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억원대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의왕시 서울구치소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삼성 쪽은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그룹 2인자인 최지성 실장(부회장) 등이 서초사옥에서 밤을 새며 소식을 기다렸다.
이 부회장은 오전 6시14분께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곧장 서초사옥으로 이동해 임직원들과 회의를 했다. 그는 특검에서 22시간에 걸쳐 밤샘 조사까지 받은 13일에도 서초사옥으로 곧바로 출근한 바 있다.
삼성은 공식적으로는 “불구속 상태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짤막한 입장만 내놨다. 수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영장 기각에 대한 여론의 반응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한 계열사 직원은 “아무래도 그룹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특검이 재소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불구속 상태에서라도 기소할 뜻만은 분명히 밝히는 만큼 긴장을 완전히 풀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최악의 리스크였던 구속을 피했지만 경영 측면에서도 과제가 쌓여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매년 연말에 하던 사장단·임원 인사를 미뤄놓은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등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지만, 경영진의 시선은 온통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에 쏠린 상태였다.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있는 삼성전자는 18일로 예정했던 신형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의 발표회도 취소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새해를 시작한 삼성전자의 첫 대외 행사는 23일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 발표다. 국내외에서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 부회장이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한 약속을 어느 정도 지켜나갈지도 관심사다.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와 함께 미래전략실 해체를 공언했다. 미래전략실을 이끄는 최지성 부회장도 뇌물공여 혐의의 공범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 본사 앞에서 농성 중인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파죽지세로 진행되던 수사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다음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되던 다른 기업들도 한숨을 돌리는 표정이다. 미르재단이나 최순실씨 등에게 건넨 돈이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을 받는 롯데와 에스케이(SK)그룹 등이 그런 경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새벽에 기각 소식을 접하자마자 “법원의 신중한 판단을 존중한다”, “모쪼록 삼성그룹과 관련해 제기된 많은 의혹과 오해는 향후 사법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구속수사는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경제의 국제신인도가 크게 추락해 국부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주장하며,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대기업들이 긴장하며 이번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렸음을 대변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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