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게이트로 총수 국정조사 출석
연말 임원인사·사업계획 수립 등 미뤄져
보호무역주의·4차산업혁명 변화 와중에
“국내 기업의 성장전략 큰 위험에 처했다”
연말 임원인사·사업계획 수립 등 미뤄져
보호무역주의·4차산업혁명 변화 와중에
“국내 기업의 성장전략 큰 위험에 처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 농단 사태가 기업 경영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 흔히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4대 그룹 한 임원)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선 ‘박·최 게이트’로 내년 조기 대선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고, 국외에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예상된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도 ‘2017년 경제·산업전망’에서 “대외적으로는 미국 신정부 정책 기조 및 금리 인상, 중국의 성장 둔화 폭 확대 가능성 등이, 국내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국내외 정치적 변수로 인해 투자와 소비 심리에 가장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불확실성’이 최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전과 다른 불확실성에 직면한 국내 기업들도 움츠리고 있다.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 등 9개 그룹은 총수들의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청문회 출석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다. 연말에 일제히 단행되던 대기업 임원 인사도 주춤한 상태다. 4대 그룹 가운데 엘지(LG)만 유일하게 사장단·임원 인사를 진행했다. 삼성은 매해 12월초에 하던 임원 인사를 미뤘고, 롯데도 내년 초로 임원 인사를 미뤘다. 현대차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전후에 하던 정기인사 일정이 불투명해졌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내년 사업계획을 준비해야 할 연말에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미루는 것은 사실상 손을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에스케이그룹 관계자는 “기업은 분위기를 많이 탄다. 내년 사업계획을 웬만큼 짰어야 하는데 이제 손을 댈까 말까 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재벌 그룹 관계자는 “사실 회사 전체적으로 검찰 수사, 특검, 국정조사 등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아래에서 사업 계획을 짜서 보고를 하고 의사 결정을 받아야 하는데 보고를 할 수도 없고, 받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벌들이 이를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재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관련된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중요한 삼성은 최순실씨 쪽에 거액을 따로 ‘후원’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 보장에 약점이 잡힌 대기업들이 어떻게 불확실성에 직면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총수의 관심사가 다른 곳에 쏠린 사이에 대기업들은 적시에 사업 전략을 바꾸는 것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은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충돌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제조업의 혁신을 가져올 ‘4차 산업혁명’도 몰려오고 있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국내 문제는 사실 큰 불확실성이 아니다. 대기업의 경우 환율이나 이자율의 문제, 수출 시장이 막히는 것이 더 큰 이슈다. 그동안 만들어놓은 국내 기업의 성장전략이 큰 위험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과거에 최고경영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예측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워낙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중요한 덕목이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라고 했다.
이완 홍대선 김규원 김은형 기자 wa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