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군단’(삼성전자·현대차)의 부품 계열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같은 대기업집단 안에서 부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손쉽게 규모를 키운 계열사들이 주력 계열사 부진의 여파를 그대로 맞아 악화된 경영 실적을 내놨다.
31일 지난해 실적을 종합해 보면,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삼성에스디아이(SDI)와 삼성전기는 지난해 영업적자 폭이 크게 늘거나 영업이익이 대폭 줄었다. 스마트폰용 배터리 제조업체인 삼성에스디아이는 영업적자가 2015년 2675억원에서 지난해 9263억원으로 증가했다. 적자 규모가 247%나 커진 것은 구조조정 비용이 크게 들어간 상태에서 이익을 내던 스마트폰 배터리 사업마저 갤럭시노트7 단종으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용 카메라와 기판을 공급하는 삼성전기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2015년 6조1762억원(매출), 3013억원(영업이익)이던 실적은 지난해 6조330억원, 244억원으로 감소했다. 영업이익이 92%나 감소한 것 역시 갤럭시노트7 문제였다. 삼성전기는 “전략 거래선 플래그십 모델 단종에 따른 고부가 부품 감소 및 판매가 인하 영향 등으로 영업실적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들과 다른 실적을 내놨다. 반도체 사업부문이 지난해 4분기에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면서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아이엠(IM) 부문 역시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를 겪었으나 갤럭시S7로 만회해 영업이익은 오히려 늘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증권사 연구원은 “반도체 역시 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관련 협력사 이익은 그 정도로 늘지 않았다. 낙수효과가 보이지 않으면서 그룹 계열사가 아닌 납품업체들은 경영에 대한 고민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계열사들은 이익이 동반 하락했다. 현대차가 자동차 강판부터 부품·조립 등 생산·판매의 모든 단계를 계열사들이 담당하는 수직계열화를 이룬 게 부메랑이 된 셈이다.
현대차에 부품 모듈을 공급하는 현대모비스는 2016년 매출이 전년보다 6.2% 증가한 38조2620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1% 감소한 2조9050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차 판매량 감소와 중국에서의 경쟁 심화로 인한 가격 인하가 실적을 끌어내렸다. 현대차에 변속기와 엔진을 공급하는 현대위아도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었다. 매출은 3.7% 감소한 7조590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47.5% 줄어든 2630억원이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현대위아의 문제는 현대차 중국 4, 5공장에서의 그룹사 매출 등이 이미 소화가 완료돼 현재 상황을 타개할 외부 발주가 단기적으로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계열사에서 밀어주는 매출 외에 뚜렷하게 실적을 낼 만한 게 없다는 설명이다.
재벌기업의 수직계열화는 실적이 좋을 때는 이익을 재벌 내부로 모으는 데 큰 몫을 한다. 그러나 완성품 계열사의 부침에 따라 다른 계열사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확실한 수요처가 있는 재벌 계열사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동기가 상대적으로 낮아 실적 부진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 수직계열화로 그룹 외부의 중소 경쟁 업체를 도태시켜 계열사 부품에 문제가 생겨도 속수무책이 된다. 재벌의 이익을 좇는 수직계열화가 산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작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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