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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오뚜기만 닮으면 ‘공정경제’ 이뤄질까

등록 2017-07-28 19:56수정 2017-07-30 10:36

[다음주의 질문]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함영준 오뚜기 회장(왼쪽 둘째)과 건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함영준 오뚜기 회장(왼쪽 둘째)과 건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7·28일 이틀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간담회가 연이어 열렸다. 새 대통령이 취임 초기 재벌과 만나 정부 정책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대통령과 총수의 만남은 정경유착의 씨앗이 되기도 하지만,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청와대 모임의 스타는 재계 1위인 삼성도, 2위인 현대차도 아니고, 중견그룹인 오뚜기다. 대통령은 요즘 젊은이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라고 부르는 것을 화제로 올렸다. “고용, 상속세 (납부를) 통한 경영승계, 사회공헌 측면에서 아주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갓뚜기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오뚜기가 비정규직이 거의 없고, 상속세를 제대로 냈으며, 라면값을 오랫동안 올리지 않은 점을 가리킨 말이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재벌 회장과 부회장들은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속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재벌은 경제성장의 주역이라는 밝은 얼굴과 함께 고용 없는 성장, 세금 없는 편법·불법 경영승계, 중소기업 쥐어짜기, 골목상권 침해의 주범이라는 어두운 얼굴을 동시에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굳이 재벌 총수와의 만남에 오뚜기를 부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좋은 점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오뚜기만 닮으면 한국 사회가 좋아지는 걸까? ‘착한 기업’ 오뚜기의 이면에 또 다른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나고 있다. 오뚜기그룹의 국내 계열사는 모두 13개다. 라면을 생산하는 오뚜기를 정점으로, 라면에 들어가는 밀가루와 수프 등을 생산하는 여러 자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99%에 이른다. 문제는 계열사 대부분에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어 일감 몰아주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계열사 중에는 재벌들이 흔히 일감 몰아주기 수단으로 활용하는 물류·광고·시스템통합(SI) 회사들이 망라돼 있다. 재벌의 후진적 소유지배구조의 상징과도 같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상호출자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거미줄을 연상시킬 정도다. 오뚜기가 재벌이었으면 진작에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았겠지만 오직 덩치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법망이나 사회적 감시의 눈길이 미치지 못했다.

더 심각한 것은 오뚜기만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개혁연대가 발표한 중견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실태를 보면, 동원·농심·풍산·에스피씨·대상·영원·녹십자·엘아이지 등 국민에게 친숙한 수십개 기업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중소·중견기업과의 간담회에서 “하도급법 위반 사업자의 80%가 중소기업”이라고 비판했다. 또 현대차의 1차 협력사인 중견기업이 2차 협력사인 중소기업에 상습적으로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등 갑질을 하다가 공정위에 신고된 사건도 발생했다. 중소·중견기업이 자기보다 더 작은 기업을 괴롭히면서, 정부에 대기업의 갑질 근절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또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혁신경제’를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모임에서 “오뚜기가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아주 잘 부합하는 기업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리 단순히 볼 것만은 아니다. 오뚜기의 좋은 점을 닮은 중소·중견기업이 많아지면 공정경제·혁신경제를 앞당길 수 있지만, 오뚜기의 나쁜 점을 닮은 기업이 많아진다면 반대로 요원해진다.

오뚜기 함영준 회장은 대통령의 치사에 “대단히 부담스럽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함 회장 자신도 ‘오뚜기의 모순’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재벌의 사회적 책임만 강조해왔다. 하지만 진정한 공정경제·혁신경제를 이루려면 중소·중견기업도 대기업과 함께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을까?

곽정수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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