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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유리천장 부수고 싶죠? ‘착한 양보’ 하지 마세요”

등록 2017-03-19 17:31수정 2017-03-19 23:18

Weconomy | 위미노믹스_기업 여성임원 4인 좌담
윤희정(AT 커니코리아 상무), 강수연(전 종근당 마케팅기획담당 상무), 이윤희(포스코 경영 연구원 상무보0, 오경아(풀무원 다논 상무) 등 여성 임원들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포스코피앤에스타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윤희정(AT 커니코리아 상무), 강수연(전 종근당 마케팅기획담당 상무), 이윤희(포스코 경영 연구원 상무보0, 오경아(풀무원 다논 상무) 등 여성 임원들이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포스코피앤에스타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5%.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시이오(CEO)스코어가 집계한 지난해 3분기 기준 30대 그룹의 여성임원 비율이다. 남자직원은 100명 중 1명꼴로 임원이 되지만 여성은 1000명 중 1명꼴로 임원이 된다. <한겨레>는 지난 8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동 포스코피앤에스(P&S)타워에서 아직 ‘희귀한’ 존재인 여성 임원 4명을 만나 일터의 현실과 후배 양성에 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이날 좌담회에는 이윤희(49) 포스코경영연구원 상무보, 오경아(47) 풀무원다논 상무, 윤희정(45) 에이티커니 코리아 (A.T. Kearney Korea) 상무, 강수연(50) 종근당 전 상무가 참석했다. 올해 창립 10돌을 맞은 여성임원모임(WIN)에서 활발한 멘토링 활동을 하는 이들은 후진 양성에 애쓰는 ‘선배’들이다. 이들은 1990년대에 입사해, 2010~2014년 사이에 임원으로 처음 승진했다. 늘 ‘대졸 여성 공채 1기’, ‘최고경영자(CEO)가 처음 접한 여성임원’ 같은 ‘최초의 여성’ 수식어를 달고 살아왔다.

유리천장 같은 현실
30대 그룹 여성임원 비율 2.5%
여직원 1천명 중 1명꼴로 임원 돼

우리땐 이랬지
이름 대신 ‘미스 김’이라 불려
남자 흉내내며 지지 않으려 애써

* 누르면 확대됩니다.
김효진 기자(이하 기자) 이윤희 상무보는 ‘포스코 첫 대졸자 여성공채’로 입사했다. 오늘 모인 분들은 여성 입사자가 매우 적었던 때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지금보다 차별이 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윤희 상무보(이하 이윤희) 내가 입사한 1990년에는 아직 여직원을 이름 대신에 ‘미스 김’이라고 불렀다. 남자직원들은 같은 대졸자 공채로 입사했음에도 여직원에게 탁자를 정리하고 물컵 닦는 일을 시켰다. 그걸 없애는 데 우리 동기들이 애를 많이 썼다. 상사와 남자직원이 ‘미스 김’이라고 부르면 ‘지금까지는 여직원이 한두 명밖에 없어서 미스 김이라고 불러도 알아들었지만 이제 여직원이 많으니 이름으로 부르라’고 말했다

강수연 전 상무(이하 강수연) 2000년대 초반 대리로 일할 때 연말 고과평가에서 팀장이 ‘애가 딸린 가장을 진급시켜야 한다. 네가 고과를 좀 양보하면 안 되냐’고 설득했다. 당시는 진급 대상인 남자들에게 고과를 몰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다.

기자 노골적인 차별이 존재했던 시기에 어떻게 임원이 됐는지 궁금하다.

오경아 상무(이하 오경아) 아직 아이가 어릴 때, 아이 생일에 노래방에서 직원들하고 탬버린을 치고 있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나는 ‘남자에게 지기 싫어서’ 라고 스스로 대답했다. 남성 위주의 사회 문화가 부담돼 남성을 흉내 내며, 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윤희정 상무(이하 윤희정) 사실 여기 모인 세대는 남성들과 경쟁해서 올라왔다기보다는, 여성임원을 시범적으로 뽑는 분위기에서 ‘발탁’된 경우가 많다. 내 경우도 이직하던 시기에 아이비엠(IBM)이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임원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치열하게 경쟁해서 올라와야 한다.

여성임원의 고충
“일은 완벽하게” 과도한 책임감
그러다 보니 사내 네트워크 약해

후배들 보고 뭘 느끼나
요즘 젊은이들 ‘일-가정 양립 추구’
세대차 느끼지만 ‘균형 사고’ 평가

조언 한마디 한다면
일 경중 따져 시간 안배 잘하길
그자리에 서야만 알 수 있는 것에 도전

임원 돼도 ‘여성’의 굴레…“네트워크가 없다”

기자 ‘시범 케이스’로 사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여성임원으로서의 고충을 말해달라.

이윤희 여성임원이 적다 보니,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두고 나간 동기들을 보면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고, 후배들한테 열심히 해 보라고 하다가도 내가 이 길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윤희정 일전에 여성이 임원이 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남성 최고경영자(CEO)를 청해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이 여성들은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골프든 산악회든 남자 부장들은 기본으로 2~3개, 남성 임원들은 5~6개씩 모임이 있는데 여성들은 그게 없다는 거다.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주가 넓다. 나도 현재 모임이 2개 정도밖에 없는 것 같다.

기자 왜 여성들이 네트워크가 약한가?

윤희정 우린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모임이 있어도 일을 끝내야 나간다. 남자 임원들은 외부 모임에 시간 할애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이윤희 급한 지시가 떨어져도 남성임원들은 모임이 있으면 부하 직원에게 시키기도 하는데 여성임원들은 붙들고 있다. 여성임원에게 과도한 책임감이 있다. 임원이 될 때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았으니 이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남성들하고 똑같이 일 시키고 나갔다 오면 나에겐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이다.

기자 왜 여성임원은 그렇게 하면 욕먹나?

이윤희 똑같은 일을 해도 남성은 다수의 남성임원 중 하나인데, 나는 여성이라서 튄다. 남자들은 술 취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는 오래된 관습이 있는데, 여성임원 1세대이다 보니 뭘 해도 눈에 띈다.

강수연 여성임원은 위에서 볼 때 일종의 테스터다. 더 많은 여성임원을 발굴하고 성장시킬 것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참석자들은 자신과 팀원의 성과를 효과적으로 홍보하지 못하는 성향도 사내 네트워크 형성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이윤희 얼마 전 동기와 저녁을 먹다가, 여성임원들이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칭찬에 인색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위해 일해줬던 사람들의 성과를 위에 얘기해줘야 하는데 연습이 안돼 있다고 했다.

강수연 (여성들에겐) 그저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윤희 맞다. 팀원들의 역량과 우수함을 주변에 널리 알려주지 못하니, 같이 일하려는 팀원이 줄어들고, 결국 사내 네트워크도 더 약해지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오경아 남자는 4가지만 알아도 10개를 안다고 하는데 여자는 8개를 알아도 모르는 2개 때문에 2개를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더 완벽성에 힘을 기울인다. 이런 경향이 후배나 자기 팀원들의 성과를 보여주는 데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하지만 꼼꼼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데 대한 자신감은 가져도 좋다고 본다.

“세대차, 당혹스럽기도…후배들 육아 부담 여전”

좌담회에 참여한 여성임원들은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누구보다 여성 후배 양성 의욕이 높은 이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후배들을 멘토링 하면서 당혹감을 느끼는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세대차’를 실감한다는 얘기다.

강수연 지금 여자 후배들이 회사를 보는 개념이 우리 때, 적어도 나와 다른 측면이 있다. 여성들은 육아와 출산 부담이 있어서, 가정과 일을 일대일로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쪽의 힘을 빼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회사 쪽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지금 많은 후배는 가정이 중요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 때로 임원을 만들어주고 싶어도 임원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없는 후배를 만나기도 한다.

이윤희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가 가지는 목표가 다른 것 같다.

강수연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후배들은 회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못지않게 개인과 가정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본다. 한쪽으로 치우쳤던 우리에 비해 균형 잡힌 사고다.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기자 세대차가 왜 생겼다고 생각하나?

윤희정 지금 임원들은 여유가 없다. 성과를 독촉받고 한번에 날아가기도 한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 젊은 세대들이 달리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윤희 제 윗세대는 회사에 20년 이상 다니면 임원 승진을 기대하는 세대였는데, 지금은 시간이 더 걸린다. 임원 승진이 계속 늦어지니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기자 단지 세대의 문제인가? 여직원이 더 많이 포기하고 탈락하는 경향은 없나?

오경아 성별 차가 있다. 요즘 여자 후배들은 일을 위해 결혼도 늦고 아이는 포기하는 그룹과 회사를 육아휴직 등을 통해 편안하게 아이를 키우는 삶의 장으로 생각하는 이들로 양극화했다. 남자들은 아직도 대부분 승진 못 하면 패배자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기자 성별 차는 왜 나타나나?

오경아 채용과 업무분장에서 차별이 줄었지만,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의 부담으로 경력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여전히 육아가 여자 책임이고 아이가 어떻게 되느냐가 여성의 성적표로 돌아온다. 남성은 자녀보다는 본인의 성공과 출세가 성적표다.

윤희정 여성들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며 육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세대가 바뀌면서 남성 육아휴직도 늘고 있다. 우리 회사 평균연령은 33.5살이다. 에이티커니는 열에 한둘은 남성 육아휴직자다.

“아래에는 관대하고, 위와 옆을 바꾸겠다”

기자 회사 생활에 대해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할 것이 있다면?

이윤희 여성 후배들이 중요한 일이 아님에도 과하게 열심히 처리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노(No)’를 잘 못 해서, 잔잔한 일들을 많이 하면서 시간 안배에 실패하더라. 일을 꼼꼼하게 하는 것이 자기를 알리는 행위라면 중요한 일을 중요하게 하고 가벼운 일은 가볍게 해야 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해도 되고, 없으면 없다고 해도 된다. 그런 성향을 가진 직원들에게는 필요한 내용과 시간 제한을 정해서 ‘한 시간만 찾으라’고 정확하게 이야기 해준다. 사실 꼼꼼한 남자직원들도 많다. 그런데 남자직원들은 많으니까 일반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들은 다양성을 인정 못 받고 ‘여자들 왜 이래’ 하며 한 덩어리로 낮게 평가 받는 경향이 있다.

기자 앞서 여성 임원들이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윤희 맞다. 우리랑 같다. 일에는 상사에게 도움이 되는 것,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것, 그리고 내 업무가 있다. 경중을 못 따지고 내 업무에만 치중하면 상사가 필요할 땐 없는 거다. 그리고 상사에게 도움되는 일을 했다면, 자기 성과를 드러내도 된다. 사실 네트워킹이 강하면 모르는 일은 물어서 하면 되는데, 약하니까 묻지 못하고 내가 찾으려니 일이 더 오래 걸린다. 다 연결돼 있다.

오경아 여성 후배들이 착하게 양보하지 말고 용기 있게 협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진 기회나 주요 역할을 양보하라던지 불필요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 단순히 수긍만 하지 말고 자신의 성장을 위한 협상 기회로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 남자들은 양보할 때,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갖기 위한 협상을 한다.

강수연 (여성 후배들에게) 도전을 즐기라고 하고 싶다. 실제로 그 자리에 서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임원이 되기 전까지는 나의 일, 나의 제품, 내 팀원들에만 집중했다면 임원이 되고 나서는 내가 속한 산업계를 다시 정의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 보고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후배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이윤희 후배에게 조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고경영자나 남성임원들의 여성 인력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 일하는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전체 조직을 바꿀 수 없다. 여직원이 손해를 보거나 나쁜 대우를 받으면 부당하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여성 후배에게) 다른 남성 임원들과 일할 기회도 주고, 소개도 해주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려 한다. 그런 연습을 한 여성 직원들이 또 후배를 키우지 않겠나. 아래에는 따뜻하게 대하고, 옆을 바꾸려 한다.

윤희정 나도 최고경영자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나는 일부러 시이오들을 만나면 여성인력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내 여성인력이 없거나 임원이 없더라도 남성 시이오들이 여성과 하는 모임을 가지고, 여성의 강점, 유연함, 역량을 확인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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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정리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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