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60) 엘지(LG)전자 사장이 국내 4대 그룹에서 고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에 올랐다. 엘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엘지전자의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2005년 이후 최대 규모(58명)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엘지그룹은 1일 지주회사 ㈜엘지와 계열사들의 2017년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 안을 발표했다. 엘지전자는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신속한 의사 결정 및 강한 추진력 발휘가 가능한 1인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전환하고, 조성진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최고경영자를 맡는다”고 밝혔다.
엘지전자는 “조 부회장은 2015년 가전·에어컨(H&A)사업본부장에 부임한 뒤 세탁기 1등 유전자(DNA)를 다른 가전사업에 성공적으로 이식해 올해 역대 최대 성과를 창출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엘지전자의 다른 한 축인 스마트폰(MC) 사업본부가 G5의 흥행 실패 등으로 올해 최대 적자를 기록하는 등 전체 실적을 악화시키자 조 사장이 ‘총괄 구원투수’로 등판한 셈이다. 엘지전자는 또 전장부품(VC)사업본부 안에 카인포테인먼트를 총괄하는 ‘스마트사업부’와 친환경 전기차 부품 분야를 통합한 ‘그린사업부’를 신설해 전장사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 부회장은 1976년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금성사(옛 엘지전자) 전기설계실에 입사했다. 1995년 세탁기설계실에서 일할 때는 창원공장 2층에 침대와 주방을 차려놓고 밤을 새며 기술을 연구했다고 한다. 세탁기 사업부에서만 부장·상무·부사장을 거쳐 가전에어컨부문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사장실 카펫을 걷어내고 마룻바닥으로 바꿔 청소기 테스트를 했다고 엘지전자는 전했다. 엘지전자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기 힘든 시대에 고졸 출신으로 입사한 지 40년 만에 부회장까지 오른 것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조 부회장의 발탁과 함께 이뤄진 최대 규모의 임원 승진 인사는 위기의식의 반영으로도 해석된다. 많이 승진했다는 얘기는 그만큼 많은 임원이 짐을 쌌다는 말이다. 엘지전자는 “철저한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단기적 성과뿐 아니라 본원적인 사업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인재를 선발했다”고 밝혔다. 조준호 MC사업본부장과 이우종 VC사업본부장이 유임됐고, 송대현(58) 시아이에스(CIS·독립국가연합)지역대표 겸 러시아법인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조 부회장이 맡던 H&A사업본부장이 됐다.
엘지그룹은 구본무 엘지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엘지 부회장이 전략보고회 같은 경영회의체를 주관하는 등 역할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구 부회장은 지난해 임원인사 때 엘지전자 부회장에서 ㈜엘지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으로 옮겼다.
엘지상사에서는 송치호(57) 부사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엘지화학은 엘지디스플레이 최고생산책임자(CPO) 출신의 정철동(55)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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