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서생면 골매마을 뒤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현장의 크레인들이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연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3개월간 중단한 상태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백지화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울산/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문재인 정부는 고리원전의 영구정지와 함께 원전 설계수명 연장 금지를 선언했다. 또한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잠정 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신규 원전 공사 계획의 백지화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내용이야 어떻든 형국으로만 보자면 환경단체는 시민배심원제를 탈핵의 첫걸음으로 간주하고, 원전 전문가들은 이를 무책임한 졸속 행정으로 매도하며 반대하는 모양새다. 환경단체는 시민배심원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으로, 친원자력계는 불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시민배심원단의 논의 속에서 상식적인 판단이 뒤집히고, 찬성과 반대가 자리를 뒤바꾼 사례는 부지기수다.
각국의 적용사례를 보면 시민배심원제가 ‘yes’와 ‘no’가 분명한 문제, 어느 일방의 다수가 형성된 사안에 적용된 예는 없다. 시민배심원제는 해당 사안에 대해 전문성을 갖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에 기초하는, 소위 ‘참여적 의사결정’의 한 형태로서 찬·반이 선명하게 대립해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전문가들의 중립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에서 채택되는 숙의민주주의의 한 갈래다. 그래서 모든 숙의적 토론이 그런 것처럼 시민배심원제 역시 단순한 찬·반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만장일치의 합의를 지향하며 만장일치가 아니라면 다수의 동의를, 그것도 절대다수의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투명하고 충분한 정보제공과 공정한 숙의 과정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배심원제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형태이자 ‘능동적 시민참여’형 의사결정 모델로서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는 대안이지만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첫째, 원자력 발전이나 국가 에너지 수급계획같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과연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사회적 통제가 필요한가? 기술개발과 확산이 사회구성원들의 편의와 복지를 증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저절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일수록, 그것도 유능한 전문가일수록 기술 발전 자체가 가져다주는 경이와 성취의 희열을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의 열망이 때론 맹목적인 기술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맹목적인 기술 경쟁은 사회구성원들에게 맹독이 되어 공동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일제의 777부대와 나치 독일의 생체실험, 구 소련의 유제니즘 등 과학기술이 상식을 배반하고 기대를 저버린 예는 부지기수다. 그뿐인가. 원자폭탄이 평화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핵은 인류에게 비극적인 결말을 선사한 과학기술의 대명사가 되었다.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명 창조를 넘보았던 프랑켄슈타인의 최후가 자신의 피조물에 의한 죽임 당함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비전문가에 의한 통제라면 과연 효과적일까? 과학기술 정책의 최종 결정은 전문가들의 몫이라는 전문가주의와 그것의 제도적 표현인 기술관료주의는 어느 사회에서나 무척 견고하다(그리고 물론 그 뒤에는 기술이란 본래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게 그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진화하는 객관적 진리체계라는 확고한 믿음, 기술결정론이 있다). 그러나 오해하면 안 된다. 여기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한 민주적 통제가 겨냥하는 것은 일부 전문가 집단이 우려하듯이 과학기술의 옳고 그름에 대한 ‘대중적’ 평가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활용 방식에 대한 집단적 지혜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최고의 기술이 아니라 최적의 기술 즉, 과학기술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일반 시민들의 복리와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적용을 제한하거나 유예할 필요가 있는지, 반대로 우리에게 절실한 미래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수 의견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시민참여에 기초하는 정책적 개입을 통해 체계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이러한 주장 뒤에는 과학기술 역시 사회적 산물이라는, 구성주의적 논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100% 안전한 기술도 없고 100% 통제 가능한 기술도 없지만, 대중의 요구에 따라 기술발전의 방향과 범위, 속도를 조절해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확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셋째, 설사 시민 통제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시민들의 합리성을 신뢰한다 하더라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방대한 문제를 학습하고 최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되 시민배심원단의 중립성을 존중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른 학습과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숙의 과정을 투명하게 설계하면 가능하다.
배심원단을 비전문가로 구성하는 이유는 전문가들과 달리 확증편향의 오류나 진영논리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을 학습과 토론과정에서 수정할 가능성도 크다. 전문성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이 명확한 자료와 근거를 기초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며 배심원단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숙의 토론을 위해 생업을 가진 일반 시민들을 오랫동안 묶어놓을 수는 없다. 무한정 공사를 중단시킬 수도 없다. 중립적이고 자율적인 시민배심원단이라면 찬·반 의견을 결정할 권리뿐 아니라 결정을 유예할 권리 또한 가진다. 그리고 그 결정은 일괄타결이 아니라 조건부 결정이거나 조건부 유예 또는 부분 찬성, 부분 반대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다만, 의제를 무엇으로 선정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숙의 기간과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공론화 과정에서도 탈핵과 에너지 정책 전반의 핵심적인 내용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논의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하위 의제에 불과할 뿐이다. 의제 관리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노련한 외교관이자 총리였던 클레망소가 말하길, 전쟁은 너무 중요해서 군인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전 정책을 원전 전문가들의 손에만 맡겨둘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기왕에 도입되는 시민배심원제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됨으로써 우리 사회와 우리 행정에 숙의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는 단초를 열기 바란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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