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 기자 sp96@hani.co.kr 안녕하세요? 한국은행을 담당하고 있는 김경락 기자입니다. 한국은행은 예산을 다루는 기획재정부와 함께 국내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기관입니다. 이곳을 맡고 있는 저의 주요 취재 분야 역시 자연스레 국내 경기 흐름일 수밖에 없습니다. ‘탄광 속 카나리아 새’ 이야기 들으신 적 있나요? 18~19세기 영국에서 광산업이 꽃피우던 때였습니다. 광부는 언제나 카나리아 새와 함께 일했다고 해요. 작고 귀여워서 혹은 지저귀는 소리가 예뻐서만은 아니었습니다. 탄광 안에 조금이라도 유독가스가 퍼지면 카나리아 새는 노래를 멈추고 죽음으로써 광부에게 위험을 알렸다고 합니다. 광부에게 카나리아 새는 위험을 먼저 감지해 알리는 조기 경보기였습니다. 경기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정부나 경제 전문가들에게 카나리아 새는 무엇일까요? 요즘 들어 부쩍 ‘신용카드 사용 정보’가 그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수출·투자를 중심으로 경기가 부쩍 살아나고 있지만 소비는 회복세를 타고 있지 못합니다. 정책당국들로선 소비가 언제 부진에서 벗어나는지 파악하느라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신용카드 사용 정보는 국내 소비흐름을 어떤 경제지표보다도 가장 빨리, 비교적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얼마나 빠른지부터 볼까요? 여러분이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고 나면 그 결제 정보는 금융전산망을 통해 카드사들의 모임인 여신금융협회에 바로 들어갑니다. 어떤 곳에서 무엇을 얼마 주고 샀다는 정보가 순식간에 모이는 거죠. 여신협회는 매달 모인 정보를 그 다음달 첫주에 정부에 전달합니다. 정책당국이 전월 소비 정보를 불과 5일 남짓 만에 쥘 수 있는 셈이죠. 또 다른 소비지표인 통계청의 ‘소매판매 동향’보다 20일 정도나 빠릅니다. 소비 흐름이 급변할 때나 흐름을 재빨리 파악해야 하는 사람에겐 뒤늦게 잡히는 정보는 ‘죽은 정보’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난해 9월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일자, 정부를 향해 이런 충격을 줄이기 위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빗발쳤습니다. 이때 정부가 주목한 게 바로 신용카드 사용 정보였습니다. 피해 실상을 어떤 지표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었죠. 물론 화훼업종 등 피해가 예상된 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진행했지만 신뢰도는 그리 기대할 바 못됐습니다. 응답자 주관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신용카드 사용 정보는 정확성도 뛰어납니다. 아무리 빨리 집계되더라도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정보로서 매력도는 낮아지게 마련입니다. 아마 직업을 갖고 있거나 가졌던 적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신용카드를 갖고 계실 겁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물건을 살 때 이 카드를 쓰실 거예요. 텔레비전이나 가구와 같은 값비싼 물건을 살 때도, 동네 슈퍼에서 담배나 과자를 살 때도 카드를 이용하시는 분들 적지 않을 겁니다. 이렇듯 오늘날 소비는 상당 부분 신용카드를 매개로 이뤄집니다. 신용카드 정보는 전체 소비를 거의 대부분 포괄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신금융협회 자료를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기준 전체 소비지출 중 30% 정도만 신용카드가 활용됐지만 2009년에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이후 2016년엔 70%대마저 돌파했습니다. 1년간 일어난 국내 소비가 100만원이라면 그중 70만원은 신용카드로 이뤄지는 거죠. 신용카드 사용이 이처럼 보편화되고 집계도 빨리 이뤄지면서 정부는 아예 이 정보를 토대로 ‘경기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이 작업을 하고 있는 통계청 쪽 설명을 들어보니, 내년 상반기까지 주간 단위로 소비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를 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소비 흐름이 좀더 빨리 파악될 수 있게 되는 거죠. 정부가 정확하고 빠른 진단과 정책 대응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촘촘해지고 있습니다. 좀더 때를 잘 맞춘 정책들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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