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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몸집 커진 ‘착한 경제’, 인증·평가방식 개선해야 ‘날개’

등록 2017-06-14 18:45수정 2017-06-14 20:58

사회적기업 10년, 새로운 모색
① 국내 사회적기업 현황

‘자립 가능성’ 우려 많았지만
정부지원 끝난 기업 75% 생존
영업이익·재정 건전성 개선
고용인원의 62%가 취약계층
사회적 성과도 꾸준히 향상

“10년간 쌓은 성과 바탕으로
본질에 충실한 발전 모색해야”
청각장애인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든 사회적기업인 삼성떡프린스 직원들이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며 떡을 만들고 있다. 삼성농아원 법인 산하의 장애인 보호 사업장이던 이 업체는 2010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서울시가 선정하는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뽑히기도 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청각장애인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든 사회적기업인 삼성떡프린스 직원들이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며 떡을 만들고 있다. 삼성농아원 법인 산하의 장애인 보호 사업장이던 이 업체는 2010년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서울시가 선정하는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뽑히기도 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공
올해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마침 역대 어느 정부보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정부도 들어섰다. 사회적기업이 또 한 단계 도약할 기회다. 그러기 위해선 성찰과 모색이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의 현황과 과제를 다루는 기획 연재를 여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경제성장의 목적은 삶의 질을 증대시킬 능력의 확대에 있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약자의 역량을 높여 경제주체가 되게 하고, 부차적으로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경제복지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마르티아 센이 제안한 경제복지 프로그램의 하나가 사회적기업이다. 취약계층에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함으로써 자생력을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과 공동체가 사회·경제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데 유효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기업이라고 본 것이다. 올해로 10살이 되는 한국의 사회적기업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한국 사회적기업 제도의 특징 사회적기업육성법 제2조는 사회적기업을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으로서 정부로부터 인증을 받은 곳’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사회적 소외와 실업에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공익적 활동을 하는 민간 조직 또는 기업’을 사회적기업이라고 정의한다. 기업적 방식으로 조직되지만, 이윤 극대화만 좇는 게 아니라 경제·사회적 목적을 조화롭게 추구한다.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로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들에게 일정한 심의과정을 거쳐 부여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제공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 로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들에게 일정한 심의과정을 거쳐 부여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제공
하지만 한국에서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이 쓰이는 맥락은 독특하다. 규정상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은 정부(고용노동부)로부터 ‘인증’받은 기업만 쓸 수 있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들이 일정한 심의과정을 거쳐 획득하는 국가 인증 마크인 셈이다. 별도로 ‘사회적기업’이란 법인격(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법상 법인, 공익법인, (사회적)협동조합, 비영리 민간단체부터 주식회사 등 상법상 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법인격들이 사회적기업 인증의 대상이다.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일정 기간 인건비와 사회보험료 지원, 세제 지원, 사업비 지원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요건을 갖추진 못했지만, 사회적 목적의 구체적 실현 및 수익 창출에 대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나 단체는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부처의 심의를 거쳐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을 수 있다. 이들에겐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지원이 이뤄진다.

사회적기업의 이러한 제도적 틀은 2007년 7월 사회적기업육성법을 통해 마련됐다. 사회적기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과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경제 모델로 도입됐다. 사회적기업 추진 이전 정부가 벌였던 ‘사회적 일자리 사업’과 같은 공공근로사업은 재정지원에 의해 유지되는 단기 저임금 일자리 사업이었다.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 온 자활사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사회적기업 논의는 민간과 시민단체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5년 국회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법제화 검토에 들어갔다. 이런 노력은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으로 결실을 보았다. 과거 공공근로사업, 자활사업,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이어지던 정부의 고용정책이 사회적기업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비된 시기다.

사회적기업의 성과 ‘재정지원이 끝나면 사회적기업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은 사회적기업 10년을 따라다닌 꼬리표였다. 그러나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자료를 보면, 2007년 법 시행 이후 올해 5월까지 정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은 모두 1975곳에 이르며, 이 가운데 1741곳이 활동 중이다. 10년 동안 약 88%가 살아남은 셈이다. 최장 5년의 지원기간이 종료된 2007~2011년 인증 사회적기업 중 살아남은 사회적기업의 비율은 69.1~80.5%로 평균 74.7%다. 이는 일반 창업기업 생존율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통계청의 ‘2015년 기준 기업생멸 행정통계’를 보면, 일반 기업의 1년 생존율은 62.4%, 5년 생존율은 27.3%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5 사회적기업 성과분석’ 자료를 보면, 사회적기업들은 2015년 한 해에 2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2013년과 2014년에 견줘 각각 70.2%, 34.3% 증가했다. 전체 영업이익은 적자에 머물렀지만, 전년 대비 15.1% 개선됐다. 영업이익이 발생한 기업 수는 356개로 전년보다 102개 늘었다. 영업외 이익 중 기업당 정부지원액은 1억800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700만원(21.7%) 줄었다. 재정운영의 건전성이 향상된 것이다. 박성희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관은 “사회적기업이 직접 지원 위주의 정부 지원 우산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아울러 청년이나 벤처기업들이 사회적기업으로 진입·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정책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성과도 향상됐다. 인증 사회적기업의 고용 인원은 2007년 2539명에서 2015년 3만4220명으로 13.7배 성장했다. 2015년 전체 고용 인원 중 61.6%(2만1096명)는 노동시장의 통상적인 조건에서 취업이 곤란한 고령자·장애인·저소득자 등 취약계층이었다. 지난해 전체 사회적기업의 유급근로자 평균임금은 전년 대비 8만9000원(6.5%) 오른 145만1000원으로 2013년 127만8000원, 2014년 136만2000원에 이어 증가세를 이어갔다.

“수치보다는 본질에 충실해야”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대목이다. 사회적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적 성과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회적기업도 기업인 만큼 자립을 위해 재무적 성과를 챙겨야 하는 건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기업의 주관적 지향, ‘사회적 성과’를 내는 일은 사회적기업의 발전을 위한 본질적인 과업이다.

최근 에스케이(SK)가 제안한 사회적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초점을 맞춘 인센티브 시스템, 에스피시(SPC, Social Progress Credit)가 주목받고 있다. 에스피시란 사회적기업이 얼마만큼의 가치 있는 일을 하는지 제대로 측정한 뒤 그에 비례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뜻한다. 사회적기업을 위해 ‘선한 자본’의 유입을 견인하자는 취지다.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변형석 상임대표는 “10년이라는 ‘축적의 시간’이 있었다. 이제 대통령의 의지와 애정, 국회 및 지방정부의 노력을 통해 사회적기업 또는 사회적경제가 공식적으로 제도화되고, 주류 언어 안에 반영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청년층에게 인증 사회적기업의 제도나 브랜드 가치가 갖는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사회적기업 인증제도의 유효성에 대한 검토를 주문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당시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이은애 센터장은 인증제도를 정비할 때, 영국의 ‘공동체이익회사’(CIC, Community Interest Company) 모델을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배당하되, 경영자의 책임 권한을 인정하는 방식의 조직형태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소박한 면모를 보여준 낡은 명품 구두 ‘아지오’(AGIO)가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창업해 2013년 폐업한 수제화 사회적기업 ‘구두가 있는 풍경’이 만든 브랜드다. 청각장애인과 40년 구두장인의 합작품이다. 2009년 인증받은 77개 기업 중 62개 기업이 살아남아 80.5%라는 생존율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다. 이은애 센터장은 “사회적기업 10주년을 맞아 반성이 깊어진다”고 했다. 가치와 관계가 흐르는 경제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의 ‘본질’에 충실한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때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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