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물건을 사고 팔지만 수출하는 쪽과 수입하는 쪽의 계산이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수출품을 싣고 야적장에 대기중인 컨테이너선. 사진 한겨레DB
277억달러 대 232억달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누리집은 지난해 미국산 상품의 한국 수출액은 423억달러, 한국산 상품 수입액은 699억달러이고, 이에 따른 상품수지는 277억달러 적자라고 발표하고 있다. 277억달러는 지난달 미 무역대표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을 요구한 공식 서한에서 가장 강조한 수치다. ‘노회한 협상가’ 트럼프의 한-미 에프티에이 공격에 토대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이 공식 발표한 우리나라의 대미국 상품수지는 ‘232억달러 흑자’다. 원리상 양국간 상품수지는 한 쪽이 100억달러 흑자라면 상대방은 100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는 비례적 ‘불균형 상태’여야 맞다. 한-미간 45억달러에 달하는 불일치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양국간 수출입 금액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작년 한국산 제품 수입액이 699억달러라고 발표한 반면, 관세청은 우리가 미국에 수출한 금액을 664억달러로 집계했다. 수출입·무역수지 통계작성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경 통과, 즉 통관기준으로 집계하는 방식(관세청)이고, 다른 하나는 제3국을 통한 중계·가공무역까지 포함하는 국제수지 기준 집계방식(한국은행)이다. 관세청과 미 무역대표부는 다같이 통관기준으로 집계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양국간 수출입액 차이가 빚어지는 요인으로 몇 가지가 꼽힌다. 먼저 수출은 수출항구에서 선적할 때의 가격(본선인도가격·FOB)으로, 수입은 화물에 운임과 보험료를 포함한 가격(CIF)으로 수출·수입업자가 각각 신고하는데서 차이가 발생한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배로 화물이 오가는데 걸리는 한 두달의 시차 문제도 연초 및 연말의 수출입통계에 차이를 낳는다. 또 화물이 제3국을 경유하는 경우에 수출은 최종목적지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수입은 원산지 기준으로 작성되는 것도 한 요인이다. 홍콩을 거치는 일이 많은 한국과 중국 사이의 수출입·무역수지 통계에서 항상 큰 불일치가 존재하고 있는 게 대표 사례다. 이때문에 교역 당사자인 양국이 서로에게 “우리가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김바우 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교역 당사국 사이의 수출입액 불일치는 흔한 일이고, 무역통상에서 ‘퍼즐’로 불린다”며 “이런 불일치를 ‘미러링 이슈’라고 한다”고 말했다. 한쪽은 분명히 수입했는데 상대방은 수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마저 발생하는 등 거울 속 모습이 실제와 달리 일그러진다는 뜻이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한-미 에프티에이 특별공동위원회 개최의 도화선이 된 만큼 ‘미러링 이슈’가 이번 협상테이블의 첫 공방 주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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