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5일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의 노동이사(3년 비상임)로 배준식 연구위원이 임명됐다. 국내 최초 노동이사로, 지난해말 직원 291명 가운데 234명이 투표(80.4%)해 추려진 2명의 후보군 가운데 다수표를 얻은 배 연구위원을 박원순 시장이 임명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에 이어 성남시도 노동이사제 도입을 선언하고, 유력 대선 후보들도 노동자 대표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노동자 경영 참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5일 배준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을 국내 최초의 근로자이사(노동이사)로 임명했다. 3년간 노동이사로 활약할 배 연구위원은 “노동자가 회사 사정을 더 잘 이해하고 의사결정에 책임감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성숙한 자본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 시장은 지난해 5월 노동자 100명 이상의 서울시 산하 공사·공단·출연기관 13곳에 우선적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 100명 미만의 기관은 이사회 의결로 자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시행 방안 마련에 참여한 배규식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관리와 통제 대상으로만 여겨져온 노동자를 경영 참여를 통해 참여와 협력의 파트너로 인식 전환을 한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대립적 노사관계를 상생과 협력으로 전환시키고, 공공서비스 개선, 책임경영과 경영 투명성 강화, 경제 성장 촉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으로 인한 연간 경제적 손실이 최대 246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유력 대선주자들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정경유착 사태를 계기로 노동이사제나 노동자 대표가 추천하는 사외이사제 도입을 앞다퉈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성남시 산하 출자·출연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자체로는 서울시에 이어 두 번째이고, 기초자치단체로는 처음이다. 성남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로 경영에 참여해 노사가 경영 성과와 책임을 공유하면서 경영 투명성을 높여 시민들에게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성남시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관련 조례를 제정한다. 상시 노동자 50명 이상의 기관에 적용하기로 해 성남도시개발공사·산업진흥재단·문화재단·청소년재단 등 4곳이 1차 대상이다. 청년수당(배당)이 서울시를 시작으로 성남시, 경기도, 인천시, 대전시 등으로 확산된 점을 감안하면 공기업의 노동이사제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재벌 개혁 방안의 하나로 노동자대표 추천 사외이사제 도입을 발표했다. 이는 노동자대표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와는 차이가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노동자 경영 참여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문 전 대표는 공공부문에 먼저 도입한 뒤 4대 재벌과 10대 재벌 순으로 확대한다는 복안을 내놨다. 문 전 대표가 유력한 대선 후보라는 점에서 다음 정부 임기 중에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재벌 대기업 이사회에 노동자들이 추천한 사외이사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대선 후보들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개혁입법추진단은 21개 중점추진법안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발의한 상법 개정안을 포함시켰다. 이 개정안에는 우리사주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도 노동자 대표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여서 법안 심의 과정에서 야권 공조 가능성도 열려 있다. 노동계에서도 노동자 경영 참여 요구가 나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단협 관련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로 사외이사 추천권을 제시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노동이사제는 물론 노동자 대표 추천 사외이사제 도입에도 부정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8일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담은 보고서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야 합의로 2월 임시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대한상의는 “회사 발전보다 근로자의 이익만 주장해 의사결정 지연과 왜곡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며 “근로자 대표가 추천하는 사외이사 의무 선임은 다른 선진국에도 없는 제도”라고 이유를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도 12일 사외이사 선임권을 우리사주조합에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사주조합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회사법의 기본 원칙인 주주평등 원칙에 위반된다”며 “사회적 시장경제 성격이 강한 유럽은 몰라도, 자유시장경제 성격이 강한 영미권과 한국에는 맞지 않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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