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경우 빚을 내 산 집은 폭탄이 된다. 거래가 이루어질 때마다 폭탄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데, 역대 최고수준이었던 2015년과 2016년의 거래 건수는 우리 사회가 짊어진 폭탄의 크기가 지속해서 확대됐음을 보여준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미 재앙이 벌어졌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8·2 대책이 나왔지만 부동산 투기로 이득을 본 세력들은 호시탐탐 새로운 기회를 노리며, 문재인 정부 주택 정책의 실패를 예견하고, 정부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예견이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풍선 효과를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며, 무너지지 않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증명하려 할 것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니 결국 주택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규제가 강해지면 실수요자와 취약계층이 먼저 피해를 볼 것이고, 자금 여유가 있는 다주택자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계속 나올 것이다. 평생 내 집을 장만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40%에 달하는 세입자들이 주택의 진짜 실수요자이지만, 주택 가격이 너무 높아, 이들이 주택을 사겠다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점은 무시될 것이다. 대부분의 세입자와 1주택 소유자들이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 LTV·DTI와 전혀 상관없다는 점도 무시될 것이다. 그런데도 8·2 대책을 비판하기 위해 투기 세력은 실수요자들을 끊임없이 호명해 볼모로 잡으려 할 것이다. 8·2 대책이 발표된 당일부터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 특히, 젊은 세대의 진보적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배경에는 2년 마다 감당할 수 없게 올라가는 전세 보증금과 생활을 짓누르는 월세로 인한 고통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수도권의 승패를 '미친 전·월세'가 갈랐다는 기사(경향신문, 2016년 4월 14일자)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주권자인 국민은 서민과 중산층이 집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는 정치 세력을 준엄하게 심판할 준비가 되어있다. 8·2 대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향후 주택 보유세가 강화되어야 하고,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를 포함한 강력한 세입자 주거비 부담 경감 대책이 나와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3법 개정이 만든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고, 투기 세력의 저항도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집으로 인한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는 국민의 더 큰 저항도 이미 시작되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
choiey60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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