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북서부 중림동 일대 도시재생활성화 계획이 지난달 25일 발표됐다. 이 지역의 오래된 이야깃거리를 관광 및 역사 자원으로 만드는 것이 이번 계획의 뼈대다. 사진은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중구 세브란스빌딩에서 본 ‘서울로7017’ 인근 중림동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04년 9월 일본 도쿄 시내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도시재생이 도시를 파괴한다(「都市再生」がまちをこわす)>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었다. 그 무렵은 도시재생이 일본 최강의 트렌드였던 때였다. 일본 출장을 갔던 목적도 도쿄대 도시공학·건축·토목과 교수들이 문부성 지원으로 설립한 지속가능도시재생센터(cSUR: Center for Sustainable Urban Regeneration) 주최의 국제세미나 참석이었고, 세미나의 주제 역시 도시재생이었다.
세미나 후 여러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주최측이 보여준 도시재생 성공사례는 롯본기힐스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졌던 롯본기힐스를 준공 직후 직접 돌아봤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점 매대 위에서 발견한 자그마한 책의 제목은 뜻밖이었다. 화려했던 버블시기를 지나 점점 침체되어가는 일본의 도시들을 되살릴 구세주로 여겨졌던 도시재생이 오히려 도시를 파괴하고 죽인다는 제목이었으니 책의 내용이 몹시 궁금했다.
목차와 내용을 읽어보니 수긍이 갔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 특히 도쿄에서 도시재생을 명분으로 진행해온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들이 실제로는 마을과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적 의견들이 구체적 근거들과 함께 담겨있었다. 경제가 이미 가라앉았고 더 이상 새로운 수요도 창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롯본기힐스 같은 곳을 대규모로 개발하면 새로운 명소로 등장한 그곳은 채워질지언정 또 다른 어딘가는 사람과 기업이 빠져나가 더욱 쇠퇴할 것이라는 연쇄공동화의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민간활력을 활용해 도시를 재생한다는 명분을 앞세운 규제완화의 문제점들도 조목조목 꼬집었다. 도시계획에 따라 도시 내 모든 토지는 용적률, 건폐율, 높이제한, 환경영향평가 같은 각종 규제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도시재생을 핑계로 규제를 완화해 난개발과 부조화 등 부작용들이 빚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영리추구를 위해 움직이는 민간 개발업자에게 강제적 토지수용권까지 부여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담겨있었다.
그날 저녁 세미나를 주최했던 도쿄대 교수 가운데 한 사람과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다. 한국과 일본에서 몇 번 만나 이미 친분이 있던 분이었다. 술잔이 오가고 둘 다 취기가 오를 때쯤 질문을 던졌다. 일본의 도시재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서점에서 샀던 책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런 비판적인 의견들도 있나본데 당신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날 둘 사이에 오간 이야기들도 많았고, 함께 나눠 마신 술도 꽤 되었다. 내부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일본 도시재생의 적나라한 속살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2002년 고이즈미 정부가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면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일본의 도시재생은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아베 정부는 2014년 <지방창생법>으로도 불리는 <마을, 사람, 일자리 창생법(まちひとしごと創生法)>을 제정하여 지방창생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도시를 재생한다는 명분 아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지속해오던 구태에서 벗어나, 사람이 빠져나가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든 지방과 농어촌과 구시가지에 사람을 끌어오고 일자리를 만들며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바꾼 것이다. 물리적 개발이라고 하는 하드웨어를 통해 도시를 재생하는 방식 대신, 사람과 일자리라고 하는 휴먼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마을과 도시를 창의적으로 되살리겠다는 의지가 법의 명칭에 그대로 담겨있다.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평가하기 이른 시점이지만, 우리가 지금 하려는 도시재생에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특히 버블붕괴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그동안 해온 도시재생과 지방창생 정책을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면밀히 검토해본다면 우리의 도시재생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도시재생 뉴딜’도 일본의 도시재생과 지방창생 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책의 방향과 틀을 제대로 잡아놓고 시작해야 한다. 돈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 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다. 도시를 살리려는 도시재생이 도시를 파괴하거나 죽이는 도시재생이 되지 않아야 한다. 마을공동체를 회복하고 경제생태계까지 튼튼하게 키우는 1석3조의 도시재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도시재생 뉴딜의 방향을 잡고 구체적 프로그램을 짜는 데 참고했으면 하는 몇 가지 의견을 드린다.
첫째,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개발과 재건축 그리고 뉴타운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빅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수많은 건물들과 골목길과 큰길까지를 단일 프로젝트로 크게 묶으면 개개의 건물주는 자기 소유 건물을 헐 수도 고칠 수도 새로 지을 수도 없게 된다. 전체를 한꺼번에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만 가능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되는 순간 이 일은 오직 큰 회사들만의 몫이 된다. 대형 건축사무소와 대형 시행사와 시공사만이 빅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고 개발이익도 고스란히 이들 몫이 된다. 명분은 도시재생일지 모르지만 실제 내용은 과거의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몇 안 되는 빅 프로젝트가 아닌 수많은 스몰 프로젝트로 잘게 쪼개어 작은 건축사무소와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체들도 두루 참여하고 일거리를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 재정투자의 혜택이 골고루 아래까지 내려가게 해서 경제생태계의 밑바탕을 키워야 한다.
둘째, 건물을 헐고 짓는 하드웨어보다 사람을 불러오고 일자리를 만들며 와해된 공동체를 회복하는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에 돈을 썼으면 좋겠다. 주거환경관리사업을 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귀한 돈을 들여 주민공용시설을 지었는데 정작 주민들이 쓸 줄 몰라 도로 내어놓는 경우가 많다. 건물과 공간을 새로 만드는 일보다 그것을 쓸 사람과 조직을 만드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람이 없어 소멸의 위기를 겪는 농산어촌 마을에 정작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닌 사람이다. 젊은이들이 와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 수 있도록 여건과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중한 도시재생의 성과가 될 것이다.
셋째, 어떤 명분으로도 더 이상의 외연확장형 도시개발은 그만 멈추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도시들의 쇠퇴는 스스로의 쇠퇴보다 새로운 개발로 인한 상대적 쇠퇴가 가중되는 경향이 크다. 지방도시들의 구도심 쇠퇴는 신도시나 신시가지 개발과 맞물려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어떤 명분으로든 새로운 도시를 만들면 그곳을 채우는 사람과 기업과 물류로 인해 또 다른 어느 곳은 더욱 비게 될 것이다. 인구감소시대와 저성장시대에 기존 도시를 고치고 촘촘히 채우는 대신 밖으로 개발을 확장한다면 안은 더욱 비고 골병들 것이다.
도시를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 바라보며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란 명저를 썼던 제인 제이콥스는 이 책의 제3부에서 ‘도시를 쇠퇴시키거나 재생시키는 힘’에 대해 말하면서 쇠퇴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정부의 재정투자를 쓰나미 같은 뭉칫돈(cataclysmic money)이 아닌 가랑비 같은 작은 돈(gradual money)으로 나누어 지원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쇠퇴하는(slumming) 지역을 슬럼이라 낙인찍고 철거·재개발하지 말고 스스로 재생(unslumming)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우라고 얘기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할 때도 덩치 큰 주택건설회사를 지원하는 것보다 임대주택을 한 채 한 채 짓는 공급자와 그곳에 입주해 살아갈 당사자들을 지원하라고 말한다. 1961년의 미국 대도시들에 대한 제인의 제안은 2017년 새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 정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아주 귀한 조언이 될 것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