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8대 재벌 총수 일가가 불린 돈이 26조2128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정한 시장 경쟁 대신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으로 재벌 창업 3~4세들은 손쉽게 수조원씩 재산을 불리면서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개혁연구소가 4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및 회사 기회 유용(지분 저가 매수 등) 사례를 조사·분석한 ‘경제개혁리포트’를 보면, 10대 재벌 가운데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8곳의 31개 회사, 65명이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불린 자산 가치가 26조2128억원에 달했다. 이들이 지분 획득에 쓴 4756억원과 견주면 단순 수익률은 5512%로 계산됐다.
일감 몰아주기 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지목됐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용해 편법으로 지분을 값싸게 매입했다. 삼성에버랜드는 특수관계자 매출 비중이 51%(2013년)에 달하는 등, 이들 기업은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성장했다. 이를 통해 주식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그는 7조3489억원을 불렸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에스디에스 등의 지분 취득에 쓴 264억원에 견주면 수익률이 2만7747%다.
보고서는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은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4조952억원을 불렸고,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계열사들이 현대글로비스에 일감을 몰아줘 3조6393억원을 증식했다고 밝혔다. 이 상위 3명의 부의 증가액은 8대 재벌 총수 일가 증가분의 57.5%에 이른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대기업집단 65곳 가운데 동일인 등의 지분율이 20%가 넘고 내부거래 비율이 20% 이상인 회사를 분석했다.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곳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재벌이 지분 매각과 계열사 합병 등으로 규제를 피하자 기준을 넓혀 조사했다. 삼성에스디에스는 총수 일가 지분율이 19%이지만, 삼성물산 등 간접 지분율을 합치면 20%가 넘어 조사 대상에 넣었다. 부의 증가액은 2015년 말 주식 평가액과 일감 몰아주기 시작 시점부터의 배당액을 더한 뒤 애초 주식 취득액을 빼 계산했다. 기준 시점 이전에 지분을 팔았으면 매각액으로 계산했다. 이총희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상위의 소수에게 부의 증식이 몰리고, 재벌들이 총수 일가에게 그룹 차원에서 일감을 몰아줘 편법적 상속과 승계를 일삼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8대 재벌 외 24개 대기업집단에서는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6142억원)과 이준용 명예회장(4949억원), 중흥건설 정원주 사장(3719억원), 현대백화점 정몽근 명예회장(2511억원),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2029억원), 효성그룹 조현준 사장(1635억원), 태광 이호진 회장(1220억원) 등이 일감 몰아주기로 재산을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24개 재벌이 일감 몰아주기 등의 의심 사례를 통해 얻은 부의 증가액은 4조9303억원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편법적 부의 증식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를 적용하는 상장사 지분율 기준을 20%로 비상장사와 동일하게 조정하는 등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수혜 회사의 상장 이익을 지배주주 일가에 대한 증여로 봐 과세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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