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희생자 고 김명천, 김연숙 씨의 추모제 및 기자회견에서 김명천 씨의 딸 김미란 씨가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국책연구기관으로부터 나왔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8일 낸 ‘이슈 브리프-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논의에 대한 고찰’ 자료에서 “다국적 회사들의 활동이 사회적 책임의 약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강한 보장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악의 등을 가지고 무분별하게 불법행위를 하면 이에 대한 손해액뿐 아니라 형벌적 요소로서 금액을 추가해 배상하게 하는 제도다.
법제연구원은 이 자료에서 가습기살균제사건을 예로 들며, 정부는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등 3곳에 허위표시를 이유로 부과한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재의 제도는 가해 회사가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도록 압력을 가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이 법에 도입된 것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불과하다.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과 부당 반품 등에 대해 실손해의 3배 범위 내에서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처벌이라거나 배상액 예측이 어렵다는 등의 반론으로 인해 다른 법률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지 않고 있다.
이유봉 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의외의 사회적 혁신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는 커피로 인한 화상으로 징벌적 배상액 48만달러(약 5억원)를 매긴 ‘맥도날드 커피 사건’을 소개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을 치렀지만 안전하고 마시기 쉬운 커피용기 뚜껑의 개발이라는 혁신을 이끌어 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시장의 행위자들에게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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